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부시위 고조되자 칼 빼든 태국 정부..."5명이상 집회 금지"

2020-10-15 15:07
국가 안보 관련 보도·온라인 메시지 금지 담은 '긴급 칙령' 발표

왕실 개혁과 총리 퇴진 등을 요구하는 반(反)정부 시위대에게 태국 정부가 결국 칼을 빼 들었다.

14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태국 정부는 5인 이상 모이는 집회 금지,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보도와 온라인 메시지 금지, 총리실 등 당국이 지정한 장소 접근 금지 등을 담은 '긴급 칙령'(emergency decree)을 발표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태국 정부는 국영방송을 통해 "많은 집단의 사람들이 방콕 시내에서 열린 불법 집회에 참여했고, 왕실 차량 행렬을 방해하고 국가 안보에 영향을 주는 심각한 행위를 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을 효과적으로 종식하고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긴급 조처가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태국에서는 쁘라윳 짠오차 총리 퇴진과 군주제 개혁 등을 촉구하는 반정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쁘라윳 짠오차는 장군 출신으로 2014년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뒤 헌법을 개정하며 군부독재 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이에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시위대가 형성됐고 지난 8월부터 시위 규모가 커졌다. 현재 시위대는 △쿠데타를 일으킨 쁘라윳 짠오차 전 육군참모총장의 총리직 해임 △왕실재정에 대한 회계 처리 기준 강화 △불경죄 폐지 △국왕의 정치적 권한 위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는 며칠 전부터는 시위대가 총리실 밖에서 밤을 지새고, 왕실 진입 차량을 방해하는 등 최근 들어 시위가 더욱 격렬해지는 가운데 나왔다. 전날에는 왕궁으로 통하는 랏차담넌 거리에 있는 민주주의 기념탑 인근에 2만여 명이 모여 반정부 집회를 열어 목소리를 냈다. 애초 경찰은 총리실로 향하는 길목에 버스 등으로 차벽을 만들어 행진을 막았지만, 이들은 저녁 무렵 정부청사까지 행진하는 등 '밤샘 집회'를 열었다.

이날 경찰 당국은 정부의 칙령 발표 직후 6개 중대를 동원해 총리실 바깥에서 밤샘 시위를 하던 집회 참석자를 해산하고 이들 중 20명을 체포했다. 체포된 사람 중에는 인권변호사로서 집회를 주도한 아논 남빠 등 반정부 세력 지도부 4명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정부의 강력한 대응에도 시위대는 이날 오후 쇼핑몰 등이 밀집한 방콕 중심가에서 또 다른 집회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따라 당국은 경찰 13개 중대를 집회 예정지 인근에 배치할 방침이라고 밝혀 시위대와 경찰 간의 충돌이 예상된다.

태국 마히돌대의 시리부나부드 정치학 교수는 CNN방송에 출연해 "수개월째 이어진 시위에 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되레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며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정부에 시위대가 화가 나 있는 만큼 앞으로도 시위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