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한국형(型)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절실하다

2020-06-08 18:05
- 무차별적 리쇼어링 추진 역효과, 경쟁국과는 다른 한국 경제 현실 직시해야 -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미·중 무역전쟁이 글로벌 경제 상수(常數)가 되고, ‘포스트 코로나’ 경쟁이 가시화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이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재편의 첫 진원지는 중국이다. 미국을 비롯한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이 중국에 진출해 있는 자국 기업을 빼기 시작하면서 도미노처럼 불이 붙을 전망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나타나고 있는 두 개의 현상이 ‘탈(脫)세계화(Deglobalization)’와 ‘탈동조화(Decoupling)’이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은 G7을 G11로 확대하면서 반(反)중국 경제 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까지 추진하고 있다. 경제적인 필요에 더하여 정치적 요소까지, 훨씬 더 복잡한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는 판이다.

특히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세계화와 동조화라는 두 틀 속에서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기존의 선진국 혹은 경쟁국들과 유사한 행보를 하는 것이 유리한지 아니면 불리한지는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은 단순히 국내 기업 환경이 나쁘다는 이유로만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국내 시장이 협소하다는 점과 대기업 공장의 해외 확장에 따른 동반 진출 등이 오히려 더 큰 이유가 되고 있는 기업들도 많다. 경쟁국 기업들은 해외 공장과 국내 내수 시장이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기업은 현지 혹은 제3국 시장과 연계되어 있는 것이 또 다른 특징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철수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의 행선지도 일률적이지 않다. 자국으로 돌아가는 기업도 있지만 동남아 혹은 인도 등이 유력한 생산거점 후보지로 옮기는 기업들이 더 많다. ‘China+1’의 최대 수혜국이 베트남이 되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산 코스트나 원료 조달을 우선시하는 기업은 여전히 중국 이외의 대안 거점을 찾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해외 생산 기업을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Re-shoring)’이나 자국의 인근에 재배치하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 등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이를 냉정하게 따져보면 탈세계화 혹은 탈동조화라기보다는 세계화와 동조화의 프레임은 유지한 채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요즘 한국에서도 글로벌 분위기에 편승이라도 하듯 해외에 나간 기업을 돌아오게 할 절호의 기회라는 소리가 들린다. 정부에서도 지자체와 업종별 단체 등을 중심으로 기업 유턴 지원을 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지만, 노력 대비 성과가 극히 저조해 용두사미에 그쳤다. 현재도 마찬가지로 해외 진출 기업의 95% 이상이 본국 유턴에 관심이 없다. 밖으로 나간 이유가 해외 시장 확대와 국내 고임금을 피하기 위한 게 결정적 원인이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경직성, 과다한 기업 규제, 유턴 인센티브 부족 등은 이들에게는 크게 이유가 되지 않는다. 나갈 때의 이유는 되겠지만 들어올 때의 이유로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결국 다시 시늉만 내고 끝날 공산이 크다.

지역 가치사슬 재편으로 중국 의존도 축소, 첨단제조 허브 구축으로 한국을 지렛대로 활용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오히려 해외 진출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측면 지원을 하는 편이 낫다. 이참에 중국 의존도를 대폭 줄이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동남아에서도 베트남 편중도를 줄이고, 인도 시장에서는 한국 기업이 보다 수월하게 진출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재정비해야 한다. 가칭 ‘한국형(型) 지역 가치사슬(RVC·Regional Value Chain)’의 재편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적극적인 현지화를 통해 현지 시장에 더 깊숙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기존의 중국에 더하여 미국·EU·동남아·인도 등 각 지역의 가치사슬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 구축이 중요하다. 경쟁국의 리쇼어링 혹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을 우리의 체질에 맞는 전략으로 개발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본국인 한국 가치사슬의 역할을 찾아내야 한다. 해외 지역 가치사슬과의 유기적 결합을 위한 대대적인 시스템 정비가 요구된다. 한국판 뉴딜의 한 축인 디지털화를 제조업과 연결하는 일대 혁신이 수반되어야 한다. 5G·인공지능·빅데이터·모빌리티·사물인터넷 등을 기반으로 하는 미래 기술을 제조업에 접목해 고부가가치 기술 개발을 보다 특화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해외에 나가 있는 공장들을 선별적으로 리쇼어링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국내로 들어오겠다는 기업에 무차별적인 당근을 제공하기보다 제조업 첨단화에 꼭 필요한 공장에 대해 차별적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방 정부도 4차 산업혁명형 디지털 제조 기반과 실효적인 정책 개발 경쟁에 나서야 한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에도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는 619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면 외국인의 국내 투자는 이의 20%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높은 법인세율,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근무 등으로 나가고 들어오는 투자의 차이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제조 환경이 좋아지지 않으면 국내 기업은 물론이고 외국 기업도 국내로 들어올 리 없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탈(脫)중국으로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고 본다면 우리에게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고부가가치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첨단제조 인프라 정비에 박차를 가하면 한국도 이들의 행선지가 될 수 있다. 실효성이 희박한 리쇼어링에 무작정 매달릴 것이 아니라 다른 각도에서 국내외 기업을 동시에 시야에 넣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