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코로나 시대, 영화관의 추억
2020-06-23 14:18
코로나19로 中영화관 휴점 150일째…영화계 종사자 '신음'
시야를 가득 메운 대형 스크린, 벽면 사방에서 들리는 서라운드 스피커 덕분에 영화에 오롯이 집중하며 같은 공간에 있는 (비록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긴 했지만) 관객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중간중간 달콤한 팝콘을 집어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방구석 영화관'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차마 자리를 떠나기 아쉬웠다.
그래도 우리나라 영화 애호가는 ‘행운아’인 것 같다. 이웃나라 중국의 상황을 보면 더더욱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다. 중국 전역의 1만2000여곳 극장은 현재 '무기한 휴업' 중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후베이성 우한에 봉쇄령이 떨어진 지난 1월 24일부터 영화관이 문을 닫은 지 벌써 150일이 다 돼간다.
앞서 3월 중순 상하이를 비롯해 일부 도시에서 잠시 영업 재개를 시도했지만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한 관객들로부터 외면 받았다. 당시 일일 중국 대륙 전체 박스오피스가 우리 돈으로 약 250만원에 불과했을 정도다. 이마저도 며칠 만에 다시 폐쇄 결정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3월 말 아예 공식석상에서 "영화는 영화관이 아닌 인터넷으로 보라"고 지시했다. 이후 영화관들은 좀처럼 문을 열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최근 수도 베이징에서 또다시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하면서 영화관 재개장의 꿈은 더욱 요원해졌다. 중국 온라인에는 이제 옛 기억이 돼버린 ‘극장의 추억’을 곱씹는 글들도 올라온다. 음식점, 술집엔 사람이 넘쳐나는데 왜 영화관만 안 되냐는 볼멘소리도 많다. '사기꾼(骗子)'이라는 아이디의 누리꾼은 “2020년 영화를 볼 자유마저 없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탄했다.
'영화 볼 자유'를 잃은 영화 애호가들의 처지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영화관 휴점으로 생계를 잃은 이들은 생존 위기에 빠졌다. 중국 유명 영화사인 보나필름 부총재는 최근 빚에 시달리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중국 영화계 거장 자장커 감독은 “업계의 비극”이라고 절망했다.
영화관 폐점도 잇따르고 있다. 10년간 성업했던 충칭의 모 아이맥스 영화관은 오는 7월 14일 정식 폐점한다고 선언했다. 자구책으로 영화관에서 판매하는 스낵 배달 서비스 등을 시도했지만 소용없었다. 중국의 데이터 서비스 제공기업 톈옌차에 따르면 올해 최소 1542개의 영화 회사와 스튜디오가 폐업했다. 8000개가 넘는 영화제작사, 영화 컨설팅사 및 기타 영화 관련 기업도 문을 닫았다. 영화업계 종사자들도 하나 둘씩 극장을 떠나고 있다.
영화관 주위 상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중국 영화관도 우리나라처럼 통상 쇼핑몰의 상층에 위치해 있다. 영화관을 가려면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저층의 수많은 가게와 레스토랑을 지나쳐야 한다. 하지만 영화관이 문을 닫으니 당연히 손님이 뚝 끊길 수밖에 없다.
"영화는 우리의 삶을 몇 배로 연장시켜 준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삶은 마치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삶을 살아본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해준다."
저명한 영화감독 고(故) 양더창(에드워드 양)이 한 말이다. 또 다른 중국 영화감독 장원은 "영화는 꿈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상영 시간만큼은 관객이 영화 속 주인공에 이입돼 함께 희로애락하며 꿈을 꾸기 때문이다. 미국 유명 영화제작사가 '드림웍스', 즉 꿈을 만드는 공장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유다.
이러한 영화가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공간이 바로 영화관이다. 영화 상영방식은 영사기 필름에서부터 비디오테이프, DVD, VOD로 끊임없이 진화했지만 영화관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존재했던 이유일 것이다. 중국에서도 코로나19 사태가 하루 빨리 진정돼 마음 편히 영화관으로 발걸음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