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북한 오디세이' 실패로 돌아갔다"

2020-06-17 18:00
형식에만 치우친 정상회담 실질적 성과 못내
11월 대선 치적으로 사용하기도 애매한 상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롤러코스터를 타던 북·미관계가 원점으로 돌아왔다.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실험 등에 '화염과 분노'까지 언급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북한 지도자를 만나면서 새로운 대북 관계 돌파구를 찾는 듯 보였다. 그러나 하노이에서 막힌 북한 비핵화 문제는 수년간 평행선을 이어가면서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노이 2차 정상회담에서 예상치 못한 '노 딜'이 등장했던 이유는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완화의 정도와 미국이 요구한 핵폐기 범위가 충돌했기 때문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핵시설 폐기보다 더 많은 걸 없애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북한은 미국이 북한 내 핵시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던 것에 놀랐던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두차례 정상회담이 별다른 성과없이 끝났고, 북·미관계는 교착을 이어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수시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자신은 기존 정권과는 다른 데탕트(긴장완화) 시대를 이끌고 있다고 강조했다. 

11월 대선에서도 북한의 정상과 대화했던 '경험'은 주요 치적 중 하나로 사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P·연합뉴스]



그러나 지난 16일 북한이 남북대화의 상징이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하면서 북·미관계도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언론과 외교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카메라와 화려한 수사에만 의존했던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결국 밑천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영국 런던정경대학(LSE)의 외교정책 싱크탱크 IDEAS의 앤드류 해몬드 연구원은 최근 걸프 뉴스에 '트럼프의 북한 오디세이가 실패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라는 기고문을 실었다. 해몬드 연구원은 "일각에서는 북·미정상회담을 과거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방중에 필적하는 사건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의 만남은 두 정상이 처음 만났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이 대화를 막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비핵화 문제가 해결된 것과 같은 발언을 일삼으면서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날아간 희망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관계가 '실질'보다는 '형식'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강조했다.

WP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축포를 일찍 터뜨렸다고 지적했다.

물론 북·미정상회담 전에도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대화'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은 미국 내에서 꾸준히 나왔다. 1994년 북·미협상을 성사시켰던 월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2017년 CNN의 국제전문기자 크리스티안 아만푸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핵무기를 포기시키려는 목표는 달성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면서 "지난 수년간 협상이 실패했던 이유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잘못된 전제를 기반으로 했다"고 지적했다.

페리 전 장관은 "성공적인 협상을 위해서는 북한의 목표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면서 북한의 '김씨 왕조'와 체제 유지, 국제사회 인정, 경제 개선을 북한이 원하는 3가지 목표라고 지적했다.

당시 수미 테리 전 미 중앙정보국(CIA) 북한 분석관도 아만푸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핵무장을 생존의 수단으로 보고 있을 뿐 비핵화를 전혀 협상의 이슈로 보고 있지 않다"면서 "그들(북한)은 오로지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낼 평화협정과 관련한 대화에만 임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AP통신은 이번 폭파는 2018년 핵 외교 이후 가장 도발적인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미국 언론은 북한이 군사적 행동에 나서면서 한반도 긴장은 더욱 고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언론 역시 이번 폭파를 주요 뉴스로 다루면서 깊은 관심을 보였다. 요미우리신문은 올해 11월 미국 대선까지 경제제재의 돌파구를 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북한이 긴장 상황을 연출해 한반도 긴장 완화를 자신의 외교적 성과로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흔들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