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환 칼럼] 바이든 당선, 경제외교의 기본은 첫째도 국익, 둘째도 국익

2020-11-08 18:26
'실용주의' 노선이 답이다

[최성환 교수]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후보가 막판 역전에 성공하면서 승리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불복의사를 밝히면서 확정까지는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에 따라 선거와 불복과정에서 발생한 갈등과 대립의 수습이 최우선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바이든 후보도 승리가 확정된 뒤 미국이 하나가 될 때라면서 단합과 통합을 호소했다. 주요 언론들은 바이든이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를 부정하고 국제사회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해 대대적인 정책 전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대외경제정책에서는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시하면서 이에 방해가 되는 국가와 산업, 기술 등에 대해서는 직·간접적 차별화가 이어질 것이다. 우리나라도 향후 대미 경제외교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보다 철저한 분석과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 필자는 한국은행 워싱턴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외환보유액이 39억 달러까지 줄어들어 국가부도 위기가 임박했던 1997년 12월 24일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선진 13개국이 지원키로 한 총 234억 달러 중 80억 달러를 1998년 1월 초까지 조기지원키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 뉴스를 한국에 처음으로 전한 것이 필자였다. 이후 환율이 하락세로 돌아서고 주요 은행들도 만기연장에 나서면서 위기로부터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여기서 FRB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는 선진국들의 234억 달러는 물론 80억 달러의 조기지원을 이끌어낸 주역이기 때문이다. 당시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이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과 함께 주요국과 직접 접촉해서 지원을 이끌어낸 것이었다. 미국은 그 2년 전인 1995년 멕시코 금융위기 시 멕시코 석유판매 수입의 미국 내 예치를 담보로 200억 달러를 지원했다. 하지만 한국은 담보할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한국 차기정권의 구두 약속만으로 훨씬 더 많은 지원을 결정한 것이었다.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 역시 FRB가 한국은행과 통화스와프(Currency Swap)를 체결함으로써 외환위기 우려를 차단시키는 역할을 했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은 일종의 달러 표시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는 것이어서 계약된 액수만큼 언제든지 빼다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미국은 광복 이후의 혼란과 배고픔, 한국전쟁과 그 이후 경제원조에 이어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위기 등 위기가 발생할 때 마다 구원투수로 등장한 셈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이를 잘 활용해서 고속성장에 성공하고 위기를 벗어났다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미국이 위기 때마다 도와준 것은 우리나라가 미국의 국익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를 둘러싼 환경은 1600년대 초중반 조선의 지정학적 고민이 300여년 만에 재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는 명(明)과 뜨는 청(淸)이 확연하게 보이던 당시와는 달리 지금은 상황이 훨씬 더 복잡하다. 더욱이 대중(對中)전선을 구축하고자 하는 미국은 G7 확대정상회의(G7+α), Quad(미국 주도의 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 협의체) 등에 우리나라가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바이든의 취임 후 일부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경제적 위치와 미래가 적어도 10년 이상 확고부동하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각을 세워서 잘사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쿠바와 이란, 이라크, 베네수엘라, 북한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반면 우리나라와 영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 나라들은 대부분 잘나가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에 한 나라의 운명과 미래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4차 산업혁명의 선두주자로, 앞으로 형성될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의 공급망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에 끼지 못하고 배제된다면 4차 산업혁명에서 낙오되면서 2류, 3류 국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이수혁 주미대사가 “한국이 70년 전 미국을 선택했다고 해서 또 선택해야 하냐”고 말했다. 현직 주미대사의 이 같은 발언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인가. 정부의 한 인사가 내뱉은 말을 물고 늘어지는 게 아니다. 미국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면서 유화적인 제스처를 해도 부족한 상황에서 초등학생만도 못한 발언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우려스러운 것이다.

미국의 국제정세분석가 조지 프리드먼(George Friedman)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우리보다 더 절실하게 동맹을 원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사실 미국이 그렇게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면서 “한국은 동맹인 미국이 한국을 필요로 하게 만들어야 하고, 또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을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로의 필요와 국익에 기반해야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한말 가쓰라-태프트 밀약(Katsura-Taft Agreement)과 1950년 1월의 애치슨 라인(Acheson Line) 때처럼 미국이 국익을 위해 우리나라를 헌신짝처럼 버린 과거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과거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다만 무엇이 앞으로 우리의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인가를 철저하게 따지는 실용주의 외교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념과 이상에 사로잡혀 온 국민들을 나락으로 빠뜨린 병자호란과 같은 비극이 재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성환 고려대 경제학과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