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윤 칼럼] 미·중 기술패권 경쟁과 한국경제의 선택

2020-06-29 12:59

[엄태윤 교수]


미국과 중국은 지난 1월 15일 1단계 무역협정을 체결함으로써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지속해왔던 미·중 갈등을 잠정적으로 봉합하였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둘러싸고 미·중 갈등이 또다시 불거졌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놓고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이라는 카드로 맞대응하여 중국에 대한 압박수위를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동맹국들에게 중국의 대표적 기업인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구입하지 말 것을 주장한데 이어, 중국을 제외한 경제블럭인 ‘경제번영 네트워크 (EPN)’에 동참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고민중이다.

한국은 주한 미군의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이미 중국으로부터 한차례 경제적 보복을 당한 아픈 경험이 있어, 미·중 간의 치열한 샅바 싸움에서 한쪽 편에 치우치는 것을 꺼리는 신중한 입장이다. 최근 들어 미·중 갈등 이슈가 무역 불균형 문제를 벗어나, 코로나19 책임론, 홍콩 국가보안법, 대만 문제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어 그 파장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한반도 안보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어 다각적인 측면에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대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 19사태로 인해 미국의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있자 대선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중국에 대해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재점화된 미·중 갈등의 본질은 기술패권 경쟁에 있다. 미국은 그동안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한 중국의 도전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개혁·개방정책을 앞세워 노동집약적인 제조업을 경쟁력으로 삼아 일본을 꺾고 G2 국가가 되었으며, 4차 산업혁명시대에서 ‘중국제조 2025’라는 기술굴기와 함께 ‘일대일로’를 통해 미·중 간의 기술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 시진핑 정부의 의지를 읽고 중국의 기술굴기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며, 중국도 반발하여 미·중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포춘지가 매년 글로벌 500대 기업들의 순위를 매기고 있는데, 지난해 처음으로 중국이 기업 수에 있어 미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또한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화웨이 등 수많은 중국 IT기업들이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미국의 글로벌 IT 기업들과 스마트폰, 정보통신을 비롯하여 AI, 로봇, 자율주행 등 미래 핵심기술에서도 시장 선점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5G 시대를 이끌고 있는 정보통신장비 분야에서 중국의 화웨이가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는데, 미국은 5G 시대의 선두주자 자리를 중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중국의 간판 기업인 화웨이를 타깃 삼아 집요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미 국방부는 화웨이, 차이나텔레콤 등 20여개 중국회사들이 중국인민해방군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은 첨단기술 분야의 중국 기업들에 대한 압박수위를 더 높일 것이다.

미·중 갈등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미·중 갈등이 악화되어 한국에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거세질 것이며, 자칫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상황이 우려된다. 일본,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은 미국에 줄을 섰으며, 중국은 미국 편을 든 호주에 대해 무역보복을 가했다. 미·중 갈등 관계를 둘러싸고 한반도의 안보적 측면과 함께 경제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한쪽 편들기’ 식의 의사결정이 쉽지 않다.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등 첨단기술 개발과 관련한 자국 기업들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고 있어 향후 글로벌기업들 간의 경쟁이 더욱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반도체 국산화를 통해 반도체 굴기에 속도를 내고 있어, 앞으로 중국 반도체기업들도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주도해 갈 핵심부품인 반도체에서 한국, 중국, 미국 간에 치열한 격전이 예상된다.

한국과 중국의 기술격차가 확연하게 좁아지고 있어 앞으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걱정스럽다. 현재 중국은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핵심기술인 AI, 자율주행기술 등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으며 기술발전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BAT로 알려진 중국의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이 거대 자본력과 플랫폼 비즈니스 경쟁력을 바탕으로 동남아 등 해외로 사업영역을 발 빠르게 확장시키고 있다.

중국의 주력기업들은 저임금 중심의 경쟁력에서 탈피하여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핵심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 IT 기업들은 AI, 유통·물류, 자율주행자동차, 승차공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부와 우리 기업들이 안이하게 대응할 경우,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핵심기술 경쟁에서 중국, 미국 등의 경쟁기업들에 뒤처질 것이며, 한국경제의 미래도 밝지 않을 수 있다.

미·중 간의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과연 정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그 대책 방안을 고민해 보자.

정부는 AI, 로봇, 자율주행기술 등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핵심기술과 함께 스타트업들을 전략적으로 집중 육성해야 한다. 국내 스타트업들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여 파괴적 혁신을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스타트업 생태계 환경을 조성하는데 적극 힘써야 한다.

금년 초 작고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전 하버드대 교수가 ‘파괴적 혁신 이론’에서 말한 것처럼 4차 산업혁명시대에서는 기존의 대기업들이 아니라 디지털 첨단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기업들이 파괴적 혁신을 주도해 나가며, 미래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게 된다.

‘무어의 법칙’을 기술개발 속도에 적용해 볼 경우, “10년 후 기술력은 지금보다 256배나 향상” 되어 현재와 미래사회의 기술력 차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된다. 또한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비대면 산업이 급속하게 발전하며, 미·중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의 시장독점 현상도 심화될 것이다. 만일 4차 산업혁명시대에서 우리 기업들이 첨단기술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면, G2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지게 된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대외수출에 있어 효자품목이다. 경쟁기업들에 세계 반도체 시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기업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에 나서야 한다.

동북아지역과 한반도 안보를 위해서는 튼튼한 한미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경제적 측면에서는 한미관계는 물론 한중관계도 중요하다. 정부는 미·중 갈등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 자본주의 시장경제, 국익 우선을 중심에 두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한국경제의 희망적인 미래를 위해 무엇보다 올바른 경제정책을 선택하는 것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