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 칼럼] 김여정의 발언과 남북관계 방향 잡기

2020-06-08 10:49

김영윤 대표


현재의 남북관계는 과거 어느 정권에서도 볼 수 없었던 부정적 국면으로 점철되고 있다. 남북관계의 개선을 원하는 남한 정부를 북한이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북 전단 살포와 관련, 최근 김여정 제1부부장의 요구는 남북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 특히 일체의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를 일종의 적대적 행위로 간주, 이를 저지하지 않을 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는 것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폐쇄를 비롯, 개성공단의 완전철거와 남·북 군사합의 파기가 고려대상이다. 우리 정부는 이에 긴밀하게 대처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기는 하다. 북측 담화가 알려진 지 4시간 반 만에 긴급 브리핑을 열고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음을 밝힌 것이 그것이다. “접경지역에서의 긴장 조성 행위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긴장 해소방안을 이미 고려 중”이며 “판문점 선언 이후부터 대북전단 살포 등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안을 준비하고” 있음을 천명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에 다시 한 번 쐐기를 박고 있는 형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정부가 향후 대북 관계에서 해야 할 일은 김여정 부부장의 발언에서도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탈북자들에 의한 전단 살포를 개인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로 치부하는 무책임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한의 경고는 일종의 배수진을 친 듯하다. ‘갈 때까지 가보자’는 이를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북한은 현재 전체 인민의 대남 적개심에 불을 지피고 있다. 탈북 단체가 전단 살포를 다시 한 번 강행한다면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폐쇄는 즉각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생각해도 북한은 남한과의 새로운 관계를 원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정부가 전단 살포에 대한 법적 규제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방안을 언급했음에도 북한이 강경한 자세를 굽히지 않은 것은 남한 정부의 발 빠른 호응을 촉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정부의 의지도 제법 굳건하다. 자신감도 비쳐진다. 하기야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일단 전단 살포를 자제하게 할 수 있다. 이는 미국의 간섭 없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문제다. 현재로서는 법적인 측면의 보강이 급선무다. 이런 점에서 서둘러 입법 절차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과반수를 훨씬 넘은 정부 여당의 국회 의석 확보가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방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북 전단 살포를 제지하는 것이 북한의 요구에 호응하는 모양새가 되지만, 그래야 지난 1년 반 이상 좀처럼 얻을 수 없었던 북한과의 대화와 접촉의 실마리도 마련할 수 있다. 새로운 남북관계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도 새로운 대화채널의 가동을 암시하고 있다. 김여정 부부장을 “대남사업의 총괄자”로 지목한 것은 향후 남·북 교류협력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진심으로 대남 관계를 단절하려고 했다면 김여정 부부장을 거론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제1부부장의 담화를 심중히 새기고 내용의 자자구구를 뜯어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여정을 원하는 암시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여정이란 결국 미국의 입김을 벗어난 독자적 남북협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연초 문 대통령도 남북협력 독자구상을 내놓은 것을 북한인들 모를 리가 없다. 이에 호응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선택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미국과의 공조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이다. 우리 정부에게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은 절실한 문제이나, 이를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놓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전에 우리 정부가 스스로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미국과 철벽공조를 유지하면서도 남·북 교류협력을 활성화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동시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택을 해야 한다. 여기엔 시간이 지날수록, 현 정부의 임기가 줄어들수록 남북관계를 위한 선택의 폭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길은 하나다. 북한과의 관계를 진척시키기 위해 미국과의 철벽공조에서 다소 물러서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 길을 우리가 세련되게 열어야 한다. 그래서 적어도 남북관계에서만은 한국 정부의 독자적 역할이 점증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바탕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K방역의 전 세계적 성공이 그것이다. 한국의 위상은 놀랄 만큼 높아져 있다.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성공이 우리 정부로 하여금 대북 관계에서도 독자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있다. G-7의 참가가 이의 서막이다. 우리 정부는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제고된 대한민국의 위상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한반도의 평화의 길을 G-7 참가국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다. 세계는 이제 대립이 아닌 공조의 시대에 들어섰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북·미관계개선 방안을 남·북이 마련하고, 이에 미국이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이미 시험대에 올라있다. 북한은 물론, 전 세계가 문재인 정부의 역량을 지켜볼 것이다. 정부는 부디 K 방역에 이어 K 평화도 성공시킬 수 있음을 확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