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칼럼] 비대면과 거리두기를 극복하기 위한 상상력
2020-06-17 09:59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 기억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영화관이나 공연장에 자주 가는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오프라인에서의 문화 소비 활동을 하지 않은 것은 청소년기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주말에는 대형 서점에 갔었다. 온라인을 통한 구매의 편리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번잡함도 서점가는 것을 꺼리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였는데 주말에 경험한 서점 풍경은 번잡함 보다는 한산함에 가까웠다. 이런 경험은 나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전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고 있는 지금 오프라인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은 위험을 감수해야 할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영상산업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지금 영화산업이 겪고 있는 불황은 무척 우려스럽다. 비단 산업적인 차원에서 뿐 아니라 여가산업으로서 가지고 있는 영화산업의 상징성을 고려하더라도 그렇다. 2020년 5월 대한민국 전체 영화 관람객 수는 152만명이다. 이 수치는 2019년 5월과 비교할 때 8.5%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2019년 5월 관람객 수는 1,806만명이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2020).『2020년 5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영화 관람은 단순히 생생한 고품질의 영상 소비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대인간의 관계 형성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영화가 코로나를 계기로 극장이 아닌 스트리밍 위주로 소비될 경우 전체적인 영상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신작 영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료방송 VOD 시장에도 영화산업의 침체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구체적인 데이터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신작 영화 건당 구매가 줄어들게 되면 유료방송 VOD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코로나 사태로 이동량이 줄어들면서 음원 이용량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공연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음악산업은 디지털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콘텐츠 분야다. 디지털화는 콘텐츠의 단위 당 판매 가치를 큰 폭으로 하락시킨다. 과거 CD 한 장을 살 돈이면 한 달 동안 몇 천 만곡이 넘는 음원을 들을 수 있다. CD와 같은 음반 판매량이 급감한 상황에서 음악산업의 활력을 유지시켜준 것은 공연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공연을 보기 어렵게 된 환경에서 음악산업이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현재의 상황이 장기화 될 경우 K-POP이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코로나 사태는 언제까지 지속 될 지 알 수 없다. 코로나 사태가 종료 된다고 하더라도 온전히 과거와 같은 환경에서 콘텐츠를 소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대면과 거리두기로 인해 경험하기 어려운 물리적 체험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극장과 공연장의 경우 좌석 간 거리두기와 띄어 앉기 등을 통해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동차 극장과 같이 근본적으로 거리두기가 가능한 방식의 문화 소비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거리두기로 인해 겪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돌파해 나갈 수 있는 대안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영화산업과 공연업의 경우 소수가 모여 관람할 수 있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늘려나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 전세계가 겪고 있는 초유의 사태는 관람객들이 근본적으로 좁고 밀폐 되어 있는 공간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 상황이 종료되더라도 극장이나 공연장 자체에 대한 태도 자체가 부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소수가 관람할 수 있는 거리가 충분히 확보된 공간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많은 관람객들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프리미엄 수요를 창출할 수 있도록 콘텐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비대면 상황에서 몰입감을 높일 수 있는 서비스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기대감은 지속되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VR, AR의 성장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산업적으로 프리미엄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제작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경기 침체는 광고시장 등 미디어 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는 제작 투자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 과거에 유통되었던 콘텐츠를 활용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하는 포스트프로덕션과 같은 시도가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큐레이터이자 미술 비평가인 니꼴라 부리요에 따르면(『포스트프로덕션』, 정연심·손부경 옮김, 서울: 그레파이트온핑크) 포스트프로덕션은“서비스 산업 및 재활용(recycling)과 연관된 일련의 행위들(17쪽)”이다. 포스트프로덕션도 다른 제작방식 못지않게 창의적인 행위이다. 물리적인 활동이 어렵고 제작투자에 대한 부담이 많은 시점에서 이미 제작된 콘텐츠를 기반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은 투자 효율성 뿐 아니라 대면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유용하다. 포스트프로덕션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제작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거리두기가 강조될수록 물리적 경험에 대한 향수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업자들이나 이용자들이나 경제적으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은 현재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인 상상력이다. 미디어 분야는 산업적인 가치 이전에 공적인 가치와 더불어 문화적인 가치가 큰 영역이다. 이는 미디어 분야의 활력이 국민 복지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창조적인 상상력이 미디어 생태계의 혁신을 주도해왔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