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삼양사 치우고 官客(관객) 기둥뿌리 새로 박아라?

2020-10-14 05:30
금감원의 이상한 'JB금융 경영유의' 징계 톺아보기
대주주 집안 김한 전 회장 재직 9년간 내내 한마디 없다가 최근 행정지도
금감원 공시자료엔 구체 사례 없이 '대주주 우려' 전제로 '견제 장치 마련' 주문
금감원 부원장 출신 김기홍 회장에 유관우 전 부원장보가 사외이사인 JB금융
금융회사엔 대주주가 없어야 한다는 선전포고인지 금융권 설왕설래

지난 9월 23일.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 경영유의사항 공시가 하나 떴다. 대상은 JB금융지주. 금감원은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제재 내용을 이렇게 홈페이지에 공시한다. 금감원은 이 공시가 "금융회사의 주의 또는 자율적 개선을 요구하는 행정지도 성격의 조치"라고 했다. 수위가 가장 낮은 권고 성격의 제재다.

그런데 이 공시가 금융권의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뭔가 마음엔 안 드는데, 제재할 명분은 마땅히 없고, 그래서 자율적 개선을 요구하는 행정지도에 머문, 금감원의 고민이 그대로 묻어난 제재라고 수군댄다. 칼 쓰는 데 능숙한 금감원으로선 굴욕이다.

조치 사실을 적시한 9쪽의 공시자료에서 핵심은 한 가지다. 제목은 '비상임이사제도 운영 시 견제 장치 강화'다. 원문 그대로 옮겨 본다.

[①사외이사가 아니면서 상무에 종사하지 않는 이사(비상임이사)를 두고 동 비상임 이사 2인이 감사위원회를 제외한 이사회 내 모든 위원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하도록 하면서도 ②비상임이사가 대주주 등 특정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고자 JB금융지주 또는 금융소비자와 이해가 상충되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직무상 충실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 사외이사 이외에 이를 견제할 수단이 없어 이사회 내 위원회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 어려울 우려가 있으므로 ③비상임이사 선임 시 JB금융지주의 공익성 및 건전경영 등을 해칠 우려가 있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재선임 시 활동내역에 대한 평가 등을 감안하는 등 적정한 견제 장치를 마련하는 한편, JB금융지주의 경영·전략 등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상 사외이사들과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비상임이사에 대한 견제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음.]
 

[사진= JB금융 제공]

◆책·법률에서 설명과 다른 현실의 사외이사

현재 국내 금융지주회사 중에서 비상임이사 제도를 채택한 곳은 JB금융지주를 비롯해 KB금융·우리금융·농협금융 등이다. 사외이사 제도는 기존 경영진의 전횡을 방지하고 회사의 경영상태를 감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책에선 사외이사가 경영진과 관련이 없으면서 주주들이 회사의 중요한 경영사항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문제를 차단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다르다. 사외이사도 큰 틀에서 선임권자의 컨트롤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법률에선 이사회의 일정 인원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대학교수나 변호사들이 사외이사를 많이 한다. 최근 윤창현 의원(국민의힘)이 삼성물산 사외이사였던 것을 두고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이해충돌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이 직함의 현실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현재 JB금융의 비상임이사 2명은 대주주 추천과 경영 참여 투자자다. 윤재엽 삼양홀딩스 사장과 안상균 앵커에쿼티 아시아 대표(Managing Partner)다. JB금융은 굳이 다른 곳엔 없는 비상임이사 방식을 택한 이유를 밝히진 않고 있다. 대충 짐작은 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외이사는 상장사의 경우 3개사 이상 겸직할 수 없다. 삼양홀딩스 윤재엽 사장은 대주주의 대리인이다. 안상균 대표가 속한 회사는 홍콩계 사모펀드(PEF)다. 국내에서 투자한 기업이 10개가 넘는다. 안 대표는 카카오페이지·카카오M을 비롯해 네이버 계열 라인게임즈에도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결국 대주주와 경영 참여 투자자로 JB금융 의사결정에 참여는 해야겠고, 사외이사는 안 되고, 따라서 사외이사의 큰 범주인 비상임이사로 올린 것으로 풀이한다. 실제로 상법상 규정을 받는 많은 기업에서 사외이사와 비상임이사를 혼용해 운용하고 있다.
 
◆오너家에서 직접 경영할 때도 말이 없었는데···

금감원은 이렇게 제도가 애매함에도 굳이 지적의 칼을 빼들었다. 근거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14조. 그러나 금감원은 문제점을 찾지 못한 듯하다. 이사회에 참여한 대주주 등 특정 집단과 JB금융 및 금융소비자와의 이해 상충 가능성을 제기하며, 이들이 충실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 사외이사 이외에 견제할 수단이 없다고 꼬집었다.

현재 JB금융의 이사는 총 9명이다. 김기홍 회장과 사외이사(김대곤·유관우·정재식·이상복·김우진·박종일) 6명, 비상임이사(윤재엽·안상균) 2명이다. 사외이사가 절반을 넘는다. 김 회장은 금감원 출신으로 대주주와 무관하다. 그렇다면 7대2다. 이런 상황에서 대주주 등 특정 집단이 경영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낮다.

게다가 금감원은 이들 비상임이사의 문제에 대해 '①직무상 충실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 ②JB금융의 공익성 및 건전경영 등을 해칠 우려 등'이라고 공시자료에 적었다. 이들의 규정 위반 내용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한 구체 사례를 적지 못했다. 현재 일어나지 않은 사항을 짐작으로 행정 조치한 것이어서 논란은 불가피하다.

나아가 JB금융이 비상임이사를 이번에 처음 선임한 것도 아니다. 2013년 7월 1일 지주회사 출범 때부터 이런 방식으로 이사회를 꾸렸다. 당시 대주주인 삼양사 오너와 사촌 간인 김한씨가 경영을 맡았다. 김한 전 회장은 삼일회계법인에서 시작해 대신증권을 거쳐 메리츠증권 대표, KB금융 사외이사, 전북은행장을 지냈다. 이후 광주은행 인수와 JB금융 출범 모두 그의 손을 거쳐 나왔다. 만 9년 동안의 일이다. 대주주 삼양사는 이 기간 계속 이사회 멤버였다. 그러는 동안 한 번도 이런 지적을 받지 않았다. 이번 행정 조치가 특이한 케이스인 것은 분명하다.
 

 

 

◆무딘 칼이지만 의도는 전달됐다. 그러나··· 

'비상임이사 재선임 시 활동 내역에 대한 평가 등을 감안하는 등 견제 장치를 마련하라.'

이것이 이번 행정 조치에서 내린 금감원의 결론이다. 주문을 이행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활동내역 평가서를 만들고 재선임하거나, 재선임하지 않으면 된다. 아마도 금감원이 기대하는 답은 후자일 것으로 추측한다. 활동 내역에 대한 평가 툴은 어떻게 만들어도 금감원의 허들을 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JB금융이 충실히 금감원의 주문을 받들어 이들 비상임이사를 재선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대주주는 있되 이들이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JB금융이 만들어진다. 현 김기홍 회장은 금감원 부원장 출신이다. 유관우 사외이사도 금감원에서 부원장보까지 지냈다. 두 분은 금감원의 보험 라인에서 손발을 맞췄던 사이다.

이사회에 대주주와 투자자는 온데간데없고 금감원 출신들이 JB금융을 장악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책이나 규정집에서 말하는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선임권을 가진 사람 앞에서 사외이사의 초라한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주주가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더라고 JB금융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예전부터 지방은행엔 사실상 대주주가 있었다. 부산은행(BNK금융), 대구은행(DGB금융) 모두 대기업이 10% 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출발했다. 그러다 보니 이들 은행엔 그 흔한 금감원 출신 감사 한 명 내려보내기도 쉽지 않았다.

비상임이사가 아닌 사외이사로만 채운다고 해서, 대주주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도 없다. 형식적인 사외이사가 대주주나 인사권자를 위해 뛰는 것과, 대주주와 투자자 몫임을 분명히 하고 책임 있게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의 차이일 뿐이다.

사외이사로만 채워진다면 제일 큰 이익은 현 경영진이 챙긴다. 대주주 눈치는 덜 보고 사외이사는 내 맘대로 할 가능성을 높인다. 금융당국이 입이 닳도록 얘기하는 '주인 없는 금융회사의 월급쟁이 황제'다. 이미 김 회장은 자회사 CEO 후보 추천위원장이고, 유관우 이사는 임원추천위원장과 보상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이에 대해 JB금융 측은 비상임이사 제도 운영과 관련해 "①위원회 구성 시 사외이사의 위원회 참여 구성 수와 균형을 이루도록 개선했고 ②이사회의 지배구조내부규범 개정을 통해 비상임이사에 대해서도 사외이사와 동일하게 평가하도록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어쨌든 금융인들은 김한 전 회장이 물러난 후 JB금융의 활력이 떨어졌다고 평가한다. 전 세계적으로 금융산업 여건이 녹록지 않은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경쟁 지방은행그룹과 비교해도, 성장은 멈추고 있는 자산 굴리기만으로 꾸역꾸역 버티고 있다고 쑥덕댄다. 금감원 출신 경영진이 들어선 후 일이다. 현 경영진은 이를 '젊고 강한 강소 금융그룹'이라고 말한다.

금감원의 이번 JB금융 경영유의사항 행정조치는 전혀 날이 서지 않은 칼이다. 이렇게 무딘 칼을 왜 뽑았는지 알 수는 없으나, 그 의도는 충분히 전달했다. 대주주와 투자자의 책임 있는 경영 참여 대신 금감원 출신의 관치금융으로 지배력을 키워 JB금융의 기둥뿌리를 새로 심겠다는 것인지, 문재인 정부 윤석헌 금감원장에게 다시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