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은 하되 나서지 않는다"... 믿고 맡기는 신뢰의 리더십 보여준 '택진이형'
2020-11-26 00:10
NC다이노스, 창단 9년 만에 첫 통합우승... 김택진 구단주 리더십 빛났다
데이터와 신뢰 중심의 구단 운영, 필요할 때에는 과감한 투자도
리니지 상징 '집행검' 트로피 대신 치켜들어... 북미서 큰 홍보효과
데이터와 신뢰 중심의 구단 운영, 필요할 때에는 과감한 투자도
리니지 상징 '집행검' 트로피 대신 치켜들어... 북미서 큰 홍보효과
초등학교 시절 야구 만화 '거인의 별'을 보고 야구에 빠졌고, 우상이었던 고(故) 최동원 선수의 빈소를 찾아 눈물을 흘리던 '야구 광팬'의 꿈이 40여년 만에 이뤄졌다. 창단 후 첫 통합 우승을 확정한 뒤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NC다이노스 구단주)의 얘기다.
24일 NC다이노스는 2013년 1군 무대에 진입한 후 여덟 시즌 만에 우승을 거머쥐며 구단 역사에 첫 'V'를 새겼다. 이번 우승으로 NC다이노스는 2016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 당한 4전 전패의 아픔도 씻어냈다.
디라커 등 자체기술로 개발한 데이터 야구 강점
구단주의 관심이 야구단의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김택진 대표는 올해 NC다이노스의 정규리그 우승을 보기 위해 중요한 순간마다 현장을 찾았다. 지난달 24일 경남 창원NC파크에서 NC다이노스가 LG트윈스와의 맞대결에서 연장 12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3대3 무승부를 기록하며 81승 5무 53패(승률 0.604)로 창단 첫 KBO 정규 리그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에도, 한국시리즈 1~6차전에도 모두 김택진 대표가 함께했다.
아구계에선 NC다이노스의 우승 비결로 자율, 데이터, 과감한 투자 등을 꼽는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인재 발굴, 그리고 믿고 기다리는 김택진 대표의 그림자 리더십은 NC다이노스에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NC다이노스는 1군 무대로 올라선 다음 해인 2014년부터 포스트 시즌에 자주 이름을 올리는 강팀으로 성장했다. 그 배경에는 김택진 대표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엔씨소프트는 NC다이노스를 창단한 해인 2011년에 사내 데이터정보센터 내에 야구 데이터팀을 신설했고, 2012년엔 NC다이노스 내 데이터팀을 신설해 '데이터 야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13년 독자 기술로 개발한 모바일 전력분석 시스템 '디라커'를 개발해 코치와 선수들에게 제공했다. 김택진 대표는 올해 KBO 개막을 앞두고 코치진과 1·2군 선수들이 언제 어디서나 자신과 타 구단 선수들의 영상과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도록 애플의 신형 아이패드를 지급했다.
양의지 등 대형 인재 적극 영입... 선수단 안정화
김택진 대표는 NC다이노스를 출범하면서 스카우트 팀장으로 유영준 당시 장충고 감독(현 NC다이노스 2군 감독)을 임명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프로야구 경험이 없었지만, 오랜 기간 고교야구팀 감독을 맡으며 쌓은 유 감독의 '인재를 찾는 안목'을 믿은 것이다.
유 감독은 신생구단의 스카우트 팀장으로서 이름값에 기대지 않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를 찾는 데 주력했다. 단순히 감에 의존해 인재를 찾지 않고 김택진 대표가 강조하는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팀에 필요한 인재를 저렴하게 영입했다. 성적과 효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것이다.
NC다이노스의 우승 순간 마운드를 지킨 원종현 선수를 필두로 김진성, 임창민 등 3대 불펜이 이렇게 유 감독의 눈에 띄어 NC다이노스에 합류했다. 약점이 있다고 판단돼 타 팀에서 방출된 이들을 NC다이노스의 코칭스태프가 데이터를 적극 활용해 약점을 보완했고, KBO 리그 최정상의 불펜 투수로 만들었다.
하지만, 데이터와 효율을 따지는 '머니볼'만으론 좋은 성적을 거둘 순 있어도 정상에 설 수는 없다는 게 야구계의 통설이다. 필요한 순간 김택진 대표는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했다. 2018 시즌이 끝난 후 불펜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자유 계약 선수(FA)로 풀린 양의지 선수가 꼭 필요하다는 코칭 스태프의 목소리를 듣고 4년간 125억원이라는 거액을 주고 영입을 성사시켰다. 2015년 박석민을 96억원에 영입한 데 이어 3년 만의 대형 인재 영입이었다.
양의지 선수의 영입으로 고참 선수가 적은 NC다이노스의 선수진도 급격히 안정화됐다. 양의지 선수는 팀의 주장으로서 훌륭한 리더십을 보여줬고, 팀의 젊은 투수를 성장시키고 타선의 중심이 됐다. 두산에서의 경험을 NC다이노스에 전달함으로써 NC다이노스 통합 우승의 주역이 됐다.
양의지의 영입에도 김택진 대표가 강조하는 데이터가 숨어 있다. 엔씨소프트는 영입 경쟁에 나서기 전에 빅데이터 분석으로 양의지의 투수 리드 패턴을 분석했고, 그 결과 아무런 패턴을 찾지 못했다. 투수 리드 패턴을 알아내기 힘들다는 점은 투수들의 능력을 이끌어내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NC다이노스의 젊은 3대 불펜에 최적화된 포수였다.
"신선하다" 미국서도 화제된 집행검 세리머니
"지원하지만 나서지는 않는다."
김택진 대표의 대표적인 구단 운영 철학이다. NC다이노스 창단 당시 데려온 김경문 감독이 2018년 6월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임하고 유영준 감독이 임시로 감독대행을 맡아 10월까지 팀을 이끌었을 때에도 김택진 대표는 믿고 기다렸다. 유 감독은 침체된 팀을 잘 추스르고 이동욱 감독에게 자리를 넘겼다.
이 감독은 양의지 선수를 두고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는 선수"라고 평하며 김택진 대표의 운영 철학을 이어갔다. 실제로 양의지 선수는 우승을 결정지은 한국 시리즈 6차전에서 8회 송명기 선수를 구원투수로 투입하도록 코칭 스태프에 권유했다. 이후 지친 두산 타자들은 송명기의 빠른 공에 대처하지 못하며 무너져내렸다.
양의지 선수는 경기 후 MVP 인터뷰에서 "리니지가 우리를 먹여살리고 있다. 김택진 구단주의 자부심을 살리기 위해 전부터 선수들끼리 세리머니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집행검 세리머니는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화제가 됐다. 우승컵 대신 칼을 치켜든 모습에 미국 야구팬은 신선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북미에서 사업을 전개하는 엔씨소프트에 큰 홍보효과를 가져다 줬다.
미국 스포츠전문 매체 MLB 닷컴은 "당신이 KBO에서 우승하면 거대한 검을 받게 된다. 검은 힘과 지배력을 나타내는 놀라운 상징이다. 다른 종목도 칼로 우승을 축하해야 한다"며 "NC다이노스가 치켜든 검은 모기업인 엔씨소프트의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서 중요한 상징"이라고 보도했다.
이러한 스포츠 매체들의 보도로 현재 엔씨소프트 북미 법인을 통해 서비스 중인 온라인 게임 '길드워2'와 콘솔 게임 '퓨저(Fuser)'에도 한층 힘이 실릴 전망이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M과 리니지2M의 선전으로 3분기 매출액이 작년 대비 50% 증가한 5851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첫 연매출 2조원 돌파도 눈앞에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