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코로나 확진자'가 아니라 '코로나 피해자'
2020-08-31 18:35
며칠 전 신문을 읽다 익숙한 식당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전주에 있을 때 가끔 들렀던 맛집이다. 언론은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집중 조명했다. ‘전주 31번’으로 불렸던 식당 주인 김모씨가 겪은 이야기다. 보건 당국은 가게 이름과 위치, 그리고 김씨의 동선을 공개했다. 그때부터 집단 낙인찍기가 시작됐다. “죽어도 싸다. 전주를 떠나라”는 악성 댓글부터 하루에도 100통이 넘는 막말과 비난 전화가 쇄도했다.
김씨는 완치돼 4월 초 퇴원했다. 그와 밀접 접촉해 자가 격리됐던 16명도 추가 감염은 없었다. 기자는 “어디서 옮았는지는 모르지만 어디로 옮기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비난과 저주는 진행형이다”라고 썼다. 이 과정에서 김씨의 삶은 완전히 망가졌다. 지난 5개월 동안 극심한 집단 '이지메'와 낙인찍기, 비난에 시달렸다. 바이러스는 극복했지만 사회적 편견은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지금 수면장애와 공황장애, 우울증을 겪고 있다.
SK그룹 임원으로 있는 후배는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누구도 원해서 감염된 게 아니기에 그 또한 피해자다. SK에서는 ‘코로나19 피해자’로 부른다.” 감염자를 타자화하고 범죄자 취급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는 “확진 환자라고 낙인 찍는 순간 2차 피해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감염 사실을 은폐하거나 검사를 회피하고 있다”면서 신중한 용어 선택을 강조했다. 프레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감염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또 다른 바이러스다.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이유만으로 ‘상종 못할 사람’으로 손가락질한다면 공동체는 유지되기 어렵다. 정부와 언론은 틈만 나면 ‘위드 코로나(With Covid-19)’ 시대를 역설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감염자에 대한 배려는 미흡한 실정이다. 신상을 공개하고 치료하면 끝이라는 1차적 방역에 머물러 있다. 희생양을 찾고, 타자화했던 중세의 마녀사냥, 나병 환자를 대하던 당시와 무엇이 다른가.
1월 29일 첫 감염자 발생 이후 국가 트라우마센터 상담은 2만102건(확진자와 가족)을 넘어섰다. 또 자가 격리자와 일반인 상담도 39만1453건에 달한다. 그만큼 정신적인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방역정책에도 세심한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우선 피해자에 대한 명칭이다. 감염자와 일반인을 구별할 목적이겠지만 ‘○○번 환자’로 명명하는 게 온당한지 고민해야 한다. 일련번호는 죄를 짓고 수감된 범죄자를 연상케 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이 발표한 ‘코로나19 인식 조사’ 결과다. 감염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포 심리’는 ‘주변으로부터 받을 비난과 피해가 두렵다’였다. 이는 ‘다시 감염될 수 있다’, ‘완치되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보다 더 높다. 그만큼 낙인찍기와 집단 따돌림은 심각하다. 유 교수는 “감염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고 가해자-피해자 구도로 구별하면 감염병 대응은 물론 자발적 검사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앞서 언급한 식당은 ‘죽도 민물매운탕’이다. 진안 죽도(竹島)는 진짜 섬이 아니라 대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선조 ‘기축옥사’ 당시 역모에 연루된 정여립이 자결한 장소이기도 하다. 식당 주인 김씨는 “코로나 감염 사실이 알려진 이후 발길이 끊기면서 매출은 급감했다. 지금도 30% 수준밖에 안 된다”고 토로했다. 죽도가 진짜 섬이 된 것이다. 김씨의 고통은 진행 중이다. 편견을 거두는 것은 그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다. ‘위드 코로나’ 시대, 누구라도 코로나19 피해자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