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칼럼] 치솟는 금값이 불편한 이유
2020-08-02 16:11
금값 상승이 흥미롭다. 역사적으로 금 가격은 오일쇼크를 기점으로 한 단계 점프했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또 한 단계 점프했다. 지금 또 점프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닐까 흥미롭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은 세상이 불확실하고 경제가 위기 상황으로 치달으면 가치가 주목받으면서 가격이 상승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상황 하에서의 금값 상승은 이해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경제 위기와 글로벌 증시 호황이 동시에 벌어지고, 게다가 금 가격마저 상승하는 경우는 언뜻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이유는 뭘까.
우선, 금값 상승의 본연의 배경인 경제 위기 및 불확실성 확대로 안전자산의 가치가 부각되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 경제는 온몸을 다해 달성할 수 있는 성장의 잠재적 수준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한 단계 내려와 있다. 세계 경제를 지탱해 주고 있는 동아줄이 얇으니 미약한 미동에도 크게 흔들리는 형국이다. 되돌아보면,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세계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던 이유도 성장 엔진이 워낙 망가져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나가기로 한 것이 빅뉴스이기는 했지만, 당장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유예기간이 2년이나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괜한 호들갑이었나 싶다. 브렉시트가 발생해도 실물경제가 얼어붙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성장세 자체가 약하기 때문에 작은 파도에도 크게 흔들리는 세계 경제다.
둘째로는, 미 달러화 약세가 금 가격을 올렸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미 달러화가 힘을 쓰지 못해 투자자의 시선이 금으로 향한 것이다. 올해 7월 말 미 달러화 인덱스는 최근 2년간 가장 낮은 94포인트 수준까지 하락했다. 원인은 여러 가지 있을 것이다. 미국의 코로나19 재확산 부각, 사실로 나타났지만 역대 최악일 것 같았던 2분기 성장률 등 경제 침체로 달러화 가치 하락이 예상되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기존의 부양책에 더해 추가적인 재정지출이 계획되고 있다. 미국은 7월 중순까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총 4차례에 걸쳐 2조8000억 달러의 재정을 투입했다. 그런데, 공화당은 7월 말 1조 달러의 일자리 확보 및 의료비 지급 등을 위한 부양책을 상원에 제출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경기 부양법(Stimulus Package)’ 차원에서 투입된 재정지출 규모가 총 7900억 달러였음을 고려하면 이번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한 재정지출 규모 3조8000억 달러는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엄청난 양의 미 달러화가 시장에 공급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겠다. 미국 연준도 7월 FOMC 회의에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할 것을 밝혔다. 이 부분, 달러화 유동성 증가가 최근 금 가격 상승과 글로벌 증시의 호황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과거 금 가격이 온스당 2000달러를 눈앞에 둔 적이 있었다. 2011년 9월이었다. 그러나 당시 유럽 재정위기가 심해지면서 미 달러화가 상대적인 강세를 보여 금 가격은 하락했다. 최근 유럽연합 각국이 경기 부양 정책에 합의하면서 유로화가 강세를 보이고 상대적으로 미 달러화는 더 약세를 보였던 점을 고려하면, 금에 투자하려는 입장에서는 미국 달러화의 향방에 예의주시해야 한다. 미 달러화의 향방은 미국 경기 흐름뿐만 아니라 유로화, 유럽 경기 흐름 및 경기 부양책의 강도 등에도 달려 있어 체크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적정가치를 계산하기 어렵고 보유하는 자체만으로도 이익을 형성하는 금. 금 가격이 온스당 2000달러를 돌파하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지만 마냥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금 가격 상승의 이면에는 세계 정치 및 경제의 불확실성 확대가 있기 때문이다.
(위 내용은 현대경제연구원의 공식적인 견해가 아닌 필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