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반전, 시장에 답 있다] 너 같으면 돌아오겠니?…리쇼어링 시대착오적 발상

2020-07-20 00:05
코로나19로 국경 봉쇄...세계 주요국 정부, 자국으로 생산시설 이전 독려
정부 인센티브 제공에도 기업들 대부분 "돌아올 의사 없다"
높은 생산비용 부담...전문가들 "컨틴전시 플랜 수립 필요"

정부가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꺼낸 카드는 리쇼어링(해외 생산기지의 국내 복귀)이다. 각국의 국경 봉쇄로 글로벌밸류체인(GVC·가치사슬)이 막히자 마련한 해법이다.

그동안 전 세계 글로벌 기업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저비용·저임금을 찾아 해외 각지에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교역 규모로 볼 때 지난해 기준 한국의 글로벌 공급망 의존도는 55%다. 프랑스(53%)와 독일(51%), 일본(45%), 미국(44%) 등에 비해 글로벌 공급망 체제에 더 깊숙하게 편입돼 있다.

코로나19는 글로벌 분업화의 취약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로 인해 세계 경제가 당분간 침체를 겪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올해 전 세계 교역 규모가 전년보다 12.9%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교역 규모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내년 말은 돼야 할 것으로 판단했다. 만약 코로나19 상황이 악화하면 교역 규모가 31.9%까지 추락하는 동시에 2022년에 이르러서야 예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사진=현대차 제공]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요국은 리쇼어링 정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해외 각국에 흩어져 있던 생산 시설을 자국으로 옮기고, 기술 경쟁력을 높여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리쇼어링 정책의 핵심이다. 

리쇼어링은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해외로 나간 한국 기업이 5.6%만 돌아와도 일자리가 13만개 생긴다. 생산설비에 직접 투입되는 노동력이 많은 산업일수록 신규 일자리는 더 많이 만들어진다. 이는 고용 창출에서 끝나지 않는다. 국내생산액 40조원, 부가가치유발액 13조1000억원의 낙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정부가 국내로 유턴하는 기업에 전에 없던 파격적인 수준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배경이다. 정작 기업들은 리쇼어링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시장 현실을 반영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할 정도다.

이미 해외에 공급 기반을 마련한 상황에서 '한국에 오면 잘해주겠다'는 식의 유인은 통하지 않는다는 게 기업들의 생각이다. 특히, 국내보다 해외 시장 비중이 더 큰 대기업에 리쇼어링은 당치 않다는 얘기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높은 인건비와 물류비를 상쇄하고도 남을 획기적인 인센티브가 아니면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국내로 들어오는 기업은 없을 것"이라며 "경영 상황은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희일비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제조업체 308개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해외에 공장이 있는 기업의 94.4%가 국내 복귀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자료=중기중앙회]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8%만 리쇼어링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국내 복귀 계획이 없는 이유로 높은 생산 비용(63.2%)을 꼽았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최저임금 동결 등 노동비용 인상을 자제하고, 노동생산성을 제고해 제조원가의 비교우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코로나19라는 비상 상황에서 실효성이 낮은 정책을 재탕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리쇼어링은 코로나19 이후 갑자기 등장한 정책이 아니다. 2014년부터 유턴법이 시행된 후 올해 6월까지 71개 기업만 국내로 들어왔다. 이 중 대기업은 지난해 8월 울산에 친환경 차 부품 공장을 신설한 현대모비스뿐이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리쇼어링이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전문가들은 비용이 아닌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GVC 전략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금까지 GVC의 위기관리는 1차 벤더(판매사)를 위주로 설계됐다. 상대적으로 사각지대에 있던 2~3차 벤더의 공급 중단이 글로벌 기업의 생산을 중단하게 했다. 중국 내 와이어링 하니스(자동차용 배선뭉치)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서 국내 완성차 공장이 가동을 멈춘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와 기업 모두 국경 봉쇄 상황만 고려해서 리쇼어링을 결정하면 안 된다"면서 "세계화의 후퇴가 이뤄지고 전 세계 공급망 변화가 중요해진 상황에서 컨틴전시플랜(비상 대응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