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 칼럼] 트럼프의 화웨이 죽이기! 양국의 속내는?

2020-06-12 07:00

 

박승찬 (사)중국경영연구소 소장 겸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코로나19는 미·중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었고, 상호비방이 금도를 넘어섰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고지를 위해 갈 길 바쁜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코로나 팬데믹은 최악의 변수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14일 “중국과의 모든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 바로 다음날 미 상무부는 화웨이를 죽이기 위한 이른바, 해외직접 생산품규정(Foreign Direct Product Rule)을 더욱 강화하는 수정안을 발표했다. 즉, 제3국 반도체 회사들도 미국기술을 부분적으로라도 활용했다면 화웨이에 제품을 팔 때 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규정에서는 미국산 반도체 장비·부품 및 SW 비중이 25% 이하인 제품에 대해서는 미국 허가 없이 화웨이에 공급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수정안에서는 25%에서 10%로 낮춤으로써 화웨이를 더욱 조여 나가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은 다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고, 국내 증시 화웨이 관련 기업주들이 요동쳤다. 유튜브나 포털사이트 블로그에는 미국의 화웨이 죽이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도배가 된 듯하다. 과연 그럴까? 미·중 양국의 속내를 들여다보자.

우선 미국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화웨이를 죽이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화웨이를 죽인다는 것은 곧 중국과의 전면전을 의미한다. 화웨이는 미래 중국기술의 상징이고,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도 그러한 무리수를 던져가며 미국이 피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단지 중국 기술의 심장인 화웨이를 흔들 수 있을 만큼 흔들어 보자는 심산이다. 어쨌든 11월 대선까지 중국을 흔들어야 뒤처진 지지율을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내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미국 국민 3명 중 2명꼴인 66% 이상이 중국에 대해 비호감을 나타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것을 최대한 정치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미국은 2005년부터 중국 호감도에 대한 여론조사를 진행해 오고 있는데, 올해가 가장 높은 반중 정서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는 11월 대선 때까지 중국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며 강대강 국면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강하게 나오면 나올수록 트럼프 대통령은 더욱 명분을 가지게 되고 그것을 기반으로 중국에 더욱 강한 압박을 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미국 내 지지율이 올라가는 정치공학적 계산법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이 홍콩 특별지위법 박탈 이슈를 들고 나온 것도 그러한 논리에서 출발한다고 봐야 한다. 만약 미국이 화웨이를 정말 죽이고자 했다면, 수정안 시행의 120일이라는 유예기간을 둘 필요도 없으며, 화웨이에 대해 8월 13일까지 90일간의 통신장비 임시 면허기간을 연장해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화웨이의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이 반도체를 설계하고, 그것을 위탁생산하는 기업, 즉 세계 1위의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가 미국의 지속적인 압박에 화웨이와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미국이 15일 수정안을 발표하자마자 TSMC는 중국에서 탈피해 미국 애리조나에 2021년부터 2024년까지 5나노 공정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겠다고 공식발표했다. 총 120억 달러를 2029년까지 9년에 걸쳐 투자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반도체 라인 하나에 들어가는 비용이 70억 달러 이상인데 연간 평균 13억 달러 정도 투자한다는 얘기로, 현실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미국과 TSMC 간 모종의 전략적 합의가 있을 가능성과 TSMC 입장에서 일단 쏟아지는 트럼프발 소나기를 피해 보자는 식의 접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TSMC의 매출 15%를 화웨이가 차지할 정도로 두 기업의 연결고리가 강하고 중국공장의 역할도 매우 중요한 상황에서 미·중 사이에서 중립적인 대응 정도로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중국의 속내는 어떨까? 중국은 핵심이익에 관계되는 홍콩 자치권 문제를 제외한 미국의 다른 경제적·정치적 자극을 최소한 범위 내에서 방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단시일 내 화웨이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어도 죽이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화웨이 이슈를 둘러싼 중국정부의 단계별 시나리오도 이미 준비되어 있는 듯하다. 만약 화웨이 죽이기가 본격화되면 중국은 자국 내 애플, 퀄컴, 시스코 죽이기에 착수하게 된다. 이것은 미국에도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반(反)화웨이 연대를 만드는 신규정이 발표된 날 중국은 TSMC를 대체할 중국 최대의 파운드리업체인 SMIC에 22억 달러(약 2조7000억원)의 반도체 펀드를 마련해 지원하기로 했다. SMIC의 현재 기술력은 14나노 공정이지만 올해 말까지 7나노 공정으로의 퀀텀점프를 목표로 엄청난 자금투자와 정책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TSMC가 지금은 미국 쪽에 붙었지만 화웨이와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고, 현재 아시아 중심으로 짜여진 밸류체인에서 대미 투자는 중국 및 대만에 비해 높은 인건비와 부품수급 관련 추가비용이 만만치 않아 TSMC 입장에서 결코 좋은 선택지가 아닐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화웨이 죽이기는 결코 쉽지 않다. 역으로 그로 인해 중국 공산당과 반도체 기업들을 더욱 똘똘 뭉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반도체는 오랫동안의 축적된 기술과 막대한 자금력, 인적자원이 합쳐져야 성장할 수 있다. 반도체는 기타 산업 대비 결코 중국이 하루아침에 추격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 화웨이를 둘러싼 미·중 간 충돌은 중국 반도체 굴기의 시간을 더욱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미·중 간 화웨이 이슈를 변수가 아닌 상수로 봐야 한다. 중립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정치적 변수와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초격차의 기술력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을 더욱 경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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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 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5년간 역임했다. 현재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