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가 죽던 날' 이정은 "'기생충' 찍고 으쓱…된통 당했다"
2020-11-19 00:00
이를테면 '히든카드'다. 배우 이정은(50)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순간, 비책을 내놓는다.
갑자기 늙어버린 딸을 보는 엄마(드라마 '눈이 부시게'), 친근한 얼굴로 상대를 압박하는 복순(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치매 걸린 엄마 정숙(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과 방파제 아줌마(영화 '미성년'), 비밀을 숨긴 입주 도우미 문광(영화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이정은은 어떤 방법으로든 관객들을 몰입시키고 또 흔들어놓는다.
영화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에서도 그렇다.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노정의 분)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김혜수 분),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까지 살아남기 위한 각자의 선택을 그린 이야기 속 이정은은 목격자 순천댁을 연기했다. 시나브로 관객을 몰입시킨 그는 영화 말미 관객들에게 영화의 핵심이자 열쇠를 내민다. 그제야 관객들은 왜 '순천댁'을 이정은이 연기해야 했는지 깨닫게 된다.
"'기생충'도 그랬지만, '내가 죽던 날'도 고민이 많았죠. 나처럼 이렇게 순둥이 같은 얼굴을 가진 아이가 이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나? 하하하. 순천댁은 해안가에서 노동하며 살아온 인물이니 얼굴에 노동이 흔적이 좀 담기길 바랐거든요. 그런데 검은 칠을 해도 그 느낌은 또 안 나요. 이 영화에 아쉬운 점은 순천댁 역을 내가 맡았다는 거?"
이정은의 농담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장난스레 던졌지만 사실 그는 순천댁 역을 맡고 내내 고민해왔다. 순천댁에 가까워지기 위해 리어카 끄는 방법도 연구하고 연습하는 등 몸에 '체화' 시키는 과정을 가진 것이다.
"중풍에 걸린 조카를 돌보는 캐릭터니까 그를 돌보는 몸짓이 익숙하고 자연스러웠으면 했고, 리어카를 끌며 노동하는 모습도 어색하지 않았으면 바랐어요. 예전에 부지영 감독님(영화 '카트'를 함께 했다)께서 '얼굴로 소화 못 하면 몸에 (캐릭터를) 붙이라'고 하셨었거든요. 얼굴은 아니어도 몸은 노동에 익숙해질 수 있잖아요."
지난해 5월부터 영화 '기생충'으로 전 세계를 휩쓴 이정은은 이후에도 주말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작품들에서 활약하며 관객과 만났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영화 '기생충' 이후 이정은은 어떤 '히든카드'처럼 쓰였고 관객들은 그의 '한 방'을 기다리곤 했다.
"'기생충'을 비롯해서 그간 제가 맡은 캐릭터들은 과한 표정을 지을 때가 많았잖아요? 그런 모습들을 내려놓고 내내 뭔가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어요. 힘을 많이 빼려고 했고, 두드러진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일단 제가 나오면 (관객들은) 어떤 비밀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시고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쟤 분명 뭐 있어!' 하고요. 하하하. 이번 작품의 홍보에 참여하는 게 도움이 되려나? 고민하기도 했어요."
감독과 관객들에게 이정은의 '한 방'은 엄청난 힘을 발휘했지만, 배우 본인에게는 고민이기도 했다. 관객들이 자신을 볼 때 "비밀을 가진 캐릭터가 아니면 김이 팍 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다.
"작가님들이 '열쇠'를 안 주면 돼요! 하하하. 지금 찍고 있는 드라마 '로스쿨'도 김명민 씨의 좋은 동료고 이른바 '열쇠'를 가지지 않은 인물인데. 오히려 눈에 안 띄었으면 좋겠거든요. 예전에는 눈에 안 띈다고 너무 평범하다고 캐스팅되곤 했는데, 이제는 자꾸 눈에 띈다고 하니까요. 이것도 지나가겠죠."
이정은에게 순천댁 역할은 도전이기도 했다. 사고로 목소리를 잃은 인물이기 때문에 표현이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가 대중에게 사랑받은 역할들은 보통 언어유희가 있는 캐릭터였거든요.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말을 하는 게 부담이 될 때도 있더라고요. 그러던 찰나, 순천댁을 만나게 된 거죠. 연기를 엄청나게 잘한 것 같지는 않고 시도할 수 있는 용기와 시도해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어요. 결과물은 평가받아야 하는 거고요. 모니터를 많이 하지 않으려고 했고 최대한 힘을 빼고 일상 속으로 잠기려고 했어요."
극 중 현수와 순천댁은 묘한 긴장감을 가진 관계다. 현수는 소녀의 죽음을 파헤치려 하고, 순천댁은 감추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찍을 땐 (김혜수가) 무서웠어요. 그가 주는 감정이 진짜니까 저도 진짜를 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더욱 팽팽함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역시 형사 역을 많이 하셔서 그런가. 탐문하는 게 송곳 같더라고요! 그게 정말 무섭고, 들킬 것 같고, 나중에는 안 만나고 싶더라고요. 하하하."
현수가 아닌 김혜수는 이정은에게 든든한 존재였다고.
"현장에서 딱 기둥 같은 존재에요. 존재감 자체가 힘이 되는 사람이죠. 제가 '품'이라고 한다면, 혜수 씨는 '받침'이 되는 분이에요. 우리 팀은 모두 알 거예요. 그 느낌이 무엇인지."
겸손한 태도였지만 이정은 역시 함께 작업한 이들에게 엄청난 찬사를 받고 있는 배우다. 그의 에너지며 배려심이 상대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 모양이다.
"현장에서 밝게 지내려고 해요. 그게 동료에게 큰 힘이 되더라고요. 우리 서로 시간을 쪼개서 어렵게 만난 건데. 그 '천운' 같은 시간에 찡그리고 있을 수 있나요. 역할 몰입도 좋지만, 그 외에는 동료애가 필요해요. 현장이 잘 돌아가고 격려하는 게 좋은 일 같아요. 그런 모습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고요. 또 제가 경솔했거나 으쓱해져서 올바른 판단을 못 했을 때 진심으로 사과하는 태도도 중요하다고 봐요."
그는 주말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를 찍을 당시를 예로 들기도 했다. "연기 잘한다는 말에 으쓱했던 시절"이라고 고백했다.
"주말 드라마를 하면서 으쓱했던 마음이 다 깨졌어요. 댓글을 보니 '언제 평범한 연기 하느냐'고 지적하시는데 마음이 쿵 내려앉더라고요. 독특하지 않고 내면을 길게 유지할 수도 있는 건데. 고두심 선생님이나 다른 선배님들도 평범한 인물을 연기하지만, 그 안에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잖아요. 으쓱해 하고 있는데 된통 당한 거죠. 제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고요."
영화는 좋은 어른에 관한 고민을 해 볼 수 있게 한다. 이정은 역시 '좋은 어른' '좋은 배우'에 관해 항상 고민하고 있고,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잘 들어주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어떤 작품을 볼 때 결국 눈에 띄는 건 잘 듣고 있는 배우더라고요. 들려오는 대로 반응하는 거요. 좋은 어른도 마찬가지예요. 사실 어른들은 자꾸 말하고 싶어지잖아요. 그렇게 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게 좋은 어른이 가지는 태도인 거 같아요. 좋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정도만."
갑자기 늙어버린 딸을 보는 엄마(드라마 '눈이 부시게'), 친근한 얼굴로 상대를 압박하는 복순(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 치매 걸린 엄마 정숙(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과 방파제 아줌마(영화 '미성년'), 비밀을 숨긴 입주 도우미 문광(영화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이정은은 어떤 방법으로든 관객들을 몰입시키고 또 흔들어놓는다.
영화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에서도 그렇다.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노정의 분)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김혜수 분),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까지 살아남기 위한 각자의 선택을 그린 이야기 속 이정은은 목격자 순천댁을 연기했다. 시나브로 관객을 몰입시킨 그는 영화 말미 관객들에게 영화의 핵심이자 열쇠를 내민다. 그제야 관객들은 왜 '순천댁'을 이정은이 연기해야 했는지 깨닫게 된다.
"'기생충'도 그랬지만, '내가 죽던 날'도 고민이 많았죠. 나처럼 이렇게 순둥이 같은 얼굴을 가진 아이가 이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나? 하하하. 순천댁은 해안가에서 노동하며 살아온 인물이니 얼굴에 노동이 흔적이 좀 담기길 바랐거든요. 그런데 검은 칠을 해도 그 느낌은 또 안 나요. 이 영화에 아쉬운 점은 순천댁 역을 내가 맡았다는 거?"
이정은의 농담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장난스레 던졌지만 사실 그는 순천댁 역을 맡고 내내 고민해왔다. 순천댁에 가까워지기 위해 리어카 끄는 방법도 연구하고 연습하는 등 몸에 '체화' 시키는 과정을 가진 것이다.
"중풍에 걸린 조카를 돌보는 캐릭터니까 그를 돌보는 몸짓이 익숙하고 자연스러웠으면 했고, 리어카를 끌며 노동하는 모습도 어색하지 않았으면 바랐어요. 예전에 부지영 감독님(영화 '카트'를 함께 했다)께서 '얼굴로 소화 못 하면 몸에 (캐릭터를) 붙이라'고 하셨었거든요. 얼굴은 아니어도 몸은 노동에 익숙해질 수 있잖아요."
"'기생충'을 비롯해서 그간 제가 맡은 캐릭터들은 과한 표정을 지을 때가 많았잖아요? 그런 모습들을 내려놓고 내내 뭔가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어요. 힘을 많이 빼려고 했고, 두드러진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일단 제가 나오면 (관객들은) 어떤 비밀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시고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쟤 분명 뭐 있어!' 하고요. 하하하. 이번 작품의 홍보에 참여하는 게 도움이 되려나? 고민하기도 했어요."
감독과 관객들에게 이정은의 '한 방'은 엄청난 힘을 발휘했지만, 배우 본인에게는 고민이기도 했다. 관객들이 자신을 볼 때 "비밀을 가진 캐릭터가 아니면 김이 팍 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다.
"작가님들이 '열쇠'를 안 주면 돼요! 하하하. 지금 찍고 있는 드라마 '로스쿨'도 김명민 씨의 좋은 동료고 이른바 '열쇠'를 가지지 않은 인물인데. 오히려 눈에 안 띄었으면 좋겠거든요. 예전에는 눈에 안 띈다고 너무 평범하다고 캐스팅되곤 했는데, 이제는 자꾸 눈에 띈다고 하니까요. 이것도 지나가겠죠."
이정은에게 순천댁 역할은 도전이기도 했다. 사고로 목소리를 잃은 인물이기 때문에 표현이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가 대중에게 사랑받은 역할들은 보통 언어유희가 있는 캐릭터였거든요.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말을 하는 게 부담이 될 때도 있더라고요. 그러던 찰나, 순천댁을 만나게 된 거죠. 연기를 엄청나게 잘한 것 같지는 않고 시도할 수 있는 용기와 시도해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어요. 결과물은 평가받아야 하는 거고요. 모니터를 많이 하지 않으려고 했고 최대한 힘을 빼고 일상 속으로 잠기려고 했어요."
극 중 현수와 순천댁은 묘한 긴장감을 가진 관계다. 현수는 소녀의 죽음을 파헤치려 하고, 순천댁은 감추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찍을 땐 (김혜수가) 무서웠어요. 그가 주는 감정이 진짜니까 저도 진짜를 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더욱 팽팽함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역시 형사 역을 많이 하셔서 그런가. 탐문하는 게 송곳 같더라고요! 그게 정말 무섭고, 들킬 것 같고, 나중에는 안 만나고 싶더라고요. 하하하."
현수가 아닌 김혜수는 이정은에게 든든한 존재였다고.
"현장에서 딱 기둥 같은 존재에요. 존재감 자체가 힘이 되는 사람이죠. 제가 '품'이라고 한다면, 혜수 씨는 '받침'이 되는 분이에요. 우리 팀은 모두 알 거예요. 그 느낌이 무엇인지."
겸손한 태도였지만 이정은 역시 함께 작업한 이들에게 엄청난 찬사를 받고 있는 배우다. 그의 에너지며 배려심이 상대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 모양이다.
"현장에서 밝게 지내려고 해요. 그게 동료에게 큰 힘이 되더라고요. 우리 서로 시간을 쪼개서 어렵게 만난 건데. 그 '천운' 같은 시간에 찡그리고 있을 수 있나요. 역할 몰입도 좋지만, 그 외에는 동료애가 필요해요. 현장이 잘 돌아가고 격려하는 게 좋은 일 같아요. 그런 모습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고요. 또 제가 경솔했거나 으쓱해져서 올바른 판단을 못 했을 때 진심으로 사과하는 태도도 중요하다고 봐요."
그는 주말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를 찍을 당시를 예로 들기도 했다. "연기 잘한다는 말에 으쓱했던 시절"이라고 고백했다.
"주말 드라마를 하면서 으쓱했던 마음이 다 깨졌어요. 댓글을 보니 '언제 평범한 연기 하느냐'고 지적하시는데 마음이 쿵 내려앉더라고요. 독특하지 않고 내면을 길게 유지할 수도 있는 건데. 고두심 선생님이나 다른 선배님들도 평범한 인물을 연기하지만, 그 안에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잖아요. 으쓱해 하고 있는데 된통 당한 거죠. 제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고요."
영화는 좋은 어른에 관한 고민을 해 볼 수 있게 한다. 이정은 역시 '좋은 어른' '좋은 배우'에 관해 항상 고민하고 있고,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잘 들어주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어떤 작품을 볼 때 결국 눈에 띄는 건 잘 듣고 있는 배우더라고요. 들려오는 대로 반응하는 거요. 좋은 어른도 마찬가지예요. 사실 어른들은 자꾸 말하고 싶어지잖아요. 그렇게 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게 좋은 어른이 가지는 태도인 거 같아요. 좋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정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