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거래제 3기 온다] “선택 아닌 생존의 문제”…‘탄소 제로’에 사활 건 기업들

2020-10-05 05:15
친환경 경영 여부, 투자 및 협업에 핵심 요소로 부상
정유화학 이어 항공·자동차 업계도 배출량 감축에 속도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꼽혔던 석유·화학·조선 등 '중후장대' 기업들이 온실가스 절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동차와 항공기 등을 생산·운용하는 완성차 업체와 항공사도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그동안 기업 이미지를 위해 마지못해 하던 캠페인의 성격에 머물렀으나, 이제 혁신하지 않고서는 사업 전반을 이끌어가기 어렵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탄소제로 경영'이 핵심 요소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4일 산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온실가스 배출 감소에 힘쓰고 있다. 대표적으로 LG화학은 '2050 탄소중립 성장(CarbonNeutral Growth)'을 핵심으로 하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전략을 지난 7월 발표했다. 탄소중립 성장은 사업 성장에 따른 탄소 배출량 증가와 동등한 수준의 감축 활동을 펼쳐 탄소배출 순증가량을 '제로(zero)'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LG화학은 2050년 탄소 배출량을 지난해 배출량 수준인 1058만t 수준으로 억제하겠다는 포부다. LG화학은 이미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1만1000t의 온실가스 감축을 단행했으며, 2050년 탄소 배출량 전망치 대비 75% 이상을 줄이기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 및 에너지 효율화 등을 실행한다는 계획이다.

정유업계에서는 지난달 현대오일뱅크가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탄소중립 그린성장'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현대오일뱅크는 탄소배출량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 2050년에는 지난해 678만t 수준이던 탄소배출량을 약 70% 수준인 500만t가량으로 억제할 계획이다.

항공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을 눈여겨볼 만하다. 대한항공은 향후 업계 총 탄소배출량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는 '2020 탄소중립성장'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회원사 등과 함께 공동 목표로 채택했다.

올해 화려하게 친환경 경영을 선언한 몇몇 업체 외에도 대다수 중후장대 기업과 완성차 제조·항공사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데 힘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각 사]

실제 국내 최대 완성차 제조사인 현대·기아차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7년 979만t에서 지난해 973만t 수준으로 소폭 줄이는 데 성공했다.

대한항공도 2017년 66만t 수준이었던 온실가스 배출량을 59만t 수준으로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경쟁사 아시아나항공도 이 기간 37만t 수준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억제하고 있다.

조선업계에서도 같은 기간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각각 32.22%와 6.08%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는 못했으나 저감량을 다섯 배가량 늘리는 데 성공했다.

SK이노베이션과 롯데케미칼도 탄소 경영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매년 조금씩 줄이고 있으며, 롯데케미칼은 매년 저감량을 20% 이상 늘려가고 있다.

이렇게 정유·석유화학 업계 전반에 '탄소 경영'이 확산하는 이유는 환경을 등한시했던 기존 방식으로는 더 이상 수익을 창출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친환경 기업·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도 늘어난 데다 투자 유치와 협업 등에서도 탄소 경영 없이는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이 형성됐다.

실제 올해 초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국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투자 결정시 환경 지속성을 핵심 목표로 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EU와 미국의 대형 기업들도 속속 협업에서 친환경 경영 여부를 살피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국내 정유사 관계자는 "그동안 친환경은 단순히 기업 이미지를 위해 하던 숙제 같은 개념이었지만 이젠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가 됐다"며 "환경오염이 심해질수록 이런 방향으로의 변화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2050 탄소중립 성장'의 핵심 내용을 담은 LG화학의 2019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사진=LG화학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