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왜 종전선언에 집착할까
2020-10-18 18:35
그런 종전선언이 10년도 더 2018년 4월 27일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다시 등장했다. 두 정상이 정전협정 65주년을 맞아 종전을 선언하기 위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추진하기로(4‧27 공동선언) 합의한 것. 그러나 이 역시 어떤 진전도 없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이 카드를 또 꺼내들었다. 지난달 23일 유엔총회 화상연설에서 “종전선언이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라고 한 이래 줄곧 그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정작 북한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김정은은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기념 열병식에서도 이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오히려 유엔총회 연설에서 대결적인 발언으로 일관했다. “남측의 적대행위가 노골화되고 있어서 우리는 누구도 범접 못할 최강의 국방력을 다지는 길에서 순간도 멈춰 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북이 더 적극적인 자세로 나오는 게 맞는다. 종전선언으로 대북제재 해제의 명분도 생기고 유엔사 해체와 한·미동맹의 약화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그럴까.
北, 종전선언 실현에 회의적
북은 한국이 주도하는 종전선언이 실현될 거라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논의조차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는 얘기다. 북은 1974년 최고인민회의 제5기 3차 회의에서 당시 외교부장 허담(1929~1991)의 보고를 통해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키로 방향을 선회한 이래 일관되게 미국과의 직거래를 추진해왔다. 한국이 제안하는 종전선언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더욱이 2019년 2월 ‘중재자’를 자임한 한국을 믿고 집을 나섰던 김정은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에게 망신을 당한 아픈 기억까지 있다.
그러니 북은 종전선언을 무겁게 여기지 않는다. 이는 10‧4선언에 이어 4‧27선언에서도 종전선언의 주체를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로 모호하게 언급한 데서도 드러난다. 진정으로 종전선언을 원한다면 4자로 못 박는 게 옳다. 당사국 자격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중국이 배제된 3자 종전선언이 가능하겠는가. 그럼에도 중국이 선언의 주체에 포함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고 한 것은 북으로선 그만큼 절박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에 대한 북의 ‘거부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북 입장에서 대중(對中)관계는 항상 양면적이다. 혈맹이긴 하나 그렇다고 중국에 복속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전례도 있다.
김영삼 정권 때 열렸던 한반도 4자 평화회담(1997년 8월∽1998년 1월) 당시 북한은 애초 중국의 참여에 부정적이었다. 북은 남·북·미 3자회담을 선호했다. 그런 북을 설득하기 위해 한·미 양국은 공동설명회와 차관보급 3자회담까지 준비해야 했다. 북이 중국의 참여를 양해함으로써 4자회담이 열릴 수 있었다. 우리 외교부도 다 아는 얘기다. 전통적으로 중국은 종전선언 문제에 대단히 예민하다. 무릇 모든 협정에는 서명당사자와 이행당사자가 있다. 정전협정도 그렇다. 서명당사자이면서 이행당사자인 나라는 미국과 북한뿐이다. 중국은 이행당사자가 아니고, 한국은 서명당사자가 아니다. 중국은 그래서 한편으론 자신들이 ‘패싱’될까봐 걱정한다. 중국이 문 대통령의 제안에 즉각 지지의사를 밝히고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북한이 종전선언에 목을 맬 필요가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북은 그동안 군사정전위를 와해시키고 유엔사의 위상을 약화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1994년 정전위를 폐쇄하고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설치한 것은 단적인 예다. 이후 북은 유엔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들에게 유엔군 대표는 미군대표일 뿐이다. 자신들의 다짐대로 “정전위 체제를 대미(對美) 평화협정 체제로 전환”한 셈이다. 그런 북이 대가(代價)도 없이 그 위에다 ‘종전선언’이란 덮개를 씌울 이유가 있을까. 자칫하면 그 덮개가 군비증강과 핵개발에 족쇄가 될 수도 있다.
“비핵화와 종전선언 따로 놀지 않아”
종전선언의 키를 쥔 미국의 입장도 회의적이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구상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16일 “종전선언과 비핵화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다”고 언명한 게 이를 반증한다. 결국 비핵화 없이는 종전선언도 어렵다는 현실, 곧 미국의 생각과 방침을 인정하고 승복한 것이다. 물론 서 실장은 “종전선언이 비핵화 과정에서 선후관계가 어떻게 되느냐, 또는 비핵화와 결합 정도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일 뿐”이라고 부연해 향후 추진 과정에서 다양한 정책적 조합과 운용의 묘를 살려나갈 것임을 암시하긴 했다.
그럼에도 큰 틀에선 도돌이표처럼 원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 대목에서 누군가는 안도하고, 누군가는 절망할 터이다. 전자는 미국 때문에 북의 핵무장 속도가 늦춰졌다고 생각하고, 후자는 “역시 남북관계는 미국 때문에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인영 통일부장관이 지난 8월 “남북 간 인도적 교류와 협력을 위해 한·미 워킹그룹의 기능과 운영을 재조정하자“고 제안한 것은 후자의 입장에 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하다. 종전선언은 그 어의(語義)가 주는 것처럼 명쾌하지도, 포괄적이지도, 목가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전쟁을 끝낸다는 종전! 모두가 일제히 총을 내려놓고 호미와 괭이를 들고 들판으로 나가고, 각국 정부는 서로 우호‧선린조약을 맺기에 바쁜 한 폭의 걸개그림이 연상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상존하는 핵 위협 앞에서 관련 당사국들은 생각도, 그들 간에 이해관계도 다 같지 않다. 이걸 종전선언이라는 문서 한 장으로 조정하고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판타지다. 종전에 대한 보장은 누가 해주나. 유엔이 해주나.
노파심 탓이지만 혹여라도 전가의 보도처럼 써온 그 논리, “평화에 반대해? 그럼 전쟁하자는 거야”와 같은 논리를 또 동원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번에는 “종전이잖아, 종전은 좋은 거 아냐? 전쟁 끝내자는 데 반대해? 그럼 반(反) 평화세력이네”가 될는가. 언어를 통해 의식을 선점하고 이를 소통의 도구로 삼아 정책에 대한 주목도와 지지도를 높이는 진보진영의 출중한 능력은 인정하지만 이번만은 자제해 줬으면 한다. 사안이 그렇게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失地회복 문제 제기될 수도
최악의 경우 종전선언은 실지(失地)회복의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실제로 북한은 6‧25전쟁 후, 38선 체제를 포함해 과거 전쟁 전의 경계선으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한 적도 있다. 우리 측에서도 원래 우리 땅이었던 개성을 돌려받고, 대신 강원도 고성 땅 일부를 주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북이 응하지 않았다. 1967년 이스라엘은 ‘6일전쟁’(제3차 중동전쟁)으로 이집트의 영토였던 골란고원과 시나이반도를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 이집트는 절치부심, 1974년 이스라엘을 선제공격해(제4차 중동전쟁) 시나이반도를 되찾는다. 지금도 대표적인 실지회복 전쟁으로 꼽힌다. 한반도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북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분단과정에서 동·서해안의 해상경계선에 대해서는 남북 사이에 명시적 합의가 없었고, 현재의 경계선은 유엔군에 의한 일방적 조치에 불과하다는 것이 북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 정권은 종전선언으로 대북제재가 조금이라도 완화될 수만 있다면, 그 틈새로 대북지원을 밀어넣고, 이를 통해 북·미 양측을 다시 움직여 보려고 한다. ‘비핵화’와 ‘대북 적대시정책 포기’의 테이블로 끌어내 관계 정상화 논의까지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그 역할을 ‘정상회담’이 했지만, 이제는 그 기제를 ‘종전선언’으로 바꾸겠다는 얘기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되고, 남·북·미 사이에 다시 현란한 정상회담 갈라 쇼가 벌어진다면 또 몰라도 지금으로선 그럴 가능성이 낮기에 미리 대비하겠다는 의도도 읽힌다. 일종의 터닝 포인트로, 각도를 조금 바꿔서라도 남북, 북·미 대화의 동력을 잃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드러난다. 소기의 성과가 있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외교정책의 최고·최종 결정자이자 실행자로서 문 대통령의 리더십과 역량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