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이 흐르듯 자연스레 펼쳐진 김창열의 문자

2020-10-23 16:33
물방물과 문자 만남·회귀·성찰...작품 변화 ‘한눈에'

‘Recurrence NSI91001-9’ [사진=갤러리현대 제공]


50주년을 맞이한 갤러리현대가 2020년 마지막 전시로 김창열 화백의 전시를 선보인다. 물방울의 완벽한 동반자인 ‘문자’에 집중했다.

김창열 개인전 ‘더 패스’(The Path)가 23일부터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린다. 문자와 물방울이 만난 김창열의 대표작 30여 점이 전시됐다.

갤러리현대는 1976년 프랑스 파리에서 활약 중인 김창열의 개인전을 개최하며 인연을 맺었고, 이후 44년간 함께 하고 있다. 김 화백이 갤러리현대에서 여는 14번째 개인전이다.

50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있는 김창열의 전시를 연 갤러리현대는 “문자는 이미지와 문자, 과정과 형식, 내용과 콘셉트, 동양과 서양, 추상과 구상의 세계를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미적 토대이지만, 이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물방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진했다”고 전시 배경을 설명했다.

문자는 생명·순수·정화를 상징하는 물방울의 동반자다. 1층 전시장은 둘의 만남에 주목한다. 물방물이 문자와 최초로 결합한 1975년 작품 ‘휘가로지’를 만날 수 있다. 김 작가는 1949년 발행된 프랑스 신문 ‘휘가로’(Le Figaro) 1면에 수채 물감으로 물방울을 그렸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물방울과는 달리 형태가 제각각 다른 초창기 작품이다. 

1975년 작품 ‘휘가로지’ [사진=갤러리현대 제공]


지하 전시장에서는 문자가 물방울과 함께 작품의 주인공으로 부각 된 ‘회귀’ 연작을 만날 수 있다. 할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을 배웠던 작가의 어린 시절로 ‘회귀’해 물방울과 천자문을 만나게 했다. 우주와 자연, 인간 삶의 이치 등에 관한 천자문은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물방울이 흐르듯 문자도 흐른다. 김창열 작가는 “한자는 끝없이 울리고 끝없이 펼쳐진다”며 “어린 시절 맨 처음 배운 글자이기 때문에 내게 감회가 깊은 천자문은 물방울의 동반자로서 서로를 받쳐주는 구실을 한다”고 언급했다.

‘회귀’는 변화로 이어졌다. 이전 작품의 물방울이 캔버스 뒤에서 앞으로 스며 나온 듯한 인상을 준 반면, ‘회귀’ 이후 물방울은 캔버스 앞에 맺힌 형태로 그려진다. 다채로운 색감의 도입도 변화 중 하나다. 노란색과 붉은색 등 다채로운 색감을 느낄 수 있게 전시장을 구성했다. 색을 입은 문자는 강렬했다.

물방울은 하나여도 충분했다. 1991년 작품인 ‘Recurrence NSI91001-9’에 있는 물방울 하나는 수많은 문자와 완벽한 균형을 이루며, 함께 하고 있었다. 도저히 균형이 맞지 않을 것 같은데, 정확히 수평을 이루고 있어 놀랍다. 

2층 전시장의 주제는 ‘성찰과 확장’이다. 작가가 198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제작한 ‘회귀’ 연작 중 먹과 한지를 소재로 한 작업을 만날 수 있다.

한지와 먹을 무수히 교차시켜 쌓자, 문자의 형태는 사라지고 무한의 공간이 펼쳐진다. 색이 다양한데, 땅 같기도 숲 같기도 하다. 문자도 물방울 같은 자연이 됐다.

기혜경 평론가는 김창열의 한문을 겹쳐 쓰는 작업 방식에 대해 “작가 스스로가 동서양의 차별점으로 규정한 자신을 비워내는 작업 방식을 그대로 실현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시 제목 ‘The Path’는 동양 철학의 핵심인 ‘도리’를 함축하고 있다.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는 “‘회귀’ 연작에 등장하는 문자는 캔버스의 영롱한 물방울과 더불어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의 회화에서 문자는 내용과 형식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며 해석의 여지가 풍부함에도 이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미진했다”며 “이번 전시가 천자문과 도덕경의 여러 구절을 화폭에 옮기며 작가가 향했던 진리 추구의 ‛길’을 함께 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29일까지.
 

1980년대 김창열 화백. [사진=갤러리현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