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포트] 3600조 중국 신탁시장 "심상찮다"

2020-07-02 04:00
사상 초유 4조원 '쓰촨신탁' 환매 중단 사태
'그림자금융' 주축이 된 中 신탁업···코로나19 충격 속 리스크↑
제2, 제3의 쓰촨신탁 사태 발발 우려 목소리도

중국 신탁회사인 쓰촨신탁 본사가 소재한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시 진장(錦江)구 인민난루(人民南路)의 촨신(川信)빌딩 앞. 이곳에선 지난달 중순부터 벌써 세 차례 시위가 벌어졌다.

최근 쓰촨신탁이 판매한 모(母)투자신탁상품(TOT, Trust of trust) 부실 리스크가 커져 당국이 판매 중단에 나섰는데, 자산이 동결돼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을 우려한 투자자들 백여명이 몰려들어 항의한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쓰촨신탁 사태로 중국의 3조 달러(약 3600조원) 규모 신탁업 리스크 공포가 커졌다"고 보도했다. 
 

[그래픽 =아주경제]

 
쓰촨신탁 4조원 환매 중단 사태···투자자들 잇단 시위

올 들어 중국 신탁업은 중국 금융업 부실 리스크 뇌관으로 떠올랐다. 쓰촨신탁 사태는 올해 신탁시장에서 벌써 세 번째 발생한 환매 중단 사태라고 중국 제일재경일보 등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문제가 된 상품은 쓰촨신탁에서 판매한 TOT 상품이다.  TOT는 펀드의 가장 큰 상위개념이라 할 수 있다. 여러 개 개별 신탁펀드를 통해 자금을 모아 투자하는 '트러스트(신탁) 오브 트러스트'의 준말이다. 개별 신탁펀드로부터 모은 자금을 통합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그동안 중국서 신탁업은 별 문제가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면 말이다. 쓰촨신탁 TOT 투자자들은 그동안 원리금을 회수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일반 은행예금 이자보다 더 높은 8~10% 수익률을 제공해 투자자들 사이에서 신탁 투자상품은 인기몰이 했다.  쓰촨신탁 TOT 상품 설정액만 약 260억 위안, 우리 돈으로 4조4000억원에 달했다. 

그런데 올 들어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경기 상황이 안 좋아지자 중국 신탁업계의 부실 리스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서방국 신탁업과 달리 중국 신탁업은 은행에서 주로 취급하지 않는 부동산 개발 등 프로젝트에서 자금을 운용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허장빙(賀江兵) 중국 경제학자는 "중국 신탁업은 우선 사업 프로젝트부터 선택한 후 여기에 투자할 금융기관이나 투자자를 찾아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신탁업이 투자자들이 맡긴 돈을 위탁 관리하는 것과 비교된다.

FT는 "중국에서 신탁업은 부외거래를 통해 신용을 창출하는 등 통제권 밖에 있는 그림자금융(섀도뱅킹)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신탁업이 은행으로부터 대출 받기 힘든 기업이나 사업 프로젝트 자금 조달 채널로 활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올 1분기말 기준 중국 신탁업 운용자산만 21조3000억 위안이다. 이 중 절반 이상이 그림자금융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더군다나 신탁상품 대부분은 펀드 돌려막기, 이른바 ‘폰지사기' 방식으로 금융상품이 운용됐다. 폰지사기는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다단계 금융사기 수법의 일종이다. 쓰촨신탁 TOT 상품도 비슷한 수법으로 굴러갔다. 

그런데 지난 4월 쓰촨성 현지 금융 당국에서 이 같은 쓰촨신탁 부실 리스크를 우려해 TOT 상품의 신규 판매를 중단하면서 문제가 터졌다. 금융당국이 쓰촨신탁 TOT 상품에서 폰지사기 수법 이외에도 투자금 남용, 기초자산 리스크 미공개, 불법 내부거래, 대주주 자금 남용 등 중국 신탁법 조항을 위반한 혐의를 포착한 것. 현재 금융당국은 TOT 자금이 도대체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 기초자산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조사에 돌입한 상태다. 

이로써 더 이상 신규 투자금을 모을 수 없게 된 쓰촨신탁이 기존의 투자 손실을 메울 수 없게 돼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졌다.  쓰촨신탁 TOT 상품의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자금이 약 130억 위안이다. 내년, 내후년에도 각각 103억 위안, 19억 위안어치 펀드 만기가 도래한다. 
 
'그림자금융' 주축이 된 中 신탁업···코로나19 충격 속 리스크↑

쓰촨신탁에서는 이번 환매 중단 사태는 코로나19 충격으로 기초자산 가치가 폭락하며 유동성 위기가 발생한 데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실은 수년간 자금을 남용한 데 따른 부실 리스크가 터졌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실제로 쓰촨신탁의 부실채권비율은 지난해 22.21%까지 치솟았다. 전년도 대비 17% 포인트 이상 증가한 것이다. 부실자산 액수도 22억 위안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영국계 금융분석기관 TS 롬바드 좡보 애널리스트는 "쓰촨신탁 사태를 계기로 중국의 금융 시스템 방면의 리스크가 노출됐다"고 평가했다. 융이신탁(用益信托) 컨설팅사 위즈는 "우리는 수년간 압박을 받아온 거품이 터지는 걸 보고 있다"고 말했다.

TOT 상품에 투자한 대다수 사람들은 부유한 노인들이다. 은행 예금이자보다 높은 수익률에다 리스크가 적을 것이라 여겨 노후자금을 쏟아부은 것이다. 사실 중국에서 신탁상품 투자 기준은 일반적으로 100만 위안부터다. 쓰촨신탁은 이보다 낮은 30만 위안에서 시작됐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임은 분명하다. 

게다가 투자자들은 '정치적 뒷배'가 있는 쓰촨신탁 상품 투자를 암묵적으로 안전하다고 믿었다. 쓰촨신탁의 대주주 류창룽(劉蒼龍) 회장은 전 중화전국공상업연합회(ACFIC) 부회장이자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 출신이다.  FT는 이는 쓰촨신탁과 쓰촨성 지방정부, 중앙정부 고위 관료와의 꽌시(關係, 관계)’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쓰촨신탁이 과연 4조원대 자금을 상환할 수 있을지 시장의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쓰촨신탁 측은 "이번 환매 중단 사태가 코로나19, 경기둔화, 당국의 판매 중단 영향에 따른 것으로, 투자자 합법적 권익 보호를 위해 1년내 만족스런 해결책을 내놓겠다"고 말하며 투자자 달래기에 나섰다. 이를 위해 본사 사옥과 보유 지분을 매각할 것이란 계획도 내놓았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쓰촨신탁 상품에 1000만 위안을 투자한 프랭크 우씨는 "본사 빌딩을 판다고 해도 부채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더 짜증나는 건 정보 불충분"이라고 꼬집었다. 투자금이 도대체 어디에 투자됐는지,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 또 지금 당장 기초자산이 얼마인지조차 모른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제2, 제3의 쓰촨신탁 사태 발발 우려 목소리도

중국 신탁업 시장에서 제2, 제3의 쓰촨신탁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앞서 4월에도 중국 상장회사인 상하이 안신신탁그룹이 100억 위안이 넘는 투자상품이 자금난에 빠지며 환매중단된 바 있다. 안신신탁은 투자금 남용, 리스크 은닉 등 이유로 1400만 위안의 벌금형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5월 초 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은보감회)는 '신탁회사 자금신탁관리 임시방법' 초안을 공개했다. 신탁자금 용도와 투자업종 대상을 제한하는 게 골자다. 

잇단 리스크 노출 속 중국 신탁업 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다. 제일재경일보에 따르면 6월 15~21일 중국내 신탁상품 신규 자금조달액이 129억700만 위안으로, 전주 대비 45% 넘게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신탁상품에 대한 관리감독이 강화된데다가 경기 둔화 속 신탁상품 리스크 우려가 커지면서 당분간 신탁상품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신탁업협회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중국 신탁업 자산 리스크 비율은 3.02%로, 2019년말보다 0.35% 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리스크 자산을 액수로 따지면 6431억300만 위안으로, 전분기 대비 660억 위안(11.45%) 늘어난 것이다.

지난 4월에만 모두 21곳 신탁회사의 신탁상품에서  41건의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했다. 디폴트 금액만 78억6000만 위안이다. 5월에도 모두 23건 디폴트가 발생, 액수만 128억 위안이 넘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경제 충격 속 신탁업 역시 디폴트를 피해가긴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