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國論어젠다] ‘통일부'가 필요한가
2020-08-12 16:16
한 친구가 퀴즈를 냈다. 한국에서 가장 모순이 되는 장관자리는 어디? 선뜻 대답을 못하자 그가 말했다. “통일부 장관.” 그의 설명이 이랬다. “통일부 장관은 통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통일이 되는 순간 장관자리는 없어진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자리를 제 손으로 없애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셈이니 모순 아닌가.” 듣고 보니 그럴듯해 다들 웃었던 기억이 난다. 오래된 학창시절의 썰렁 개그 한 토막이다.
그후, 어찌어찌해서 남북문제 주변을 기웃거리게 됐는데, 늘 떠오르는 건 이 썰렁 개그였다. 통일부 장관자리가 걱정되어서는 물론 아니다. 남북관계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통일부를 대신할 독립적인 다른 기구나 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서였다. 부(部)의 위상도 낮고 실질적인 권한도 없는데 청와대와 국정원 사이에 끼여서 좌우 갈등이 있을 때마다 표적이 되는 통일부의 모습이 답답하기도 했다. 2008년 이명박 정권 출범을 앞두고도 통일부 폐지론이 나온 적이 있다.
그동안 대북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요동을 쳤다. 정권을 잡은 측은 뺏긴 측과 5년 내내 대북정책을 놓고 실랑이를 벌였다. 이에 따른 혼란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어떤 정책이든 일관성 있게 효과적으로 추진되기도 어려웠다. 5년마다 정권이 바뀌니 당대주의(當代主義)의 폐해도 극심했다. 내 대(代)에, 내 재임 중에 뭔가를 이루겠다는 욕심이 왜곡된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도록 몰아갔다. 2007년 10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불과 4개월여 남겨두고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과 수십 조원에 달하는 경협사업을 약속한 것(10·4 선언)은 대표적인 예다.
당시 노 대통령은 김정일이 “두 달 후면 대선이 치러지고, 내년이면(4개월 후면) 정권이 바뀔 수도 있는데 이렇게 해도 되겠는가”라고 묻자 “이럴 때일수록 대못질을 해야 한다”며 밀어붙였다고 한다(문화일보 2012년 10월9일자). 이 약속은 정권이 바뀌면서 없던 일이 됐다. 북한은 반발했고, 반발은 북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이어지면서 이명박 정권 5년 내내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만든 한 요인이 됐다.
박정희 대통령의 7·4 공동성명(1972년)을 기점으로 역대 정권은 저마다 다양한 대북정책을 내놓았지만 그 정책이 다음 정권에서도 살아남은 경우는 없었다. 철저히 부정되고 묵살됐다. 심지어는 김대중(DJ)의 햇볕정책을 계승했다는 노무현 정권에서조차 ‘햇볕정책’을 ‘평화번영정책’이란 이름으로 바꿔 불렀다. ‘평화번영정책’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의해 부정됐고, 이명박의 비핵·개방·3000과 박근혜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문재인 정권에 의해 묵살됐다. 그때마다 혼란과 소모적인 갈등으로 시끄러웠다. 언제까지 이런 일이 되풀이되어야 하는가.
지금 들여다봐도 이렇게 정교한 합의서가 어떻게 체결됐을까 싶을 정도다. 당시 동구 공산권의 붕괴로 두려움을 느낀 김일성이 내심 합의를 더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런 기본합의서이지만 이를 기념하는 변변한 행사 하나 없다. 6·15, 10·4 선언을 두고 해마다 기념식이 벌어지는 것과 대조적이다.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권에서라도 챙겼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진보 정권도 남북기본합의서 정신 기려야
보수정권이 자신들의 소중한 자산을 그렇게 팽개쳐놓고 있다니 한심하다. 통합당은 이제라도 기본합의서가 체결 또는 발효된 날을 기념해 매년 간단한 기념식이라도 가져야 한다. 북에 대해선 합의서의 이행을 줄기차게 요구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보수가 그럴 여유가 없다면 이 정권에서 해주면 안 되나. 명색이 포용국가, 포용정권 아닌가. 문 대통령이 강조하는 ‘한반도 평화’를 가장 정교하게 디자인 한 게 기본합의서다. 진보의 평화와 보수의 평화는 다른가.
남북문제를 대하는 보수와 진보 간 감수성과 역량의 차이가 그만큼 크다는 반증일 터다. 어떻든 대북정책과 담론의 영역에서 균형추는 진보좌파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이래서는 균형 잡힌 대북정책이 구현될 수 없다. 정권으로부터 독립된,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가능한 기구가 있어서 대북정책의 치우침을 최소화해야 한다.
차제에 ‘통일’이란 말도 안 썼으면 좋겠다. 과거 서독은 동독과의 관계개선 과정에서 통일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저 유명한 ‘작은 걸음마 정책’에 따라 작고 쉬운 일부터 차근차근 해나갔을 뿐이다. 우리의 경우는 북한의 핵개발까지 겹쳐 사정은 더 복잡하고 풀기 어렵다. 자칫하면 핵은 핵대로 용인하고, 한미동맹은 깨지고, 분단은 고착화되는 3중고에 빠질 수도 있다. 통일은 기다림이다. 분구필합(分久必合·나뉜 지 오래면 반드시 합쳐진다)의 신념을 갖되 정권을 초월해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
역대 정권의 대북정책들이 본질적으로 크게 달랐던 것도 아니다. 한국적 현실주의(상황의 이중성)의 눈으로 보면 큰 차이가 없다. 북한은 ‘대결’의 상대이면서 동시에 언젠가는 합쳐야 할 ‘통일’의 대상이므로 일면 ‘안보’를 강화하고, 일면 ‘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어떤 정권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벗어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좌우가 균형 있게 참여하는 남북관계위원회를 만들어 소소한 차이는 그 안에서 녹여낼 수 있는 것 아닌가.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이 아니라면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는 대북정책을 국민에게 돌려줌으로써 시민사회에 좌우를 수렴케 하는 역할을 맡기는 일이기도 하다.
남북문제가 걸림돌 되면 선도국 못돼
1980년 남북 총리회담 준비회담의 대표를 맡기도 했던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는 2008년 이런 제안을 했다. 통일정책과 남북대화 업무를 나눠서 통일정책은 통일부에, 남북대화는 ‘무임소특임장관실’ 같은 곳에 맡기라는 것이다. 통일정책과 남북대화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분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본 것이다. 과거 동서독 시절에 서독정부도 대(對)동독협상은 내각수상실에 전담시켰다. 이를 원용하면 대북정책은 남북관계위원회에 맡기고, 통일부는 교류·협력국 정도로 바꿔 남북대화와 교류 협력을 전담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는 지난 6일 세계식량기구(WFP)의 요청에 따라 북한의 영유아와 여성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1천만 달러(약 120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앞으로도 인도적 지원은 정치, 군사적 상황과 무관하게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통합당은 어떤 반대 논평도 내지 않았다. 인도적 대북지원은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같은 날 문 대통령은 북이 사전통보 없이 임진강 상류의 황강댐 수문을 개방한 데 대해 아쉬움을 표시했다. “과거에 그렇게 하도록 남북 간에 합의가 있었는데 제대로 잘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사실상 유감표시다. ‘인도적 지원’과 ‘유감표시’가 동시에 이뤄지고, 또 이뤄져야만 하는 게 한국적 현실이다. 그 현실 위에서 보수와 진보가 수렴할 수 있도록 제도적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해 세계의 모든 나라가 생각을 바꾸고, 전략과 행동을 바꾸고 있다. 철학자 최진석(전 서강대 교수)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나라는 ‘선진국(developed country)이 아니라 ‘선도국’(leading country)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K-방역의 성공을 통해 보여줬듯이 국제사회를 리드하는 나라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보다 앞서가는 선도국이 되려면 발목을 잡히지 않아야 한다. 북한과 대결하면서 동시에 대화도 해야 하는 ‘상황의 이중성’이 우리의 숙명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놓고 내부의 반목과 갈등을 스스로 키워 발목을 잡히게 되는 어리석음은 피했으면 한다. 남북관계위원회를 만들어 대북정책의 갈등은 줄이고 국론은 모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