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의 베트남 ZOOM IN] (21) 베트남의 무슬림은 문화적 아웃사이더인가?
2020-09-22 13:35
베트남은 54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로 서양과 동양의 문화, 그리고 동북아 문화와 동남아 문화가 교차하는 중간 지대에 위치해 있다. 베트남은 A.D 938년 응오꾸옌(吳權)이 남한(南漢)의 군사를 바익당강 전투에서 물리치고 독립 왕조를 세울 때까지, 무려 1천년 이상을 중국의 지배를 받아 중국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그러나 다낭을 중심으로 한 중남부에 존속했던 찌엠타인(占城)국은 베트남의 53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인 짬족이 주요 거주민이었고, 짬족은 이슬람을 신봉하고 인도문화의 영향을 깊게 받은 민족이다. 찌엠타인의 옛 이름은 A.D 192년에 수립된 럼업(林邑:192~757)이었다. 9세기 이후에 출현한 나라로 시대의 변천에 따라 호안브엉(環王:757~859), 찌엠타인(占城:875~1471), 짬빠(占婆:1471 ~1832)국으로 국명을 달리했다. 찌엠타인의 영토는 북위 8-20도 선을 경계로 팽창과 축소, 통일과 분열을 거듭하였으나, 쯔엉선 산맥 남쪽으로부터 해안가에 이르는 지역이다. 기후가 건조하고 평야가 적어 짬족은 비옥한 북부지역이나 또는 서남부 지역 마을을 약탈하여 부족한 식량을 해결하였다. 말레이족 역시 찌엠타인을 여러 번 침략하였는데, 767년부터 말라카 반도의 여러 부족으로 구성된 혼합군은 북부 베트남과 남부지역을 수차례 침략하였다. 787년에는 말레이족 전선이 찌엠타인을 침략하여 판랑에 있는 다짱 산 인근에 있던 끄리 바드라히빠띡바라 사당이 소실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종교와 언어, 종족의 연관성은 두 민족을 밀접하게 하여 찌엠타인의 국왕, 자야 신하바르만 제3세인 쩨만은 말레이족 공주와 혼인하였다. 이런 연유로 1318년 베트남의 쩐(陳)왕조가 침략을 해오자, 찌엠타인의 국왕 쩨낭은 외가인 자바로 피신한 적이 있다.
◼ 중부의 짬바니 이슬람, 남부의 짬 이슬람
종족의 기원이나 신체상의 특징으로 볼 때, 짬족은 인도네시아 혈통이다. 그 바탕위에 서양적인 요소, 북 인도적인 요소가 혼입되었고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혼합되었다. 16세기 이후 베트남 조정의 지속적인 남진정책으로 남부를 장악하고 있던 찌엠타인은 베트남에 병합되고 말았다.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3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를 식민통치하던 19세기 중반 이후에 캄보디아에 거주하고 있던 짬족 무슬림들이 메콩강 유역으로 많이 이주하였는데, 이것이 남부 베트남에 무슬림 공동사회가 발전하게 된 요인이 되었다. 현재 베트남에는 지리적 여건, 전파 경로, 이슬람 세계와 짬족의 교류 조건에 따라 두 그룹으로 구분된다. 베트남 중남부의 닌투언과 빈투언 지역을 중심으로 짬바니 이슬람, 베트남 남부의 안지앙, 떠이닌, 빈즈엉, 빈프억, 동나이, 호찌민시를 중심으로 하는 짬 이슬람으로 대별할 수 있다. 짬바니 이슬람은 베트남의 토착 종교와 미신적 생활 요소가 혼합되어 정통 이슬람과는 거리가 멀고, 모계사회 제도, 농업의 주기와 의식, 풍습에 부합하게 변화하였다. 세계 이슬람과의 교류도 없었기 때문에 짬바니 이슬람은 베트남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이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베트남의 54개 민족 가운데 짬족은 약 9만 9천 명 정도로 대부분이 무슬림이지만, 약 1억 명 가운데 인구점유율이 미미하기 때문에, 베트남에서는 이슬람교의 영향력이 크지 않아 대중들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에 이슬람이 처음 짬족에 전래된 시기는 첫째, 11세기부터이나 15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짬족이 이슬람을 신봉하게 되었다는 주장, 둘째, 15세기에 이슬람은 말레이 상인을 따라 짬족의 작은 집단이, 오늘 날의 닌투언 지역으로 유입되었고 최초에는 바니교 또는 구 회교라고 하였다는 주장, 셋째, 터키 병사와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사람들에 의하여 인도로 이슬람교가 전파되었고, 8세기에 인도의 귀족들로부터 배척을 받다가 1193년에 델리가 동양의 이슬람 중심지가 되자, 그 이후 인도 상인들에 의하여 수마트라를 선두로 말레이시아, 자바에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 후 이슬람은 필리핀, 태국 그리고 인도차이나 반도로 전파되었다고 주장한다. 베트남에 이슬람이 전래된 것은 베트남 중남부에 독자적인 국가를 이루고 있었던 찌엠타인에 전래된 것이고, 베트남은 찌엠타인을 정벌하여 자국 영토에 편입시켰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 베트남 가정의 이슬람 문화
고대에 짬족은 모계중심 사회였다. 거주지는 반드시 어머니를 따라야 했고, 가정을 이루고 나면 처가 근처에서 살아야 했다. 집은 처가에서 제공하는 대지에 새로 집을 짓고 살며, 만약 처가가 가난하면, 신랑 집에서 집을 짓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후 사위가 죽으면 자식들은 어머니와 함께 살며, 부인이 죽으면 처가에서 사위에게 부인의 여동생을 소개해 준다. 사위가 처제와 재혼을 받아들이면, 자녀들과 함께 그대로 살 수 있지만 사위가 처제와 재혼을 원치 않으면 자녀들은 외조부모와 함께 산다. 그리고 사위는 처가를 떠나 친부모에게로 돌아가 함께 살고, 친부모가 생존해 있지 않으면 막내 여동생 집에 가서 산다. 사위가 떠나야 할 처지라면, 부인과 함께 일구었던 전답은 처가의 몫이 되며, 처가에서 자녀 양육권을 갖는다. 브라만교는 전통적 짬족 사회에 영향을 끼쳐 계급사회로 만들었고, 계급의 귀천은 모두 모친의 혈통을 따랐다. 계급 사회적인 유습은 오늘 날까지도 결혼 풍습에 잔존해 있음을 볼 수 있다. 신랑과 신부가 서로 신분이 같으면 가장 이상적이다. 신부가 귀족이라면 천민의 신랑을 얻을 수 있으나, 남자가 귀족이라면 천민 출신의 여자와는 결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대 짬족 사회는 여성의 권한이 강했다. 특히, 집안에서 막내딸의 권한이 가장 강했다. 부모의 재산 상속권도 남자는 전혀 향유할 수 없었다. 부모가 아들을 사랑해서 개간한 땅을 일부 주었다 해도 아들이 죽으면, 그 땅은 여동생에게 되돌려 주어야 했고, 외삼촌이나 이모가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에 대한 거부권을 가지고 있었다. 집안에서 막내딸은 누구보다도 부모의 재산을 가장 많이 상속받을 수 있다. 이는 언니들은 이미 출가하여 이미 거주할 집을 지어 주었고, 막내딸은 부모와 함께 살면서 부모를 봉양하느라 고생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짬족 사회와 비교해 보면 이슬람은 부자간의 혈통을 중시하여 아버지 권한이 매우 크다. 자녀들은 아버지에 순종하고 아버지를 존경해야 하며, 아버지 앞에서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 딸은 아버지한테 떼를 써서는 안 된다. 출가시킬 때도 원칙적으로 딸의 의사를 타진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짬족은 모계사회의 고전적인 전통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어서 모계제도의 풍습에 따라 결혼을 하고 사위를 데리고 오는 의식을 행한다. 그리고 처가에 며칠간 묵은 후 본가로 되돌아온다. 신혼부부는 한 집에 살아도 부엌을 따로 쓴다. 전통 이슬람 풍습에 따르면 짬족 사회에 비하여 무슬림 여성은 수동적 지위에 머무르기 때문에, 여성은 남성의 뜻에 따라 순종하여야 한다. 이런 영향으로 짬족 여자들의 사회적인 지위가 낮아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경우가 드물다. 주로 집안일을 하거나 길쌈을 하거나 상업에 종사하여 가계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한다. 미혼 여성은 오후에만 문 밖을 나설 수가 있다. 외출할 때에는 항상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외출하고, 어른이 뒤따라가며 남성과의 접촉을 막았다. 최근에는 베트남의 정치적인 변화로 짬족 무슬림 역시 남성들과의 회합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으나, 외출 시에는 두건을 두르고, 어른이 뒤따라가면서 감시를 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도시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분별이 농촌처럼 철저하지 않다. 농촌에서 짬족 마을은 협소하고, 집들이 서로 가까이 붙어 있어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며, 도시 생활은 TV, 영화, 인터넷에 쉽게 노출되어 있어 전통적인 풍습을 지켜나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짬족 무슬림도 모계중심에서 부계 중심사회로 전이 단계에 있으나, 모계 중심 사회에서 존재하던 여성의 권위나 권한은 짬족 무슬림 사회에 아직도 잔존해 있다. 이슬람 교리에 따르면 능력이 허락한다면 부인을 4명까지 얻을 수 있지만, 짬족의 경우는 거의 없다.
짬족 무슬림들은 주방 용기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용하지 않는다. 앉아서 소변을 보고 글씨를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써 나간다. 의복은 헐렁한 긴 치마와 바지를 입고, 머리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두건을 두른다. 이런 특이한 그들의 관습과 생활에도 불구하고 의상 등의 외부의 모습으로는 캄보디아나 말레이족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짬족은 길에서 어른을 만나면 예절바르게 인사를 한다. 여성이 찾아오면 주인 남자가 마중을 나갈 수 없다. 그러나 사원이나 각종 회합에서는 나중에 온 사람이 먼저 온 사람에게 인사해야 한다. 인사는 손목부터 손가락 끝까지 서로 쓰다듬고 나서 연배가 비슷하면 오른 손을 접어 손가락을 자기 가슴에 대고, 상대방이 연상이거나 존경을 표할 경우 손가락 끝을 이마에 댄다. 낯선 집을 방문하거나 사원과 같은 성스러운 장소에서는 신발을 벗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발걸음을 해야 한다. 앉는 위치는 출입문 바로 앞이 상석이다. 쩌우독 지방의 짬족 사람들은 베트남어와 함께 말레이어를 사용하고, 아랍어도 어릴 때부터 배워서 아랍어에 능통한 사람은 많지 않지만 비교적 정확한 발음을 구사한다. 예배 때에 꾸란을 암송하기 때문이다.
◼ 음식과 금기사항
꾸란에 무슬림들이 먹지 말아야 음식으로 “저절로 죽은 동물의 피, 돼지고기, 소와 양의 기름,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 네 발로 기어 다니는 짐승, 갈고리 발톱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족을 잡아먹는 날짐승, 그리고 날개도 비늘도 없는 수중 생물 등은 먹어서는 안 된다." 고 명시되어 있어, 짬족 무슬림들은 이를 따르고 있다. 또한 짬족 무슬림들은 다른 무슬림들처럼 염소, 양, 닭, 오리 같은 가축을 잡을 때에 꾸란 구절을 세 번에서 일곱 번 암송하고 나서 동물을 잡는다. 술은 꾸란에서 금지하고 있음에도, 짬족 무슬림들 간에 결혼식이나 사교에 있어 술이 필요한 자리이거나 술을 제조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술을 약간씩 마시는 것은 용인되고 있다.
◼ 의상
무슬림인 짬족과 다른 소수 민족과의 구별은 의생활 문화에 따라 구분이 가능하다. 중부 베트남의 짬족 여성들은 검은 색의 천을 머리에 두르지만, 무슬림 짬족은 면으로 된 수건을 두른다. 이는 무슬림인 짬족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피부가 햇볕에 타는 것과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 것을 막는 목적도 있다. 이들은 무슬림으로서 외출을 할 경우에 면 수건을 반드시 착용한다. 남성들은 보통 무슬림들이 쓰는 카픽을 착용한다. 중부 베트남의 짬족 여성들은 들에 나가 일할 때나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 때, 베트남의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는다. 하지만 무슬림 짬족 여성들은 간편한 파자마 형태의 옷 “바바”를 즐겨 입으며, 행사가 있을 때만 아오자이를 입는다.
사원은 지방마다 색다른 형태를 갖추고 있어 안과 밖 모두 정통 이슬람교 사원과는 다르다. 다만 서남부 지역의 짬족 무슬림들은 규모는 크지 않으나 사원 내부를 이슬람교 규율에 따라 만들었다. 통상 2종류의 건축물이 있는데, 하나는 모스크로 신도들이 메카를 향해 무릎 꿇고 절하도록 동-서향을 따라 건축하고, 또 하나는 기도의 집으로 기도, 식사, 모임 등의 용도로 사용하기 때문에 일정한 방향을 따라 건축되지는 않는다. 기도를 할 경우에 신도들은 방향을 서쪽을 향하여 기도한다.
◼ 교리 준수
짬족 무슬림들은 이슬람 규칙에 따른 하루 5번 기도를 하지는 않고, 하루 3번만 기도한다. 정오에 드리는 주흐르 예배, 오후 4시쯤에 드리는 아스르 예배, 저녁 8시쯤에 드리는 이샤 예배이다. 기도장소는 이슬람 관습대로 사원이나 혹은 개인 집이며 정결한 장소라면 어느 곳이든 무방하다. 중남부 베트남 지역의 짬족은 금식에 관해서, 신도들의 대표들은 일정기간 사원에서 꾸란을 공부하고 율법에 따라 먹고 마셔야 하지만, 일반 신도들은 라마단 기간 중에 식생활의 조화만 지키면 된다고 주장한다. 즉, 물소고기, 돼지고기, 오리고기만 피하고, 새우, 게, 생선은 낮에 먹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반면, 서남부 지역의 짬족은 이슬람 관습에 좀 더 충실하여, 라마단 기간 중에 밤이 되면 이샤 예배에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라마단 기간 중 이샤 예배에 4번이 아니라 20-24번 또는 그 이상 참가해야 한다. 예배 후에는 꾸란 구절을 100번 읽는데, 신도 한 명이 앞에 나와 인도한다. 꾸란 읽기는 새벽 1-2시까지 이어지는 데, 끝나면 사원을 떠나 그룹 별로 이슬람 지식이 많은 신도의 집으로 가서 신도들 간의 교리 문답 시간을 갖는다. 베트남에서의 성지 순례는 제2차 세계대전과 남북 베트남 통일전쟁 그리고 사회주의국가 체제로 바뀌면서 베트남정부가 국민들의 해외여행을 제한하고 있고, 비용 조달의 어려움 때문에 성지 순례를 다녀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베트남은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유교문화의 뿌리가 깊기 때문에, 베트남의 무슬림들이 유교문화에 동화하면서 살고 있는 형편이다. 프랑스와의 독립전쟁과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겪으면서 무슬림들은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고, 이는 정통 이슬람과 다른 “베트남화”된 이슬람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정통 무슬림사회의 의례가 베트남 짬족에게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이는 짬족의 일상생활 속에 전통 문화 습속이 잔존해 있고, 생활환경으로 인해 외부 무슬림과의 접촉이 빈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짬족이라는 소수민족이 신봉하는 이슬람 교세가 크지 않다. 약 9만 9천명에 불과한 짬족의 문화는 소수민족의 전통문화 유지 차원에서 베트남 정부로부터 보호될 것이나, 짬족의 인구 점유율이 낮아, 베트남의 무슬림은 문화적으로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