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굴 본다면, 코로나19 주의" 감염보다 '낙인' 두려운 일본 국민

2020-08-28 10:03

 

지난달 24일 한 남성의 이름과 얼굴 등 개인정보가 담긴 전단지가 일본 에히메현 이마바리시 거리에 뿌려졌다.[사진=일본 ANN뉴스 유튜브 영상 갈무리]

 
"이 얼굴을 본다면, 코로나19 주의!"

지난달 24일 한 남성의 이름과 얼굴 등 개인정보가 담긴 전단지가 일본 에히메현 이마바리시 거리에 뿌려졌다. 그의 사진 밑에는 '코로나19 감염자'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최근 일본 ANN뉴스에 따르면, 이 전단지는 시내 음식점 앞에 놓여 있었다. 전단지에는 남성의 정면과 측면 얼굴, 실명 등 개인정보가 상세하게 담겼다. 해당 전단지가 배포된 날은 24일로, 이날은 이마바리시에서 지역 내 첫 확진자가 나온 날이다.

이 뉴스를 본 일본 누리꾼은 "(유인물 배포 같은) 비방으로 인해 지역 주민 모두가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러 갈 것이며, 이는 오히려 감염을 키우는 꼴이 될 것" "전단지를 배포한 자를 잡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논란이 커지자 나카무라 노키히로 에히메현 지사는 "무책임한 정보 확산은 오히려 감염 확대 가능성을 높인다"며 진화에 나섰다. 사진 속 남성이 실제 코로나19 감염자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최근 일본에서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비방이 도를 넘어서면서 감염보다 확진자라는 '낙인'이 더 두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4월 일본 각지에서 코로나19 환자가 속출했지만, 전국의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 광역지역 중 이와테(岩手)현은 '확진자 제로' 타이틀을 유지했다. 하지만 당시 지역 주민의 속내는 안도감보다 '불안감'이 더 컸다.

도쿄에 살고 있는 케이시씨는 이와테현이 고향이지만 귀성을 포기했다. 확진자가 폭발한 도쿄에서 온 사실이 알려질 경우, 확진자 제로인 이와테현에서 비난받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가 지난 6월 24일 트위터(@pandafun20)에 올린 아버지와의 메신저 대화를 보면, 그의 아버지는 (케이시가) 이와테현 1호 확진자가 될 경우, 각종 뉴스에 나올 것을 우려했다. 해당 트윗은 28일 오전 9시 기준 15만 회에 '좋아요'를 받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마스크를 쓰고 길을 건너고 있는 일본 시민들 (사진=AP·연합뉴스)


니가타현(新潟県) 미쓰시(見附市)에서도 코로나19 '낙인 공포'를 그린 만화가 화제다. 지난달 15일 미쓰시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에는 "편안하게 감염되고 싶다"는 제목의 5컷 만화가 올라왔다. 이 만화에는 지역 주민 4명이 나와 "첫 지역 감염자가 되면 좁은 마을에서 소문날 것" "감염자가 되는 즉시, 마을에서 따돌림당할 것" "뒷말을 듣게 될 것" "주위 험담으로 마을에서 못살 것"이라고 한마디씩 한다. 해당 게시물을 본 한 누리꾼은 "코로나19 감염자를 보는 지역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했다"는 댓글이 달렸다.

특히 일본 내 도쿄 차별이 두드러진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일본의 전국 47개 광역지역 중 도쿄도(東京都)에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일본 TV아사히 보도에 따르면, 도쿄에 거주하는 A씨는 성묘를 위해 신칸센을 타고 자신의 고향인 아오모리(靑森)현 아오모리시를 찾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고향 집 앞에는 그를 비난하는 내용이 담긴 A4용지 크기의 쪽지가 날아들었다. 이 쪽지에는 "왜 이런 시기에 도쿄에서 왔느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 등 물음표와 느낌표를 섞어가며 감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이곳에는 어린아이들뿐만 아니라 고령자도 있다. 얼른(さっさと) 돌아가라. 모두에게 폐가 된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쪽지를 받은 남성은 "감염 예방을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유전자 증폭(PCR) 검사를 한 뒤, 음성까지 받았지만 이런 쪽지를 받아 씁쓸하고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한편 일본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엿새째 1000명 미만을 기록하고 있다. 28일 현지 공영방송 NHK에 따르면 전날 일본 전역에서 859명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새로 보고됐다. 이에 따라 일본의 누적 코로나19 확진자는 6만6481명으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