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안팎이 서로 다른 미중관계
2020-09-29 17:53
[곽재원의 Now&Future] 9월 29일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에 의한 전세계 사망자수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의 새로운 중심지가 된 인도와 중남미에서는 의료체제의 취약성이 노출되며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지역이동 제한의 완화로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고 있는 유럽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가·지역별 누계로 사망자가 가장 많은 국가는 미국으로 약 20만명에 이른다. 그 다음으로는 브라질(약14만명), 인도(약9만명) 순이다. 사망자수 100만명은 1968년 홍콩독감(인플루엔자)에 필적하는 수준이다. 하루당 신규 사망자수(7일 이동평균) 는 7월 중순부터 약5천~6천명에 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9개월 동안 세계의 톱 뉴스는 당연히 코로나19 피해 관련 내용들이었다.
이러한 코로나19 뉴스만큼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는 톱 뉴스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대한 것들이다. 코로나19가 글로벌 뉴스라면, 미·중 관계는 지정학적 뉴스다. 이 지정학적 뉴스는 코로나19 만큼 임팩트가 전례없이 크다. 글로벌 권력체제가 이미 미·중의 G2체제로 정착됐다는 방증일 것이다. 올들어 1, 2, 3분기의 지난 9개월간의 미·중관계를 보면 마치 벌어진 악어 입 같은 모양새다. 양국이 밖으로는 무역·기술 등에서 첨예한 마찰과 대립을 노출시키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전략적 실리와 미래를 챙기는 모습이 목격된다. 다시 말해 ‘분단과 교류’의 두 얼굴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몇가지 상징적인 사례를 짚어보자. 지난 9월 10일 국제 곡물거래 지표인 시카고선물시장에서 대두(大豆) 시세가 1부셸당 9.85달러로, 8월 상순부터 10%기량 상승하며 2년 3개월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두는 식용유 원료와 가축사료로 쓰인다. 이런 대두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고 있는 것이다. 주산지인 미국 중서부가 고온건조로 작황이 악화되어 생산량 전망이 하방수정되고 있는데다 남미산 대두는 내년초에 출하되기 때문에 가격 강세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2020년 한해동안 중국의 미국 농산물 구매 금액이 2017년 수준까지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19 충격에서 회복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가정과 음식점에서 사용하는 대두유는 물론 양돈수가 늘어나며 배합사료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 덕분에 대두 가격 부셸당 10달러 시대의 도래를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미국 금융기관과 중국기업간의 밀월(蜜月)도 선명하다. 9월 22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8월 사이에 주식에 의한 자금조달을 통해 중국기업이 미국 투자은행에 지불한 수수료는 6억달러를 넘어서면서 전년동기비 80%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는 통계가 시작된 2000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중국기업이 지불한 수수료 전체(약12억달러)의 절반을 미국 투자은행이 가져갔다는 계산이다. 미국 주식 시장의 활황을 배경으로 중국기업과 투자가들이 상장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말 전기자동차(EV) 스타트업인 리샹 자동차(Li Auto)가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했다. 한달 후인 지난 8월 중국의 또다른 전기자동차(EV) 샤오펑 자동차(Xpeng Motors)가 뉴욕증시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증시관계자들은 미국정부의 규제강화라는 악재는 있지만 이러한 ‘중국발 향연’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9월15일 중국 정부는 내륙지방의 충칭(重慶)시에서 ‘중국 국제스마트산업박람회’를 열었다. 미·중 기술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퀄컴과 인텔, HP(휴렛 패커드)를 포함한 미국의 첨단기업의 간부들이 대거 참가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측근인 친빈지(陳敏爾)가 충칭시 공산당위원회서기를 맡고 있다. 친서기가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한 산업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번 박람회에서는 화웨이와 텐센트, 바이두 등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수장들이 모두 나와 강연을 했다. 중국 측이 부른 미국기업의 간부들은 온라인 등을 통해 등단했다.
컬컴은 이미 60개가 넘는 중국의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퀄컴의 차세대통신규격 5G 반도체를 채용한 중국기업의 스마트폰도 10개기종이 넘는다며 친중 자세를 확실히 취했다. 인텔 관계자도 “중국은 디지털경제가 가장 빠르게 진전하고 있다”며 “충칭의 반도체개발거점을 강화할 것”이라고 표명했다. HP는 충칭의 개인용 컴퓨터공장에서 철도를 통해 세계시장에 내보내고 있어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트럼프 정권은 화웨이 등 중국기업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미국기업들은 코로나19의 감염확대로 세계경제의 후퇴 속에서도 다시 성장궤도를 타고 있는 중국시장의 중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일본 측의 분석은 명료하다. "미국 트럼프 정권은 미·중 관계의 악화 속에서 경제 전략을 계속 수정해 왔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중국 의존의 위험성을 부각시키고, 홍콩·남중국해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이 수출규제 강화와 서플라이체인(공급망)의 수정, 사이버 공격대책 강화 등 눈앞의 과제만 매달리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동맹국과의 협력 아래 새로운 전략산업 분야의 국제기준을 확립하고, 연구개발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은 신냉전으로 불리는 중국과의 대결을 전제로 한 중장기전략을 다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설령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크게 변하지 않을 거라는 시각이 아직은 대세다.”(일본국제문제연구소 연구보고서)
이런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유화를 주장하는 인사들도 나오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 명예교수인 이즈라 보겔은 최근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을 적으로 취급하는 것은 미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강경한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겔 같은 유화파의 지적은 미국 산업계와 경제계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다.
생산거점과 거대시장으로서의 중국을 끌어들인 국제경제 체제는 큰 전기를 맞고 있다. 미·중 양대국의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설(逆說)과 부조리(不條理)를 직시하면서 새로운 포스트 코로나 국가전략을 짜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