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조세현 작가가 사진에 담는 세월 속 아름다운 기록들
2020-12-08 17:30
문재인 대통령부터 배우 정우성까지, 인물사진 전문으로 40년간 수많은 유명인사들의 모습을 찍어온 사진가 조세현. 2003년부터는 ‘천사들의 편지’ 프로젝트를 통해 같은 눈높이, 같은 무채색 배경, 같은 시선으로 아기 사진을 찍으면서 국내 입양 인식개선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스스로를 찍사(찍는 사람)으로 소개하는 그는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찰나의 아름다운 순간을 찍어내고 있다. 찍사 조세현과 함께 세월 속 아름다운 기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사진을 찍은 지 40년이 넘었습니다. 사진가의 인생은 어땠나요?
Q. 하나의 사진을 건지기 위해 몇 번의 셔터를 누르세요?
A. 기자생활을 할 때는 필름 카메라로 촬영을 했는데 그때는 아무리 찍고 싶어도 필름이 너무 비싸서 많이 못 찍었어요. 그러다가 광고사진을 찍기 시작할 때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많이 찍게 됐어요. 필름사진을 10년 찍었기 때문에 요즘 새로 시작하는 신인 사진가들보다는 덜 찍어요. 그래서 젊은 친구들은 “선생님, 디지털 카메라인데 필름 카메라로 찍듯이 왜 이렇게 아껴서 찍어요?”라고 얘기해요. 근데 나와 같은 시대에 사진을 시작한 친구들은 디지털이 뭔지 잘 모르니까 “넌 왜 이렇게 많이 찍니?”라고 해요. 내 스스로는 많이 찍는 편은 아닌데 적게 찍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뭔가요?
Q. 오랫동안 ‘천사들의 편지’를 통해 아기들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 속 아이들이 자라서 사진을 봤을 때 어떤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시나요?
A. ‘그때 나는 혼자가 아니었구나’라는 걸 기억하게 해주고 싶어요. 나중에 사진 속 주인공 아이가 사진을 봤을 때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다는 걸 알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굉장한 주목을 받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지금도 입양을 간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고맙다는 편지가 와요. 그걸 아는 아이들이 얼마나 잘 크겠어요.
Q. 아기들의 사진을 찍으면서 터득한 육아 노하우가 있나요?
A. 인물 사진의 포인트는 눈을 맞추는 건데 그게 너무 어려워요. 편안해야 카메라에 집중할 수 있고, 그 다음에 눈을 마주쳐요. 그래서 약한 불빛과 아기들이 집중하기 좋은 원형 회전판, 휴대폰을 보여주면 신기해서 호기심을 보이고 집중해요. 내 사진을 보면 아기들이 옷을 벗고 찍는데, 아기들의 신분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예요. 부잣집 아이처럼 옷을 못 입히니까 옷을 입는 순간에 신분이 다 보이거든요. 아기들은 옷을 벗기고 찍을 때가 제일 예쁘기도 하고요. 함께 찍는 연예인들의 옷이 매끄럽지 않으면 울어요. 그래서 연예인들이 러닝셔츠를 입고 찍는 거죠. 그게 노하우예요.
Q. 스타들 섭외는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A. 처음에는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서 제일 처음에는 권상우, 김민, 인순이 같이 정말 친한 친구들한테 부탁했어요. 근데 3~4년 지나니까 연예인과 기자들 사이에서 내 진심과 다르게 아이들을 이용한다는 안 좋은 글이 올라오는 거예요. 너무 속이 상해서 안 하려고 했어요. 근데 입양 가족들이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나한테 너무 고맙다고 용기를 줬어요. 그렇게 6~7년을 하니까, 내 진심을 알더라고요. 그 이후부터는 섭외가 너무 쉬웠어요. 배우 김현주한테 전화가 와서 “나는 선생님이랑 친한 줄 알았는데, 왜 저는 사진을 찍는 데 안 부르냐”고 하는 거예요(웃음). 그리고 배우 김혜수는 가을쯤 되면 전화가 와서 “천사들의 편지 사진 찍을 때 안 됐어요?”라고 하면서 3번이나 스스로 참여했어요. 배우 이승기와 가수 션 부부도 3번씩 참여했고요. 진심이 통하니까 배우 정우성이나 가수 강다니엘, 방탄소년단 같은 사람들도 함께 해줬어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군가요?
A. 2003년부터 몇 년마다 중국에 가서 찍는 소수민족이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신인배우들한테도 그런 걸 많이 느꼈고요. 그 중에서도 배우 김민희를 잊을 수가 없어요. 신선함과 동시에 ‘이런 애들이 스타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권상우나 이승기한테도 신선함을 많이 느꼈어요. 사진을 찍을 때 외모적으로 개성이 강하고 사진을 잘 받는 포토제닉한 사람을 좋아해요. 자기 색깔을 가진 사람 말이죠.
Q. '사진을 찍으면 관상이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A. 사람 사진을 찍는다는 건 얼굴을 찍는 거잖아요. 40년 동안 사진을 찍고 표정을 읽다 보면 관상이 다 보여요. 사람의 팔자도 얼굴에 있거든요. 아름다운 얼굴을 갖고 싶다면 살아온 과정이 아름다워야 되고 마음가짐의 평화가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화를 많이 내는 사람들은 얼굴에 다 드러나요. 자기를 다스릴 줄 알고 마음의 평화가 있는 사람들은 얼굴이 예쁘고요. 카메라로 찍고 사진을 고르면서 그 사람을 오롯이 관찰하면 이 사람이 어떻게 될지 다 파악할 수 있어요. 그래서 가끔은 나 자신이 무서워요.
Q.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될 때는 언제인가요?
A. 남을 배려하는 모습을 가진 사람이 제일 아름다운 것 같아요. 저 역시 스스로 아름다운 얼굴을 갖도록 노력하고 있죠. 아름다운 얼굴을 갖기 위해서 더 노력하고 나를 다스려야죠.
A. 핸드폰과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를 항상 가지고 다녀요.
Q. 조세현을 모르는 사람에게 본인을 뭐라고 소개하고 촬영을 하세요?
A. 그냥 사진 찍는 작가라고 소개해요. 찍다 보면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아요. 사진 찍히는 대상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 사진은 결국 내 작품이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게을리할 수 있겠어요.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다 보면 진심을 느껴요. 그러면 마음을 푸는데 그때 사진이 완성되는 거예요. 사람을 찍으려면 매너도 좋고 대화도 잘해야 하거든요. ‘사진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 모습이 너무 좋아서 한 장 찍고 싶은데 될까요?’ 라고 말하면 30% 정도 OK, 70% 정도는 NO예요. NO라고 하면 한 번 더 정중하게 ‘이걸 놓치기 아쉬운데 한번 찍고 보여드릴게요. 혹시 이상하시면 바로 지우겠다’고 하면 그 중에 반은 NO예요. 그리고 절반은 마음이 움직여요, 찍고 보여주니까요.
Q. 찍은 사진은 다 보내드리나요?
A. 보통은 바로 보내줘요. 이동식 스튜디오를 가지고 가서 촬영한 사진을 즉석에서 A4 크기로 출력해서 드려요. 초상권 동의서도 작성하고요.
Q.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보다 더 중요한 게 있나요?
A. 눈이죠. 눈은 카메라보다 더 좋아요. 아무리 좋은 카메라라도 아직까지는 눈을 못 따라와요. 눈을 도와주는 것뿐이죠. 눈으로 본 건 공유할 수 없잖아요. 서로 나누고 공유하는 게 사진의 역할이에요. 그리고 순간을 포착하려면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순간이라고 하더라도 예측을 하고 있어야 해요. 기술적으로 완벽한 준비도 중요하고요. 사진의 내공이 있어야 순간 포착을 할 수 있어요.
Q. 사진을 통해 희망과 선한 영향력을 전한다는 건 뭔가요?
A. 사진이 가장 좋은 소통의 도구라고 생각해요. 의왕에 있는 소년원인 고봉중고등학교에 강의를 가서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라고 했어요. 아무것도 안 가르쳤는데 꽃 같이 전부 예쁜 것만 찍는 거예요. 둘째 날에도 카메라를 주니까, 더 집중해서 찍더라고요. 한 시간을 기다려서 꽃에 날아오는 벌까지 찍은 거예요. 그때 ‘카메라를 들면 사람들이 예쁜 걸 찾고 선해지는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말도 안하던 노숙인에게 카메라를 쥐어주니까 사람이 바뀌더라고요. 첫날에는 '잘씻지도 않고 왔는지' 지독한 냄새가 나던 노숙인이 이튿날에는 머리를 감고 사흘째에는 세수와 면도를 하고 와요. 나흘째에는 옷을 바꿔 입고 와요. 그때 사진이 주는 선한 영향력을 느껴요.
Q. 법정스님께서 “맑은 영혼은 눈을 보면 알 수 있다”라는 말씀을 하신 걸 듣고 사진에 대한 철학을 바꾸셨다고 들었습니다.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A. 눈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요. 얼굴은 영혼의 모양이에요. 착한 얼굴은 착한 영혼이고 나쁜 얼굴은 나쁜 영혼이거든요. 그 얼굴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눈이에요. 눈을 보면 다 알아요. 슬프면 눈에서 제일 먼저 반응하잖아요. 피곤하고 기분 좋으면 눈에서 보이고요. 사진의 초점을 맞출 때, 누군가를 볼 때 눈을 중심으로 하잖아요. 아무리 잘 찍은 사진이라도 눈에 초점이 맞지 않으면 못써요. 다 안 맞았는데 눈에만 초점이 맞아도 쓸 수 있어요.
Q. 사진을 찍지 않을 때는 뭘 하세요?
A. 정보를 얻기 위해 계속 공부해요. 새로운 렌즈와 기계에 대해 알아보고 미술 작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요. 별로 쉬지 않아서 가족들은 걱정을 많이해요. 돈이 좀 있으면 사진과 관련된 책이나 장비들을 많이 사고요.
Q. 핸드폰이 카메라의 성능을 따라간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A. 너무 좋아요. 계속 더 발전해야 하고요. 휴대폰으로는 언제 어디서든 부담 없이 찍을 수 있잖아요. 사진을 잘 찍는 팁이 있다면, 일단 카메라는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게 좋아요. 수직수평이 너무 중요하고 주제를 분명하게 찍었으면 좋겠어요. 사진을 찍으면 온갖 배경들이 다 있어서 배경을 찍었는지, 뭘 찍었는지 모르겠어요. 사진은 마이너스의 예술이라서 찍으면서 자꾸 빼야 돼요.
Q. 영상의 시대인데 사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A. 영상이 너무 발전했잖아요. 그래서 사진이 쇠퇴한다고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근데 사진은 사진대로 남고 영상은 오히려 수명이 짧을 것 같아요. 지금보다 더 영상의 전성기가 올 거예요. 그렇지만 그만큼 빨리 쇠퇴할 것 같아요. 그래서 사진 마니아가 늘어날 것 같아요. 영상은 누구나 하는 거고.
Q. 사람들에게 어떤 사진들을 보여주고 싶나요?
A. 모든 게 자연스러웠으면 좋겠어요. 편안하고 과하지 않고 공기처럼 없어서는 안될 사진을 보여주고 싶어요. 가능하면 따뜻한 감정을 주고 기억이 살아나는 사진이요. 저는 이 세상에 있는 어머님들을 사진에 담고 싶어요. 그리고 인간적이고 사람의 '향기가' 나는 사진을 찍고 싶고요.
Q. 어떤 일을 40년 동안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다른 길에 대한 유혹이 많았어요. 사진을 찍은 지 15년쯤 됐을 때는 영화감독 제안도 오고 광고회사에서 전문 광고인을 해보라는 제안도 받았고요. 근데 이제 와서 보니까 한 가지만 하기에는 40년도 부족해요. 할 게 너무 많아요. 지금도 새로운 사진을 찍고 싶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든요. 그래서 이제 시작 같아요. 이제야 사진에 관한 철이 들었어요.
Q. 마지막으로 아름답게 성장해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A. 사진을 더 가까이, 더 많이 사랑하고 많이 찍으면 더 아름다워질 거예요. 사진이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나는 사진을 잘 택한 것 같아요. 이 좋은 것이 한 명에게라도 더 전파됐으면 좋겠어요. 이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빨리 남겨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