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깊은 내면 꿰뚫는 명작 ‘신의 아그네스’

2020-11-10 13:11
11월 29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신의 아그네스‘의 이지혜(왼쪽)와 박해미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이 연극은 인간의 마음과 기적에 관한 연극이며, 또한 빛과 그림자에 대한 연극이다.”

작품을 쓴 희곡작가 존 필미어의 말처럼 ‘신의 아그네스’는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다양한 인간 내면을 무대 위로 끌어 올렸다. 인간이 겹겹이 쓴 가면이 하나씩 벗겨졌다. 1982년 미국 브로드웨이 그 다음해 한국에서 초연됐던 고전이 왜 지금까지 사랑 받고 있는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졌다.

‘신의 아그네스’가 오는 2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필미어 작가는 1976년 뉴욕의 수녀원에서 일어난 영아 살해사건을 바탕으로 종교·기적·구원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 끝에 ‘신의 아그네스’를 집필했다. 1978년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해 그 해 여름 1차 대본을 완성했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에는 순수함 속에 광적인 모습이 내재된 ‘아그네스 수녀’, 그런 그녀를 신 가까이에서 보살피려는 ‘원장 수녀’ 그리고 진실을 밝혀 아그네스를 구하려는 정신과 의사 ‘닥터 리빙스턴’이 출연한다. 서로 다른 상처를 가진 세 명의 등장인물 사이에 벌어지는 기적과 소통, 그리고 치유에 관한 이야기다.

세 명의 주인공들이 깊은 감정을 주고 받으며 120분간 무대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배우들에게도 어려운 작품으로 꼽힌다.

1983년 국내 초연 당시 윤석화(1983년·1986년), 고(故) 윤소정이 각각 아그네스와 닥터 리빙스턴으로 출연했고, 이후 신애라(1992년), 김혜수(1998년), 전미도(2008년) 등 최고의 배우들이 발탁됐다.

2020년에는 제41회 서울연극제에서 연기상을 받은 배우 이지혜가 아그네스로 분한다. 닥터 리빙스턴에게 인사하는 첫 대사부터 신비한 느낌을 주는 이지혜는 순수하고 동시에 파괴적인 극단적인 모습을 무대 위에서 잘 표현했다.

이지혜는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이 아그네스를 너무 잘 소화해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만큼 어깨가 무겁고 부담감이 컸지만, 스태프와 차근차근 작품을 마음으로 대하면서 하나하나 읽어내고 준비했다. ‘다르게 해야지’라는 생각보다는 아그네스가 어떤 인물인지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닥터 리빙스턴은 박해미, 원장 수녀는 제55회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한 이수미가 맡았다.

배우들은 한 달간 대본을 분석하며 작은 의미까지 하나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수천, 수만개의 퍼즐을 다 맞추자 묵직한 울림이 전달됐다. 이수미는 “때론 도발적인 질문을 해야 하고, 다양한 비밀 속에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소리도 해야 한다”며 “하나의 흐름을 타면서 연기를 했을 때와는 다른 대본이다.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 배우들은 깊이 있는 연기를 통해 관객들을 작품에 몰입시킨다. 윤우영 연출의 말처럼 배우들이 세쌍둥이처럼 얽혀 있다. 박해미는 “연극은 20년 전 햄릿을 했다. ‘신의 아그네스’를 통해 ‘인생의 마지막 도전을 해볼만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인간의 내면을 파헤치는 연극의 매력에 빠졌다. 내년에도 또 고전연극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윤우영 연출은 22년 만에 두 번째로 ‘신의 아그네스’를 맡게 됐다. 2020년 그는 전형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난 새로운 매력을 가진 작품을 만들어냈다.

윤 연출은 “원장 수녀는 권위적인 모습에서 벗어나게, 아그네스는 평범하게 그리고 싶었다”며 “신과 인간의 문제, 고통 등을 서로 공유하고 격렬한 토론을 벌이는 것을 그리고 싶었다. 인간적인 부분에 접근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배우와 스태프들이 피땀 흘려 그린 빛과 그림자는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신의 아그네스‘의 이수미(왼쪽)와 박해미 [사진=예술의전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