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칼럼] 코로나 피로감이 가져온 동상이몽.

2020-08-25 19:41

[김재영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연일 세 자릿수를 기록하며 집단감염의 공포가 다시 시작되었다. 방역당국은 지역사회의 초비상 상황에 따라 마스크를 상시 착용하고 가급적 집에 머물러주기를 호소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주 서울 출장을 다녀왔다.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 무슨 회의를 하느냐는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비대면 방식 회의의 한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서울 가는 버스 안에서 애써 마음을 다스렸다.

서울에 도착하기 전부터 재난문자를 거의 한 시간에 한번꼴로 받았다. 더운 날씨에 수시로 울리는 각 시·도 및 구청의 재난문자는 전화통화를 방해하며, 본래 목적인 위기의식의 고취보다는 오히려 불쾌감을 유발하였다. 회의에 참석해서는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상대를 알아보기도, 목소리를 이해하기도 힘들어졌다. 회의 과정에서는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땀에 젖은 마스크를 벗어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지난 18일부터 개학을 한 막내 아이가 학교에 가지고 간 물을 일주일 동안 먹지 않고 가져왔다. 물을 왜 먹지도 않고 가져오냐 물으니 선생님이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물을 먹느냐고 되묻는 것이었다. 머리를 크게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말로만 너와 나의 안전을 외칠 것이 아니라 철저한 방역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우리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조만간 끝이 보일 것 같았던 코로나는 잠깐의 방심에 다시 확산되었다. 오랜 장마 끝에 이제야 빛을 볼 것 같던 해수욕장은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시행과 더불어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여름 한철 장사에 생계가 달린 이들의 피해는 막막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현재 추세를 고려해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요청하고 있다. 3단계로의 상향은 지금 우리의 삶은 물론 사회적·경제적 활동에 크나큰 제약을 가져와 지금껏 가중된 피로감에 대한 부담은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다. 정부가 3단계 격상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변화에 대한 동상이몽이랄까? 정부와 여당은 국민의 안전과 경제적 성장,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쫓다 보니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아쉽게도 이러한 사태에 이르기까지 우리네 모습은 힘을 모으기보다는 힘 겨루기에 주력하고 있는 듯하다. 누구의 말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를 떠나, 이들 모두가 인정하는 것은 위기를 기회로 해 우리에게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변화의 방향 및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크다.

본질은 같은데도 불구하고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 보니 협상의 진척은 없고, 서로의 주장만 반복되며, 날도 더운데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버드대 석좌교수 존 코터(John P. Kotter)는 변화관리의 처음이자 가장 어려운 단계로 위기의식의 확산을 제시하며, 위기의식이야말로 변화의 촉발을 위한 시작이라 하였다. 전 세계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자연스럽게 위기의식에 대한 방아쇠는 당겨졌다. 문제는 서로가 꿈꾸는 방향이다. 변화관리의 성공에 있어 중요한 것은 명확한 방향과 비전으로 모두를 이끌고 갈 수 있는 리더십이다. 현재 우리 정부는 위기 극복을 통해 올바른 비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정부와 여당 내에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무슨 꿈과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가? 변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저항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2030 절대적 지지자들의 이탈과 반토막 난 지지율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진정 대구·경북지역에 코로나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 전국에서 모인 수백명의 의료인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있다면, 왜 지금과 같은 시기에 이러한 저항이 나타났는지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 프레임 속으로 옥죄는 것 같은 모습에 코로나가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또한 코로나 사태 속에 집단의 목소리를 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들 스스로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는 현재의 변화요구가 자신들을 위한 것, 자신들을 옹호해줄 것이라는 생각은 명백한 착각이다. 메르스 사태 이후 소위 감염병 예방법으로 불리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 역학조사, 격리조치, 치료비와 생활비 지원 등에 대한 대부분의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국민은 감염병에 대한 진단과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와 지자체는 이에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인터넷에 '치료해 주지 마라', '세금이 아깝다'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은 이미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정당성을 잃은 결과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의 정치·경제·사회 모두 되짚어볼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누가 잘했고, 못했는지를 떠나 모두의 피로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서로 지쳐 포기하지 않도록 정부는 힘겨루기 대신 비전을, 자기만의 안위보다는 어려운 시기에 우리 주변을 생각하는 전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