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식단의 건강 지혜: 지방섭취의 역설

2020-11-12 16:48

[박상철 교수]


<100 to the future> 필자 박상철 교수 =이제 120세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노화(老化)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박상철 교수의 ‘100 to the future(백, 투더 퓨처)’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년간 서울대 의대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와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노화 분야 국제학술지 ‘노화의 원리’에서 동양인 최초 편집인을 지냈고 국제 백세인연구단 의장, 국제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노화 연구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노화이론을 세운 그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지에 소개됐습니다.

<100 to the future>는 100세까지 보편적으로 사는 미래에 대비하자는 의미로, 영화 '백 투더 퓨처'의 미래 귀환 뉘앙스를 차용한 시리즈 제목입니다. 이제 우리는 100세 시대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앞당겨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그 길어진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내일에 대해 실감나게 짚어나갈 계획입니다. <편집자주>




음식을 통해서 건강을 지키고 불로장생을 추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서구인의 사망요인 중 첫째가 심혈관 질환이라고 밝혀지고 일상에서 주로 먹는 육류에 원인이 되는 콜레스테롤과 포화지방산이 대량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지방섭취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진 상황일 때 오히려 어떤 지방은 먹는 것이 좋다는 조사결과는 천국의 메시지 같은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미국의 키스(Ancel Keys)가 1955년 시작한 다국적 식품영양 비교연구를 통하여 지중해식단이 특별하게 각광을 받게 된 계기는 심혈관 질환에 의한 사망률을 저하시킬 수 있는 지역주민의 일상식단을 보고하였기 때문이다. 그 무렵 콜레스테롤의 생화학 성상이 밝혀져 동맥경화의 주요인이 될 수 있다고 알려졌기에 이를 조절하는 방안의 개발은 심각한 연구주제였다. 미국, 핀랜드, 네델란드, 이탈리아,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그리고 일본 7개국에서 지역들을 선택하여 사오십대 전 주민을 대상으로 식단과 질병발생, 사망패턴을 종적으로 조사하였다. 그 결과 건강 우수성이 밝혀진 지중해지역의 식단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많이 섭취한다. 곡물, 견과류를 통째로 섭취한다. 올리브를 다량 섭취한다. 올리브오일을 제반 조리에 사용한다. 생선을 비롯한 해산물과 닭, 양 등의 육류를 적당히 섭취하며 우육과 돈육의 섭취는 제한적이다. 양의 젖으로 만든 페타치즈를 즐긴다. 양념을 위해 소금보다 케이퍼, 오레가노, 타임, 올리브, 레몬 등으로 맛을 보강한다. 와인을 반주로 즐긴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즐긴다.

신선한 과일과 야채에는 각종 폴리페놀, 카로티노이드, 이소시아네이트, 이소플라보노이드 등의 항산화성 물질의 함량이 높다는 점이 밝혀졌다. 또한 섭취 칼로리의 30-40%가 지방으로 높지만 그 중 70%이상이 올리브에서 나오는 단일불포화지방산의 형태이며, 오메가6 지방산과 오메가3 지방산의 비가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20:1정도인데 지중해식단에서는 2:1정도에 불과하고, 다양한 향신료를 사용하여 소금함량을 낮추고, 와인을 통해 resveratrol과 같은 phytochemical을 보완하였다는 점들이 부각되었다. 이러한 특성은 항산화, 항염증, 면역증진, 돌연변이억제 등의 효과를 상승적으로 발휘하기 때문에 암, 노화 및 각종 퇴행성질환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과학적으로 기대되면서 그 위상이 높아지면서 지중해식단은 비만, 당뇨, 고혈압 및 암의 발생요인으로 시사되고 있는 체내 지방 축적에 대한 대응방법으로 등장하였다. 프랑스에서 심혈관 질환 사망빈도가 다른 유럽국가에 비하여 낮은 이유가 와인 섭취 때문이라는 현상을 프랑스역설(French Paradox)라고 부르듯이, 지중해 지역 주민들이 다량의 지방을 섭취함에도 심혈관 질환 사망빈도가 낮다고 보는 현상을 지중해역설(Mediterranean Paradox)라고 한다. 이후 지중해식단은 건강식단으로 표준화되고 세계적인 유행이 되면서 심혈관 질환에 나쁜 영향을 주는 지방 섭취를 무조건 제한할 것이 아니라 올리브유 같은 단일불포화지방산(mono-unsaturated fatty acid, MUFA)을 매일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알려지게 되었다. 이어서 1970년대에 다중불포화지방산(polyunsaturated fatty acid, PUFA)이 생리적으로 그리고 질병 예방에 유용한 효과를 보인다는 보고가 새롭게 등장하여 학계는 물론 일반 사회에도 큰 파문을 일으켰다.

덴마크의 디어버그(John Dyerberg)는 의사로 그린랜드에 파견되어 주민의 건강관리를 책임지고 있었다. 낙농국가인 덴마크는 육류와 우유류 소비가 높아 고혈압, 심근경색등과 같은 심혈관 질환빈도가 높아서 주민들에게 육류를 줄이고 채식을 적극 권장하던 차에, 그는 그린랜드에 사는 이누이트인들의 채소섭취가 극히 제한적인데도 불구하고 심혈관 질환이 거의 없다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원인이 식생활에 있음을 직감하고 원주민들이 소, 양, 돼지 같은 육류 대신 생선이나 물개 등을 먹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그래서 이누이트 원주민과 덴마크 이주 이누이트인의 건강상태와 육류 섭취 덴마크인과 어류 섭취 그린랜드 주민의 질병패턴을 비교하고, 심혈관 환자와 정상인의 혈액을 분석하여 어류섭취가 심혈관 건강에 긍정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처음으로 밝히게 되었다. 이러한 발견은 영양학 분야에서 천우신조의 세렌디피티(serendipity)로 육류위주 식단으로 콜레스테롤 공포를 가졌던 서구인들에게 식단의 돌파구를 마련해준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어유에서 발견된 PUFA는 오메가3 지방산인 DHA와 EPA였다. 이들 지방산은 체내 생성이 되지 않는 필수지방산이기 때문에 반드시 음식으로 섭취하여야만 한다. 연어, 정어리, 참치, 꽁치 등 등푸른 생선에 많으며, 생선의 간에도 많이 들어 있다. 이들은 고혈압, 심근경색, 암, 당뇨, 관절염, 뇌신경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우울증, 주의 집중 등의 정서적인 기능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보고 되었다. 반면 육류에서 나오는 PUFA는 주로 오메가6 지방산으로 오메가3 지방산과는 반대적인 부정적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오메가6 지방산의 섭취 제한이 요구되면서 사람들이 먹는 지방산의 오메가6 지방산/오메가3 지방산의 비율이 새삼 주목 받게 되었다.

이와 같이 지역의 식단조사를 통하여 역학적으로 수명연장, 질병예방효과가 발견되고 후속으로 과학적 분석이 규명된 지중해식단과 그린랜드식단은 콜레스테롤에 의한 심혈관질환 공포에서 벗어나 오히려 특정 지방의 섭취를 유도할 수 있는 계기를 빚었다. 이후 식품연구에서 특정 식품이나 특정 성분을 강조하는 연구보다 주민들이 일상에서 상용하는 전통적 식단연구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게 되었다. 올리브를 대표로 하는 단일불포화지방산과 어유로 대표되는 다중불포화지방산의 섭취가 콜레스테롤 공포를 벗어나 식품을 즐기며 건강을 추구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이후 식품산업계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편하게 지방을 먹을 수 있는 영양학적 전기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