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별세] 이 회장이 예측한 21세기, 얼마나 맞았을까
2020-10-27 00:00
1997년 출판한 생애 단 한권의 책
동아일보에 연재한 칼럼들 엮어
동아일보에 연재한 칼럼들 엮어
“변화는 근본적으로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변화 속에는 기회와 위기가 항상 같은 크기로 존재하는 만큼, 변화의 흐름을 먼저 읽고 한발 앞서 준비해 나가면 오히려 도약의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향년 78세로 작고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생애 단 한 권의 책을 남겼다. 지난 1997년 11월에 발행된 <이건희 에세이-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55세의 이 회장을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다.
고인은 “채 다듬지 못한 생각과 문장 등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21세기를 생각하며 준비해 가려는 뜻있는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며 ‘동아일보’에 연재한 칼럼을 책으로 엮은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고인은 기업이 30년 이상 살아남기 위한 조건으로 진정한 위기의식과 변화에 대응하는 힘, 미래 지향적 산업 경영, 자율과 창의가 발휘되는 기업 문화를 꼽았다.
진정한 위기의식은 비록 사업이 잘 되고 업계 선두에 있을지라도 앞날을 걱정하는 자세에 있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효율적인 조직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몸집이 커지면서 관료주의가 되는 만큼 조직과 사업에 있어서 필요 없는 군더더기를 없애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자신이 강조한 변화를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리더였다.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에서 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는 말에는 변화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고 말한 배경은 책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었다. 고인은 “1987년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하고 나니 막막하기만 했다. 세계 경제는 저성장의 기미가 보이고 있었고, 국내 경제는 3저 호황 뒤의 그늘이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1992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불면증에 시달렸다. 하루에 네 시간 넘게 잘 수가 없었다. 이 회장은 “이대로 가다가는 사업 한두 개를 잃는 것이 아니라 삼성 전체가 사그라들 것 같은 절박한 심정이었다”고 털어놨다. “나부터 변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외친 고인의 경영철학에 힘입어, 삼성은 변화에 변화를 거듭했고, 어느새 초일류 그룹으로 성장했다. 고인의 '변화예찬'이 아니면 일구기 힘든 성과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