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좀비의 성공, 다음은…" 한국영화계 SF를 주목하다

2020-09-03 00:00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SF 장르 [사진=영화 'SF8' 'P1H' 포스터]
 

한때는 '좀비 장르'가 서구 영화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엄청난 규모의 좀비 떼가 사람들을 쫓고 그들을 공격하는 모습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화 '부산행'을 시작으로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 최신작 '#살아있다' '반도' 등 한국형 좀비 영화가 잇따라 흥행하고 해외 팬들까지 매료시키며 어느새 '좀비 장르'는 국내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 잡게 됐다.

모두의 우려를 딛고 '좀비 장르'가 흥행에 성공하자, 국내 영화계는 새로운 장르로 눈을 돌렸다. 바로 'SF 장르'다.

SF 장르란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의 약칭으로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라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공상적 드라마를 영화화한 것을 말한다.

1926년 미국에서 세계 최초 SF 전문지 '어메이징 스토리즈'를 통해 널리 쓰였고 소설을 시작으로 영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매체에서 인기를 끌었다.

미국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발달한 SF 영화는 'E.T'(1982), '블레이드 러너'(1982), '로보캅'(1987), '에일리언'(1987) '스타트렉'(1995) '제5원소, '스타워즈'(1999) 등으로 단단한 팬덤을 형성한다.

SF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만, 국내에서는 마이너한 장르라는 인상이 강했다. 과학을 기반으로 한 놀라운 상상력, CG(Computer Graphic), VFX(Visual Effects), SFX(Special Effects) 등 특수효과로 구현한 비주얼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 '천사몽'(2001),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7광구'(2011), '로봇, 소리'(2016), '루시드 드림'(2017) 등 한국형 SF 장르 영화도 등장했지만, 관객들에게는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흥행도 참패였다. 유일하게 '설국열차'만 성공작으로 남았지만, SF 영화 팬덤에서는 예술 영화에 가깝다는 평을 받았다.
 

우주 SF 그린 '승리호' [사진=영화 '승리호' 스틸컷]


최근 국내 영화계도 상상력과 기술력이 갖춰지며 SF 장르에 대한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7월에는 시네마틱 드라마 'SF8'이 공개됐고, 우주 SF 영화 '승리호'는 개봉을 준비 중. 여기에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어 국내 SF 장르의 오명을 씻어낼 계획이다.

먼저 지난 7월 공개된 시네마틱 드라마 'SF8'은 MBC와 한국영화감독조합(DGK), OTT 플랫폼 웨이브(wavve), 영화 제작사 수필름이 힘을 합쳐 제작하는 한국판 오리지널 SF 앤솔러지(anthology) 시리즈다.

민규동 감독을 비롯해 노덕, 안국진, 이윤정 등 8명의 감독이 근미래의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로봇, 게임, 판타지, 호러, 초능력, 재난 등으로 SF 장르를 풀어냈다.

SF 장르라고 하면 CG(Computer Graphic), VFX(Visual Effects), SFX(Special Effects) 등 특수효과로 화려한 비주얼을 상상하겠지만 'SF8'은 비주얼보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장르적으로 풀어내고자 한 작품이다. 이로 인해 'SF 장르'의 편견을 깨고 접근성을 높였다는 평. SF 장르가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관객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반응이다.

개봉을 잠정 연기한 영화 '승리호'(감독 조성희)는 2029년을 배경으로 우주 쓰레기 청소선 '승리호' 선원들이 대량살상무기인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하고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 '승리호'는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SF적 비주얼을 그대로 구현해낸 작품. 240억원의 거대 제작비 규모로 우주의 광활한 광경을 그려냈고, 국내 최초 모션 캡처 기술로 캐릭터를 구현했다. '신과 함께' 시리즈와 '백두산'의 VFX(시각특수효과)를 맡았던 덱스터스튜디오가 로봇 모션 캡처를 맡았다. 비주얼은 할리우드 못지 않지만 이야기 구성이나 캐릭터는 한국적인 색채가 가득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10월 개봉하는 영화 '피원에이치: 새로운 세계의 시작'(감독 창감독)도 SF 장르를 표방한다. 분노와 폭력성을 극대화하는 바이러스로 지구가 폐허가 되자, 다른 차원에 흩어졌던 소년들이 모여 희망의 별을 찾아가는 내용을 그렸다. 올가을 데뷔 예정인 보이 그룹의 세계관을 영화화했다.

이 외에서 영화 '서복'(감독 이용주),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도 관객과 만날 준비 중이다.

영화 '서복'은 '건축학개론' 이용주 감독의 신작으로 죽음을 앞둔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공유 분)이 영생의 비밀을 지닌 인류 최초 복제인간 서복(박보검 분)과 그를 차지하려는 여러 세력의 추적 속에서 고군툰부하는 내용을 담았다. 순 제작비 160억원의 대작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가려진 시간' 엄태화 감독이 4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으로 다크한 SF 장르라고 알려져 있다. 배우 이병헌, 박보연이 주연을 맡았고 내년 3월 크랭크인을 목표로 한다.
 

민규동 감독 연출 'SF8-간호중' 스틸컷 [사진=영화 'SF8' 스틸컷]


왜 한국 영화계는 SF 장르에 관심을 갖는 걸까?

민규동 감독은 "SF 장르는 '이 시대가 어떤 시대가 될 것이냐'에 대한 물음이다. 그 질문을 근본적으로 들여다봐야 SF적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그 지점에서 고민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매력도 엄청나다. 할리우드가 선점해버린 근미래 산업 이미지를 한국인들의 일상으로 자연스레 녹여내는 것도 새로운 작업이다. SF의 전통적 화두는 유효하지만, 방식이나 방법, 그리고 시선에서 새로운 점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민 감독은 SF 장르 영화의 인기와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지금 SF 장르의 큰 영화, 작은 영화들이 기획되고 있다. 예전보다 제작·투자 가능성도 커졌고 신뢰도 얻고 있다. 유행될 수도 있고 순도 높은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어떤 변주와 변종이 일어날 거라고 본다. 그걸 지켜보는 건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기환 감독도 국내 SF 장르를 희망적으로 전망했다.

오 감독은 "SF 장르를 떠올리면, 1960년대 미제 초콜릿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최근에는 한국의 CG 등 기술력이 좋아졌고, SF 작가들도 늘어나 SF 장르 인기도 기대해 볼 수 있게 됐다. 상상력, 기술력이 합쳐져 한국형 초콜릿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