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이야기-EOS]①캐논이 열어젖힌 AF 카메라의 새벽

2020-08-31 08:00

3M을 모르는 이들은 있어도 '스카치 테이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소유주를 표시하기 위해 가축에 낙인을 찍은 데서 브랜드(Brand)의 어원이 유래했듯, 잘 만든 브랜드는 소비자의 마음속에 제품을 깊게 각인시킨다. 광고계의 거인 데이비드 오길비가 "브랜드는 제품의 이름과 성격, 가격과 역사 등 모든 것을 포괄하는 무형의 집합체"라고 정의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아주경제는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이 된 한국의 산업계를 대표하는 브랜드에 대해서 살펴볼 계획이다.<편집자주>

프랑스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일상을 포착한 사진으로 유명하다. 브레송 이전의 사진은 뉴스의 보조도구로서 사건이나 사고를 다룬 데 천착했다면, 그의 사진은 평범한 거리에 숨어 있는 삶의 맨얼굴을 드러냈다. 1952년 발간된 그의 첫 사진집의 제목인 '결정적 순간' 역시 여기에서 유래했다.
 

[사진=매그넘 포토스 홈페이지]

브레송은 50㎜ 단렌즈에 소형 수동 카메라를 사용했다. 지금은 '똑딱이 카메라'에도 탑재되는 자동초점(AF) 기능을 기대할 수 없는 게 당연한 시대였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브레송은 허름한 모텔에서 카메라를 쥐고 연습을 거듭했다.

브레송 이후 사진 미학의 조류가 바뀌면서 1980년대 들어 카메라 브랜드들은 AF 기능을 앞세운 카메라들을 대거 내놓기 시작했다. 캐논 또한 마찬가지다. 1985년 캐논은 자사 제품 최초로 AF를 지원하는 일안반사식 카메라(SLR) 'T80'을 야심차게 출시했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미놀타와 니콘이 공개한 경쟁 제품에 밀렸던 탓이다.

캐논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EOS'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전자광학시스템(Electro Optical System)의 약어를 딴 프로젝트 이름처럼 캐논은 전자식 마운트를 승부수로 내걸었다. 목표는 '쾌속·쾌적·고화질'이었다.

기존의 카메라는 AF를 지원하기 위해 본체에 내장된 모터를 렌즈의 축에 연결해 돌리는 방식을 택했다. 반면 캐논은 전자식 마운트, 즉 렌즈에 별도의 모터를 탑재했다. 본체와 렌즈가 물리적 연결이 아닌 디지털 신호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작동함으로써, 당시로서는 최고 속도의 AF를 구현한 것이다. 혁신이라고 할 만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1987년 출시된 캐논 일안반사식 카메라(SLR) 'EOS 650' [사진=캐논코리아컨슈머이미징 제공]


1987년 창사 50주년을 맞아 캐논은 EOS 라인업 최초의 제품인 'EOS 650'을 세상에 선보였다. 개발 코드명이 그대로 브랜드 이름이 된 경우다. EOS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와 표기가 같았던 덕분이다. 대다수의 사진가들이 사랑하는 동 트기 전 새벽 시간을 연상시킨다는 점도 작명에 영향을 끼쳤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EOS 650은 출시 2개월만에 일본은 물론 유럽 시장에서 최고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1987년과 1988년 2년 연속으로 일본 카메라 그랑프리 또한 석권했다. 1989년에는 전문가들을 겨냥한 'EOS 1'을, 1993년에는 보급형 기종은 'EOS 키스(Kiss)'를 잇따라 출시하며 본격적으로 라인업을 확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