​[기업 옥죄는 경제3법③] 다중대표소송제, 기업 견제하려다 투기자본에 좌지우지될판

2020-12-11 14:58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 취지...그룹별 개선 노력 물거품
과거에 함몰된 일괄 규제…현 상황 반영된 개정 논의 필요

[출처=픽사베이]

[데일리동방] #대그룹 계열사 전자회사인 A사는 미국의 동종업종 B사를 100억달러에 인수하려던 작업에 제동이 걸렸다. A사는 B사 인수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더욱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A사의 지주회사 C사의 지분 0.5%를 보유한 외국계 투기자본이 A사가 B사 인수를 위해 투자하는 100억원으로 인해 재무상태가 나빠졌다며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했다. A사는 C사의 대주주로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어 C사 주주인 외국계 투기자본의 다중대표소송이 가능했다.

A사 재무상태가 나빠지면서 C사 연결재무제표도 악영향을 미친 만큼 A사 대표가 B사 인수 결정으로 나빠진 이익에 대해 C사 주주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말하는 ‘가짜 뉴스’다. 하지만 몇 년 후 발생할 수도 있는 ‘가상 뉴스’다.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경제3법 중 상법 개정안에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이 포함돼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에 대해 경영 관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대표소송제(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제도)가 확장된 개념이다.

◆단기 차익 노리는 투기자본, 지배구조 개편 방해할 수도

이 가상 뉴스는 말 그대로 가상 뉴스지만 이와 유사한 사례가 몇 년 후 발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경쟁사나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기자본 입장에서는 한 기업의 대규모 자금 투입을 반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으로 최소 0.5%의 모회사 지분을 6개월간 보유하면 자회사 경영까지 관여할 수 있다. 최소의 금액 투입으로 단순 투자뿐 아니라 최악의 경우 경제3법 개정으로 정부와 여당이 목표로 한 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개편 작업 자체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특히 많은 그룹 총수들이 책임경영을 위해 계열사 이사로 등재되는 상황에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은 투기자본의 집중 표적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와 여당은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를 위해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계와 학계에서는 투기자본의 공격이 활발해질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양측 의견 모두 일리가 있지만 문제는 다중대표소송제가 국내 기업들의 변화 노력이 충분히 반영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간삼간을 태우는 격이 아닌지 우려되는 이유다.

[다중대표소송제 국회 본회의 통과 내용과 문제점]

['3%룰' 국회 본회의 통과 내용과 문제점]

◆국내 기업 투명화 노력에도 기업통제 의지

투기자본이 지분 확보 후 차익을 최우선으로 하더라도 대표소송제와 다중대표소송제를 통해 기업이 발전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큰 문제는 없다. 또 모회사가 자회사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한다면 투기자본 공격은 우려할 일은 아니다.

정작 해당 법안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일괄성에 있다. 그간 국내 대기업들은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왔다. 지주사 전환은 물론 이사회 구성 등에도 사회적 인식 변화를 반영하는 추세다. 이 과정에서 그룹별 지배구조 개선 속도는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롯데그룹은 순환출자 고리를 끊었고 신동빈 회장은 호텔, 건설, 쇼핑, 칠성 등 주요 계열사 등기임원에서도 사임했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국내 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구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며 정의선 회장은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현대제철 등 핵심 계열사 이사로 등재돼 있다.

다중대표소송제 취지 측면에서 보면 롯데그룹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지배구조 개편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그동안의 노력은 인정받지 못한 채 관련 제도로부터 압박만 강해진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등 미래자동차 시장 점유율 확대와 각종 결함 문제를 해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순환출자 해소와 지배구조 개편, 투기자본으로부터 방어를 위한 자금 투입은 그룹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시대 변화로 산업이 다양화되고 각 기업별 상황에 따라 대응 속도가 다른 만큼 법과 제도 또한 유연성이 필요하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과거시대에 함몰돼 일괄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은 단순히 기업을 통제하려는 의도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한 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국내 기업들이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실제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다중대표소송제는 국내 환경에 맞지 않은 선진국 지주사 제도 도입 후 불거진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기준에 맞춰진 만큼 현 시대에 맞게 제도 개선을 위한 추가 개정 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