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新경세유표31-1]‘화려강산’에 숨은 간교 화려한 친일코드
2020-11-18 06:00
'5·18학살' 작전명 '화려한 휴가'만큼 추악한 '화려강산' 어원
이성계의 고향 화령의 옛 지명은 ‘화려’
이성계의 고향 화령의 옛 지명은 ‘화려’
우선 애국가 후렴, 4개절, 16개 소절, 48개 낱말, 136개 글자 모두 왜색으로 점철됐다.
일본인이 아니라면 절대 쓸 수 없는 것들, 예를 들면 물이 산보다 먼저, 한민족 대표 바다와 산을 저주(水盡山窮, 일본만의 사자성어), 소나무 철갑 두른(鎧掛松, 하마마쓰시의 철갑두른 소나무), 바람서리, 공활, 달, 무궁화, 삼천리 등등, 애국가 작사자는 윤치호(다수설)도 안창호(소수설)도 아닌 일본인이 확실시된다. 마치 만주국 국가를 일본인이 작사해서 명의만 만주국 총리 작사자로 발표했듯.
특히 애국가에서 가장 많이 부르기에 가장 중요한 후렴 부분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에서 ‘무궁화’는 28회나 '아주경제'에 칼럼을 쓰고 이를 재정리해 『두 얼굴의 무궁화』 책을 펴냈다. 또 ‘삼천리’ 역시 아주경제에 6회 연재하고 심화 확대 내용을 지금 '신아방강역고 대한영토 4천리'로 쓰고 있다.
이제 마지막 부분 화려강산을 3회 정도로 톺아보고자 한다.
애국가를 부를 때만 사용하는 특별한 단어가 셋 있다. 바람서리(폭풍으로 인한 피해), 공활(텅빈 골짜기), 그리고 ‘화려강산’이다. 우리는 대개 우리나라 국토를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라 하지 화려강산이라고 하지 않는다.
구한말 이전 옛한국은 물론 옛중국에도 '화려강산' 글자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금수강산’은 비단으로 수를 놓은 듯한 아름다운 국토를 의미하는 사자성어다. 8세기 당 나라 시대 두보의 시 (1)*에도 나온다.
우선 화려강산에서 ‘화려’와 ‘강산’을 분리해서 살펴본다. '화려한 휴가'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시행한 작전 이름이 화려한 휴가다. 화려한 휴가 뿐만이 아니다. '화려한 유혹', '화려한 외출' 등 영화 제목의 ‘화려한’은 모두 좋은 뜻으로 쓰인 게 아니다.
‘화려하다’ 의 사전적 의미는 빛과 그림자,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① 환하게 빛나며 곱고 아름답다. ② 어떤 일이나 생활 따위가 보통사람들이 누리기 어려울 만큼 대단하거나 사치스럽다.
그런데 화려는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한국 대표 사서를 비롯 구한말 이전 거의 모든 사료를 전수 분석하다시피한 결과 '화려'와 '사치'는 거의 동의어로 쓰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①의 빛보다 ②의 그림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래가 그 예다.
∙화려(華麗)하고 사치한 의복과 음식 및 그릇의 사용을 금지하다.
『고려사』 제85권 지志 39권 형법2 금령
∙어사대(御史臺; 고려시대 공수처격)에서 아뢰기를, “최근에 풍속이 날로 사치스러워져 공사의 연회에 사용되는 그릇이 화려(華麗)하여 상하 구분이 없어지니 옛 제도를 따라 거듭 엄하게 금지하도록 하되 - 『고려사』 97권 열전 10 제신
∙듣건대 각도와 주와 군의 연회석이 극히 화려(華麗)하다고 하는데, 나는 침실에서 언제나 헌 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빨리 이 사실을 알려라. 「세조실록」 4권, 1456년 (세조 2년) 5월 24일
∙최근에 풍속이 날로 사치스러워져 공사의 연회에 사용되는 그릇이 화려(華麗)하여 상하 구분이 없어지니 옛 제도를 따라 거듭 엄하게 금지하도록 하되. 『정조실록』 7권, 1779년(정조 3년) 2월 25일
이씨조선, 이조시대, 이조백자 등등 조선왕국을 비하하는 추악한 용어가 언제부터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는가?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등 구한말 이후 갑자기 튀어나온 용어와 같은 시대 구한말 이후에 출현했음에 단서를 포착했다.
첫째. '화려강산'의 '화려'는 나라의 강역을 표기하는데 부적절하고 조롱하는 어감이 담긴 용어다. 마치 옛중국이 옛일본을 '군자국' '군자지국'으로 조롱반, 회유반으로 부른 것과 마찬가지다. 일본은 자국을 '수려강산'이라 표기한다. 구한말 이후 오늘날까지 애국지사들을 비롯 우리나라사람들이 ’화려강산‘을 기피하고 ‘금수강산’을 사용한 까닭은 직관적으로 ‘화려강산’이 강산 앞에 사치와 동의어인 화려가 붙은 걸 뭔가 어색하게 여긴 것으로 추론된다.
둘째, 일본이 한국을 중국의 속국임을 왜곡 강조하기 위하여 중화(中華)와 고려(高麗)의 끝글자를 붙여 만든 합성어로 추정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은 여몽연합군을 원나라를 앞에 두고 원에 부역한 고려라는 뜻으로 원려연합군(2)*으로 표기한다. 한미동맹을 미한(米韓)동맹으로 부른다.
◆이성계의 고향 화령의 옛 지명은 ‘화려’
위의 두 가지 설은 정황증거에 의한 추론이다. 끝으로 『고려사』와 함께 한국의 양대정사 중 하나인 『삼국사기』에 의해 고증해보겠다.
*화려(華麗)와 불내(不耐) 2현(縣) 사람들이 함께 모의해 기병을 이끌고 북쪽 변경을 침략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1권 유리 이사금 17년 음력 9월 (서기 44년)
*여름 6월에 왕이 예맥과 함께 한의 현도를 습격하여 화려성(華麗城)을 공격하였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제3권 태조대왕 66년 음력 6월 (서기 118년)
화려는 함경남도 영흥군의 옛 이름이 화령(和寧)인데 주목해, 일제시대에 한대(漢代)의 토성 터와 기와가 발견된 영흥군 순녕면(順寧面)으로 위치가 비정됐다.
그런데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향 화령(和寧; 영흥부, 현재 북한의 금야군)의 옛 지명은 바로 화려(華麗)현이다.
태조 이성계는 1392년 11월 예문관학사 한상질(韓尙質)을 명 나라에 파견해 국호 개정의 뜻을 전하고, ‘조선’과 ‘화령 둘 중에서 국호를 택해줄 것을 청하였다.
이듬해 2월 한상질이 명나라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을 가지고 왔는데, 여기서 화령은 폐지되고 조선이 택정됐다. 태종은 1414년 화령을 영원히 흥하라는 의미로 영흥이라고 개명했다. 이른바 흥왕의 땅(興王之地, 흥왕지지)이다.
일본과 한국의 일부 식민사관 언관학계는 ’조선(朝鮮)‘을 예나 지금이나 ’이씨조선(李氏朝鮮)‘이라고 표기한다. 이성계 씨족이 세운 조선이라는 뜻으로, ‘조선’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이조시대’. ‘이조백자’ 등등 모두 그렇다.
일제가 화려현 출신 이성계 씨족이 세운 강산이라는 대한민국 금수강산을 능멸하는 용어를 애국가 그것도 제일 많이 부르는 후렴으로 밤낮으로 부르고 있다. 그야말로 밤낮으로 방성대곡할 참극이다.
◆◇◆◇◆◇주석
(1)*'唐·杜甫《清明二首(其二)》:“秦城楼阁烟花里,汉主山河锦绣中'의 "不听忠言,信任奸邪,将一座锦绣江山,弄得粉碎"
(2)*(元麗聯合軍) 日本は元麗連合軍第一次の日本遠征を「文永の役」と呼. ぶ。『高麗史・忠烈王世家』にこの戦争 ... 米韓同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