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생명 앞에 '과잉'은 없다

2020-11-16 16:56

[임병식 위원]



여야가 모처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30여년 전 현장 기자시절을 떠올린다. 당시 군산에서 공장 지붕을 보수하던 근로자 3명이 떨어져 숨졌다. 순간 ‘얼마 전에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한 달 전에도 같은 공장에서 동일한 사고로 2명이 숨졌던 것이다. 사업주는 벌금형, 유족들에게는 알량한 합의금을 주고 무마됐다. 당시 기사를 쓰면서 어처구니없는 사고에 분노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뒤로 30년이 흘렀고, 노동 가치를 존중하는 문재인 정부도 출범했다. 얼마나 바뀌었을까. 절망적이게도 현실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나라 산재사망률은 1996년 이후 24년째 OECD국가 1위다. 최근 10년 동안 무려 2만2000여명이 숨졌다. 매년 2200명꼴이다. 칼럼을 쓰는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매일 6~7명씩 숨지고 있다. 인구 10만명당 사망률은 10.1명. 영국 0.4명과 비교하면 무려 25배나 높다.

올해도 1~6월까지 일터에서 1101명이 숨졌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이 되면 2200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2019년 2020명, 2018년 2142명. 현 정부에서도 매년 평균 2100여명이 숨진 셈이다. 지난 4월에는 이천 물류창고 신축공사장 화재로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 택배 근로자 사망도 잇따르고 있다. 벌써 15명째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간,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산업재해는 반복되는 특성이 있다. 고용노동부 자료(2013~2017년)를 보자.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재범률은 97%로, 일반 범죄 재범률보다 2배 높다. 정식 재판에 넘겨진 경우는 4.6%, 책임자 구속 수사도 1건에 그쳤다. 대법원 자료도 마찬가지다. 2009~2019년 6월까지 1심 선고 산재 사건 6144건 중 징역·금고형은 0.57%로 35건에 불과하다. 전체 사건 가운데 80% 이상은 평균 432만원 벌금형으로 마무리됐다.

10년 동안 무려 2만여명이 떨어지고, 깔리고, 뒤집히고, 불에 타고, 질식사했지만 우리사회는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고작 1명을 구속하는 데 그쳤고, 고작 400여만원 벌금으로 땜질했다. 그리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태연하다. 산업재해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교역규모 세계 10위 한국의 그늘이다. 어쩌면 지구상에서 가장 천박한 자본주의가 활개치는 곳이 한국일지 모른다.

동일한 산업재해가 반복되고 있다면 살인과 같다. 앞서 필자가 경험한 두 건의 추락사가, 이천 화재 사고가 그렇다. 불과 한 달 만에 같은 공장에서 똑같은 추락사가 발생했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 역시 마찬가지다. 2008년에도 이천 냉동 창고에서 불이 나 40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해당 기업은 벌금 2000만원을 받는 데 그쳤다. 만일 그때 강하게 처벌하고 경종을 울렸더라면, 올해 38명이 또 숨지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는 “이 정도면 단순한 산재가 아니다. 사실상 자본과 노동 사이에 벌어지는 내전”이라면서 강력한 처벌을 주장해왔다. 그러면서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예로 들었다. 영국은 ‘기업살인법’ 제정(2007년) 이전만 해도 EU 국가 중 산재 사망률이 최고였다. 법 제정 이후 산재 사망률은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인구 10만명당 산재 사망률은 시행 첫해에 0.7명에서 0.4명으로 떨어졌다. 지금은 EU 국가 최저다.

재계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부정적이다. 산안법이 전면 개정된 지 1년도 안 되는데 또다시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은 과잉 입법이라는 주장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최소 3년 이상 징역 또는 5000만~10억원 벌금을 담고 있다. 재계 입장에 일면 수긍이 가지만 반박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인식에 문제가 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사람의 생명 앞에 어떻게 과잉이라는 말이 붙을 수 있냐”고 질타했다.

앞서 살펴봤듯이 산재 사망사고는 줄지 않고 있다. 특히 하청업체와 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2016년 구의역 사고 때 하청업체 대표는 집행유예, 원청 대표는 벌금형에 그쳤다. 통계는 한층 명확하다. 2011~2016년 50대 기업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근로자는 245명. 이 가운데 하청 근로자는 212명으로, 원청 33명에 비해 5배나 높다. 원청 관리자가 실형을 받은 경우는 1건에 불과했다. 흔히 말하는 위험의 외주화다.

이것만으로도 강화해야 할 근거는 충분하다. 물론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실질적인 처벌 기준을 마련하고, 야만적인 근로환경 개선에 나서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더는 일하다 죽는 일이 없어야 한다. 돌아오지 않는 가장의 신발을 지켜보는 건 슬프다. “다녀오겠다”며 나선 그들이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자.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쳤던 전태일, 그리고 근로자를 내 가족으로 여기는 공동체 의식을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