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하 칼럼] 전국민 고용보험의 허와 실

2020-11-11 18:33
당장 일자리 없는데, 보험료부터 내라니요?



 

[김용하 교수]


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전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이 속도를 내고 있다. 오는 12월부터는 예술인 고용보험이 시행되고, 특수고용형태근로종사자(특고)를 고용보험에 적용하는 정부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최근에는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국세청, 통계청 등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조세-고용보험 소득정보 연계 추진 TF'가 고용보험 확대의 최대 난제였던 소득파악 문제 해결에 나섰다. 정부 로드맵에 따르면, 플랫폼종사자와 자영자에게도 연차적으로 고용보험을 확대하여 현재 1400만명이 채 되지 않는 고용보험 가입자를 2022년에는 1700만명으로, 2025년에는 2100만명으로 확대해 전국민 고용보험을 완성시킬 계획이다.

통계청 발표 9월의 고용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 실업자는 100만명 수준으로, 실업률은 3.6% 수준이다. 2019년 9월의 3.1%에 비하면 높아진 것이지만 2018년 9월이 3.6%였던 것을 감안하면 수치상으로는 높은 수준이 아니다. 산업별로 제조업과 도소매음식숙박업의 경제활동참가율이 하락하고, 연령별로는 60세 이상 연령층만 증가하고 나머지 연령층은 모두 감소한 실업구조가 문제이다. 60세 이상의 일자리만 늘었다는 것은 막대한 정부예산을 쏟아부어 심각한 고용불안 현실을 가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의 고용안전망 강화 정책은 외형상으로는 코로나19로 불거진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지만, 현재의 고용불안 문제에 대한 대책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정부의 1차적인 전국민 고용보험의 확대 대상은 예술인이다, 예술인의 일자리 불안은 코로나19와 상관없이 정부가 10여년 전부터 검토해 왔던 과제였다. 12월부터 고용보험을 적용하더라도 고용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9개월 이상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지금 당장 일자리가 없어서 힘든 예술인에게 고용보험료를 앞으로 9개월간 납부하면 구직급여를 지급할 수 있다는 대책은 시행시기가 잘못된 것이다.

특고 종사자에 고용보험을 적용확대하겠다는 정부의 법 개정안도 그렇다. 산재보험 적용 대상인 보험설계사, 건설기계 조종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 보조원, 택배기사, 퀵서비스 기사, 신용카드 모집인, 대리운전기사 등 특고 종사자 중에서 전속성(한 사업주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정도)이 강한 직종부터 우선 적용할 예정이다. 특고 종사자는 소득의 불안정성이 강하지만 일자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일하고자 하면 취업하기는 상대적으로 용이하지만 힘든 일이기 때문에 덜 선호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특고 종사자는 실업이 걱정이라기보다는 소득의 변동성이 문제가 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근로자의 실업문제와 성격이 다르다. 정부안을 보면 12개월 이상 고용보험료를 납입해야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대상자에게 지금 당장은 보험료를 내라고 한다. 따라서 특고 종사자를 정부가 두 번째로 타기팅하는 것 역시 전시 행정에 가깝다. 또한 본인이 사장인 자영업자에게 문자 그대로 고용보험을 강제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관련 정부 부처가 최근 소득파악TF를 만들었다. 정부의 자영자 등에 대한 소득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1999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 이미 본격화되었다. 현금 대신 카드 결제가 늘어나면서 그동안 소득파악이 어려웠던 자영업자 등의 소득은 이제 엄청나게 노출되었다. 일용직 등 비정규직 근로자 소득도 사업자의 인건비에 대한 비용처리와 정부의 근로장려금 규모가 5조원대로 늘어나면서 거의 대부분 국세청에 신고되고 있다. 그리고 국세청은 파악된 소득 자료를 이미 국민연금공단,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보험료 부과대상 소득 자료가 필요한 곳에 제공하고 있다. 최저임금에 연동하도록 되어 있는 고용보험의 구직급여는 최저·최고 급여 간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급여의 차등을 위한 소득파악의 필요성은 그리 크지 않다. 정부가 오랜만에 그동안 어려웠던 난제를 해결하려고 나선 것 같지만 무엇을 더 파악해야 하는지 의아스럽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공개한 정부의 2021년도 '고용보험기금 수입 및 지출 계획안'을 보면 2021년도 고용보험기금은 3조3215억원 적자가 발생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도 수지 적자 예상액인 3조2639억원이 내년에도 또 발생한다는 것이다. 2019년에 고용보험료를 소득 대비 1.3%에서 1.6%로 인상했는데도 불구하고 심각한 적자행진이 계속되는 것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불황의 영향이 크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의 대책 없는 보장성 확대에도 원인이 있는 만큼 고용보험 적용 확대 이전에 고용보험 재정수지부터 균형화시키는 것이 선결과제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가입할까 말까 하는 상황에서 재정이 펑크난 보험제도에 강제로 가입하라 하면 누가 반가워할 것인가?

현 고용보험 제도의 사각지대는 김대중 대통령 이후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그나마 최선의 노력을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적용 가능한 대상자는 거의 확대가 이루어졌고 남은 대상자는 선진 외국에 비해서 유독 높은 자영업자 비율과 근로자성이 모호한 프리랜서, 특고종사자들이다. 이들 대상자는 보험료를 납입해야 보장이 이루어지는 우리나라 사회보험제도의 한계를 탈피하지 못하는 한 근본적으로 해결이 난망하다. 그동안 잘 안 되었던 방식 그대로 해서도 전국민 고용보험이 정말로 실현될 것처럼 거창한 장밋빛 2025 로드맵을 내놓고 있는 것은 현재의 고용불안에 대한 심리적 해결책이 될지언정 근본대책이 될 수는 없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