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졌다" ​'축구 영웅' 마라도나 '별세'

2020-11-26 08:50
펠레와 함께 세계적인 축구 영웅으로 꼽혀
마약·음주·비만 등으로 건강 악화
27일부터 사흘간 대통령궁에 안치
펠레 "하늘에서 만나"·나폴리 "경기장 명 바꿀 것"

향년 60세로 유명을 달리한 마라도나[로이터=연합뉴스]


아르헨티나 하면 떠오르는 인물 중 한명인 축구선수 디에고 아르만두 마라도나 프랑코(아르헨티나·이하 마라도나)가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60세.

26일(한국시간) 아르헨티나 매체 라나시온 등은 "마라도나가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티그레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며 "9대의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으나 마라도나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고인은 이달 초 뇌 경막 아래에 피가 고여서 경막하혈종 수술을 받았다. 그의 주치의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설명했지만, 수술 후 23일 만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됐다.

고인은 60세 생일인 지난달 30일 자신이 감독을 맡은 힘나시아 라플라타의 경기를 앞두고 축하를 받았다. 당시 환하게 웃던 그의 미소가 마지막 모습이 됐다.

1960년 10월 30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6년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 프로로 데뷔했다. 이후 보카 주니어스(아르헨티나), FC 바르셀로나(스페인), 나폴리(이탈리아) 등을 거쳤다. 프로 통산 491경기에 출전해 295골을 넣었다.

165cm의 작은 키에 굉장한 드리블을 장착했던 공격수다. 위력적인 왼발 킥으로 A매치 91경기 출전에 34골을 때려 넣었다.

최대 정점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이다. 당시 월드컵 MVP로 선정된 그는 자국에 월드컵 트로피를 선사했다.

은퇴 후에도 축구에 대한 사랑은 그대로 이어졌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지휘했고, 아르헨티나, 중동, 멕시코 등에서 프로축구팀 사령탑을 맡았다. 1994년부터 올해까지 8개 팀이다.
 

1987년 수상한 펠레(左)와 마라도나(右)[AP=연합뉴스]


고인은 '영원한 10번'이다. 펠레(브라질)와 더불어 아르헨티나를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로 꼽힌다.

그러나, 뛰어난 실력만큼 논란도 많았다. 꼬리표처럼 '신의 손'이라는 별명이 붙어 다녔다. 1986년 월드컵 4강전에서 고인은 높게 날아오는 공을 머리 대신 손으로 넣었다. 주심이 골을 인정했다. 당시 그는 "내 머리와 '신의 손'이 함께 만들어낸 골"이라고 했다. 이후에는 '의도적으로 그랬다'고 시인했다.

약물 스캔들도 이어졌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도핑 테스트에 적발돼 대표팀에서 하차했다. 이후 마약 중독 치료를 받았다. 마약, 알코올, 비만 등이 그의 몸을 좀 먹었다. 결국 심장에 문제가 생겼다.

고인은 향년 6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축구 역사상 큰 획을 그었지만, 80세인 펠레에 비해서는 짧디짧은 생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전 세계가 슬픔에 잠겼다.
 

축구공과 함께 하늘 높이 날아간 마라도나[AP=연합뉴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3일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이 기간에 고인의 시신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에 위치한 대통령궁 카사로사다에 안치된다. 오는 27일부터 29일까지 사흘간은 일반인에게도 빈소가 공개될 예정이다.

펠레는 "분명히 언젠가 하늘에서 우리가 함께 공을 차게 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고인 덕분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로축구팀 나폴리는 "마라도나의 이름을 따서 경기장 명을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고인이 하늘로 올라간 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열렸다. 8경기 모두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