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배럿 신임 연방대법관 취임...'기울어진 미국의 저울', 향후 여파는?(종합)

2020-10-27 10:58
배럿, 지명 한 달만 '초고속 인준'...트럼프 4년 간 3명의 대법관 인선
대선 결과 공방서 고지 선점...낙태권·의료보험·총기규제 보수화하나?

미국 연방대법원의 저울이 보수로 확실히 기울었다. 임기 4년 만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법관 정원의 3분의1을 채워넣으면서, 향후 미국 사회에 미칠 여파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특히, 오는 11월3일 대선 승패 판정이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경우 절대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신임 연방대법관 취임식을 개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에이미 코니 배럿 신임 연방대법관.[사진=로이터·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CNN과 폴리티코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상원은 이날 본회의를 열고 에이미 코니 배럿 연방대법관 지명자의 인준안을 통과시켰다.

상원은 인준안 표결을 놓고 30시간 이상 대치를 이어갔지만, 결국 수적 우위를 차지한 집권 공화당은 찬성 52대 반대 48로 무난하게 인준안을 승인했다. 현재 정원이 100명인 미국 연방의회 상원에서 공화당은 53석으로 다수당을 차지한 상태다.

당초 공화당 내에선 수전 콜린스 의원(메인주)과 리사 머카우스키 의원(알래스카주)이 대선 전 인준 절차 강행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최종적으론 콜린스 의원만이 반대표를 던졌다.

배럿 지명자의 상원 인준은 지난달 26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 이후 한 달 만에, 지난 22일 상원 법사위가 배럿 지명자의 청문회 인준안을 처리한지 4일 만에 이뤄진 '초고속 통과'다.

앞서 22일 법사위에선 당시 민주당 소속 10명의 의원은 모두 불참한 채 공화당 소속 12명이 청문회 인준안을 단독 처리했으며, 24일에는 리사 머카우스키 의원은 상원 본회의에서 "배럿 지명자의 직무 수행 능력에는 의심이 없다"면서 인준 표결 강행 반대 입장을 철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원의 인준 직후 곧바로 미국 백악관에서 배럿 지명자의 취임식을 개최했다. 

배럿 지명자의 상원 인준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4년 임기 동안 닐 고서치, 브렛 캐버넌 연방대법관에 이어 3번째 대법관 인선에 성공했다. 전체 9명인 연방대법관 정원의 3분의1을 채워넣은 것이다.

특히, 11월3일 대선을 불과 8일 앞둔 상황에서 대법관 인준이 의회에서 이뤄지면서 막판 표심과 선거 결과에 미칠 여파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의 타계로 생겨난 미국 연방대법원의 빈자리를 빠르게 채워넣으며 대선 승리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평가다. 대선 당일 근소한 차이로 승패가 갈릴 경우 결과 판정 공방이 대법원 판결까지 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아울러 코로나19 사태로 우편투표와 사전투표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개표 혼란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날 기준 미국 전체 유권자의 60%가량인 6000만명이 사전투표를 완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로이터와 AFP 등은 이번 인준이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대한 승리를 안겨줬다고 평가했다.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신임 연방대법관 취임식을 개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에이미 코니 배럿 신임 연방대법관 내외.[사진=AP·연합뉴스]

 
'급격히 기울어진 저울'...낙태권·의료보험·총기규제 보수화하나?

보수 성향의 배럿이 미국 연방대법관에 취임할 경우, 보수 6대 진보 3으로 연방대법원의 정치 성향 역시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48세의 배럿 신임 대법관은 고(故) 안토닌 스캘리아 대법관의 서기 출신으로, 역대 5번째 여성 대법관이자 1991년 43세의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 이래 두 번째로 젊은 대법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법리적으로는 헌법주의자면서 원전주의자로 알려졌다. "상충하는 판례보다는 헌법에 대한 최선의 이해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동시에 헌법을 입법할 당시의 의도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성향이다.

아울러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낙태 합법화'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 이에 따라 배럿 지명자는 향후 자신의 임기 중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앞서 2017년 연방법관 임명 청문회 당시 다이앤 파인스타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은 "배럿 안에 도그마(기독교 교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으며, 남성 리더를 '머리'로, 여성 리더를 '시녀'로 칭하는 종교단체인 '찬양하는 사람들'의 회원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아울러 현재 미국에서 첨예하게 대립 중인 총기규제와 사회의료보험 등의 주요 사안에서도 보수적 성향의 판결을 주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폴리티코는 배럿의 취임 이후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전국민건강보험법(ACA) 등의 현안을 가장 먼저 다룰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전임인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과 배럿 신임 대법관은 정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어 여론의 반감이 큰 상황이다. 지난달 18일 향년 87세로 별세한 긴즈버그 대법관은 진보의 상징이자 보루로 연방대법원의 균형추를 유지하던 위치였다.

실제 이날 상원의 인준안 표결을 앞두고 미국 워싱턴DC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는 배럿의 지명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는 아이를 낳는 일만 허용된 시녀가 등장하는 소설 '시녀이야기'의 캐릭터 의상을 입고 낙태권에 반대하는 배럿의 임명에 항의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지명자 인준에 항의하는 시위대. [사진=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