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현장에서 쓴 <스토리 문화재>

2020-06-15 14:46
두 同學의 공동집필…읽는 맛, 걷는 맛

 

 

  《왕들의 길 다산의 꿈 조선진경 남양주를 읽고 
우리 땅 어느 곳을 가도 오랜 역사를 만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남양주는 단연 독보적인 곳이다. 남양주는 동대문에서 걸어서 한나절, 말을 타면 한 시간 걸리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강원 충청 경상도로 가는 배들도 남양주를 들러서 갔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역사가 궁궐에서 벌어졌다면 남양주에서는 그 이면의 역사, 생애 이후의 역사가 이뤄졌다. 곳곳마다 태조 이성계의 발자취부터 고종 순종까지 조선왕조 오백년의 역사가 서려 있다. 
 황호택 이광표 교수가 남양주의 산하를 발로 누비며 써내려간 글은 아주경제와 남양주시청 홈페이지에서 많은 독자를 사로잡았다.  글도 생생하지만 올 컬러의 귀한 사진들이 역사의 현장감을 더해준다. 최고의 전문가들과 남양주의 특별한 주민 3인이 쓴 추천의 글을 모았다. <편집자>
 

    <조선진경 남양주> 표지[.사진= 컬처룩 제공]



남양주에서 포스트 코로나를 꿈꾼다
◇정재숙 문화재청장
역사가 크게 굽이칠 때가 있다. 지금이 그 시절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전대미문의 역병이 인류를 매일 새로운 시간 위에 세우고 있다. 어제의 세계와 전혀 다른 오늘부터의 세계를 맞으며 새삼 가슴에 새기는 네 글자가 있다. 관고찰금(觀古察今)이다. 과거를 돌아보아 현재를 살핀다는 뜻이다.
문화재청이 하는 일은 순간순간 관고찰금의 연속이다. 한민족의 호흡이 켜켜이 스민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활용하며 미래 세대에게 온전히 전해주기 위한 소임은 막중하고 준엄하다. 그 엄중한 길에 함께 해주는 동학(同學)은 언제나 반갑고 고맙다. 문화재청이 미처 챙기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해주기 때문이다.
황호택 이광표 두 언론인 출신 동학은 전공 학자와는 또 다른 시각에서 조선을 들여다보았다. ‘역사문화 眞景산책’이란 제목은 현장을 발로 뛰는 기자정신을 함축하고 있다. 아주경제신문 연재 당시부터 학계와 재야의 주목을 받으며 역사가 왜 나날이 새로운 기억으로 거듭나야 하는지를 일깨워주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사진=연합뉴스]


그 첫 편인 남양주는 ‘문사철(文史哲) 남양주’라는 평을 들을 만큼 풍부한 실증 사료와 두터운 생각거리를 담아냈다. 전직 선후배 기자 사이인 두 필자는 공동 집필 과정에서 보완과 협동의 상승효과를 보여주었다. 논설주간을 지낸 대기자와 문화재 전문기자의 협력은 남양주를 제대로 톺아보는 결실을 맺었다.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들은 한강을 따라 이곳으로 모인다. 그리고 한강을 따라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간다. 남양주는 만나고 모색하고 새로운 정신을 탐색하는 곳이다. 정약용이 그랬고 정선이 그랬던 것처럼.”
유독 조선 왕과 왕실의 무덤이 많은 남양주는 문화재청이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땅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양주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실천해야 할 때”라는 한마디는 문화재 행정 담당자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동학이 제시하는 가르침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숙제가 남았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흔들리고 있는 지구에서 우리 함께 오늘을 이겨내고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힘의 단초를 이 책에서 발견하시기를 기원한다.

조선 진경을 감상하는 특별석
◇임철순 전 한국일보 주필
남양주는 독립 지자체가 된 지 올해 40년이다. 1980년 4월 양주에서 분리된 뒤 15년이 지난 1995년 1월 남양주시로 승격해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의미 있는 해에 발간된 ‘조선 진경 남양주’(황호택·이광표 지음)는 ‘자연과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땅’ 남양주에 중요한 문화유산 한 가지를 보탠 것과 같다. ‘남양주학’이라는 지역학의 출범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 같기도 하다.
제목이 표방한 진경(眞景)이라는 말은 우리의 것을 우리의 눈으로 보고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널리 알리려는 독자적 발견과 성취의 의미를 담고 있다. 진경서사에 담을 것은 정(情)과 경(景)이다. 정이 인간의 삶과 문화에 관한 것이라면 경은 인간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그 조건을 결정짓는 산수자연과 환경이다. 저자들은 이 두 가지를 고루 다루고 잘 천착했다.
 
 

       임철순 전 한국일보 주필


남양주의 옛 지명은 풍양(豐壤)이다. 풍양은 풍성한 땅, 풍요로운 땅이라는 뜻이다. 양(壤)은 농경에 적합한 부드러운 흙이라는 의미의 한자다. 그러니 남양주는 생명의 땅, 생산의 땅, 생육(生育)과 장양(長養)의 땅이다. 풍양은 풍양 조(趙)씨의 본향이기도 하다.
그런 땅의 문사철(文史哲)과 자연을 다루는 글은 핍진(逼眞)하고 박진(迫眞)하다. 모르던 것을 알게 해주고, 알던 것을 새로운 눈으로 깊이 있게 다루어 또 다른 길을 안내해주고 있다.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647)이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의 권유로 쓴 시구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전략)
반평생 아양곡을 아는 이 지금 만났는데
半世峨洋今遇賞
어느 때나 산과 골의 진경을 함께 완상할꼬
幾時林壑共耽眞
볼 때마다 느끼나니 진정 멋진 벗님이여
相看每覺襟期好
그대 위해 의자를 자주 내려 보았으면
准擬寒齋下榻頻

아양곡(峨洋曲)을 아는 이란 지음(知音), 즉 지기(知己)를 말한다. 맨 마지막 행에 나오는 의자는 최고의 손님으로 모실 테니 자주 찾아오라는 뜻이다. 후한(後漢)의 진번(陳蕃·?~168)이 특별한 의자를 준비해 두고 서치(徐穉, 97~168)가 찾아오면 그 의자를 내려서 앉게 하고, 그가 가면 다시 올려 두어 다른 사람은 앉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른바 진번하탑(陳蕃下榻)의 고사다.

이 책이 그런 의자라고 하면 과장일까. 귀한 손들에게 남양주의 진경을 편히 앉아서 보게 만들어 주는 특별석이다. 아니, 와유(臥遊)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안락한 평상일 수도 있겠다. 신문에 연재 중일 때부터 부러움과 찬탄의 눈으로 읽어온 독자로서, 남양주의 한 주민으로서 장한 일을 한 데 대해 축하와 찬사를 보내며 이러한 작업이 다른 지역으로 이어져나가기를 기대한다.

새로운 전통과 문화 찾아 땀흘린 여정
◇김형섭 남양주시립박물관 학예사
 
 

       김형섭 학예사


 남양주를 제대로 알리는 임무를 수행하는 과업에 참여한 것은 행운이자 즐거운 경험이었다. 몇시간씩 걸리는 남양주의 산을 몇차례에 걸쳐 종주하다가 갑작스레 물이 불어난 계곡에서 미끄러운 바위에 넘어져 세찬 물에 빠지기도 했다. 아찔한 상황에서도 황 교수는 취재수첩을 자신의 몸보다 챙겼다. 남다른 감동이었다. 
 이런 열정으로 역사 사실과 남양주의 문화와 전통을 새로 알아내고 발견한 것도 많다. 그럴 때면 사료를 토대로 고증하고 각 분야 전문가에게 재확인했다. 이같은 노력이 책의 내용을 풍요롭고 충실하게 만들었다. 남양주에는 현재와 미래의 세대를 연결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제 남양주는 《왕들의 길 다산의 꿈-조선진경 남양주》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