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별세] 김종인 회고록 속 '악연'
2020-10-26 16:42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 자동차 산업 인가 등 놓고 갈등
재계의 거목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가운데,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의 고인의 생전 인연에 관심이 모인다. 여야 지도부는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이 회장의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는데, 고인과 인연을 갖고 있는 사람은 김 위원장 한 사람이다. 김 위원장은 1940년생, 이 회장은 1942년생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겪은 세대다.
김 위원장은 이날 조문을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고인에 대해 “내가 경제수석을 할 때 자주 만나고 그런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 산업 전반을 봤을 적에 삼성전자가 반도체, 스마트폰 등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드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창의적인 머리를 갖고 오늘날 국제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산업,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아주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고인에 대해 높은 평가를 했지만, 김 위원장은 자신의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 이 회장과의 악연을 기술해두기도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 위원장은 재계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회고록에는 익명으로 기술했지만, 정황상 이 회장을 가리키는 일화가 다수 있다. 몇 가지를 소개한다.
김 위원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와 관련,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 신랄한 평가를 기술하기도 했다.
“기어이 자동차 사업을 하겠다며 ‘나는 한번 하려고 하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한다’라고 말했던 그 재벌 총수의 회사는 30년 후에 큰일을 저질렀다. 대통령 최측근에 있는 이른바 ‘비선실세’에게 접근해 재벌의 부자 승계 문제 해결을 잘 협조해달라고 청탁했던 일이 드러났다. 그런 사건 등으로 대통령이 탄핵됐고, 총수의 아들도 수갑을 차고 감옥에 갔다. 그때 내가 놀랐던 것은 정권의 비선실세가 과연 누구인지, 누구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그 재벌이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재벌들이 엉뚱한 사람을 비선실세로 잘못 알고 허튼 로비를 시도하고 있을 때에도, 모든 언론이 비선실세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던 시절에도, 오직 그 재벌만은 누가 비선실세이며 그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취향과 요구까지 정확히 알고 접근했다. 과연 그들은 ‘하려고 하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는’ 영악함과 집요함을 지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돈을 무기로 온갖 정보와 인맥을 사들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