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구글의 배신

2020-08-29 10:37

구글이 자사의 앱마켓인 ‘구글플레이’에 거래수수료가 높은 인앱 결제 방식을 강제하려는 움직임을 두고, 국내 콘텐츠 업계가 들끓고 있다.

논란의 인앱 결제는 구글플레이에 탑재된 구글의 자체 결제 방식이다. 이용자들이 사전에 등록한 결제수단으로 손쉽게 결제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구글은 기존에 게임사들에만 강제하던 이 인앱 결제 방식을 웹툰, 음원 등 디지털 콘텐츠 서비스로 적용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그러나 인앱 결제 방식은 거래수수료가 30%로, 계좌이체나 신용카드 같은 다른 결제 방식 대비 수수료가 약 20%포인트 이상 높다. 콘텐츠 기업들이 들고 일어난 건 갑자기 높은 수수료를 내야할 처지에 놓인 탓이다. 수수료의 증가는 결국 소비자가격에 반영돼, 소비자후생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구글이 갑자기 결제 정책을 바꾸려는 것을 두고,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자 실내에서 디지털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산 이후 넷플릭스와 유튜브 같은 동영상 플랫폼의 시청시간이 늘었고, 트위치 같은 라이브 방송 플랫폼도 역대 최대 시청률을 기록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이 각각 서비스하는 웹툰·웹소설 플랫폼의 거래액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검색 포털, 앱마켓 시장의 상당 부분을 점유한 구글이 이같은 트렌드를 모를 리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 모바일 시장에서 구글의 모바일 운영체제(OS)의 시장점유율은 약 80%로, 다른 국가 대비 상당히 높다. 구글은 결제 방식 변경을 위한 테스트베드로서 한국이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구글도 할 말은 있다. 옆집 ‘애플 앱스토어’도 거래수수료의 30%를 가져간다. 그럼에도 비난의 화살이 구글에만 쏠리는 건 구글의 태도 전환 때문이다. 흔히 구글은 ‘개방’, 애플은 ‘폐쇄’로 대표된다. 애플은 2011년부터 이미 앱스토어에 자체 인앱 결제 방식을 강제해왔다. 애플은 아이팟과 아이팟터치, 아이폰으로 이어지는 iOS 생태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폐쇄적인 운영정책을 유지했다. 애플의 서비스를 쓰려면 아이폰, 맥북 등의 제품을 구입해야 한다. 애플은 최적화된 경험을 위해 스스로 서비스들을 통제한다.

구글은 많은 이용자가 모이는 플랫폼을 구축하면 수익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걸 이미 포털 사업으로 경험했다. 이에 구글은 안드로이드 생태계에도 개방을 내세웠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플랫폼과 관련한 모든 소스를 공개하고 개발자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안드로이드가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 넘은 지금, “개방된 시스템이 결국 승리한다”는 구글의 생각은 옳았다. 국내 인터넷 기업들이 지적하는 것은 이 부분이다. 개방과 무료, 다양성을 핵심가치로 삼은 구글이 한순간에 이를 뒤집으려고 하는 것은 입점 업체들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이다. 10년간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려 놓고, 이제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구글과 애플이 주도하는 모바일 생태계는 양사의 차별화된 정책에서 생겨난 경쟁이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구글이 애플을 따르려는 건 경쟁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고, 나아가 ‘구글적 가치’를 버리겠다는 것과 같다. 구글이 수차례 외쳐온 “개방적 생태계가 옳다”는 말을 스스로 증명해나가길 바란다.
 

[IT과학부 정명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