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인어] 400년 만에 부활한 '예송논쟁'
2020-07-14 18:03
1659년 효종의 승하 이후 서인과 남인은 왕의 어머니인 조대비의 복상(服喪) 기간을 놓고 격렬한 당쟁을 벌였다. 1674년 효종 비(妃)가 죽자, 조대비 복상 기간이 또 도마 위에 올랐다. 이것이 제1∼2차 예송논쟁이다. 왜 작은 문제로 죽기 살기로 싸웠을까. 복상 기간은 왕의 권위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2020년 대한민국. 상(喪)을 '5일장으로 하느냐 3일장으로 하느냐'로 다투고, 장지를 '서울로 하느냐 대전으로 하느냐'로 언성을 높인다. 왜 이렇게 다투는가. 조문 기간과 장지는 망자(亡者)와 진영의 권위를 세워주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글로벌 위기의 그림자가 바싹 다가왔다. 예송논쟁 기간에 조선대기근으로 90만~150만명이 굶어 죽었던 일을 잊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