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형의 불온한 정치] 김부겸·김영춘·김성곤…"보수 벽에 희생된 新 3김을 말한다"
2020-06-05 14:42
YS·DJ·JP의 3김이 남긴 부정적 유산 '지역주의'
지역주의에 희생된 新 3김(김부겸·김영춘·김성곤)
TK판 '바보 노무현' 김부겸…민주당 당권 도전장
평생 기득권 거부한 김영춘…국회 사무총장 내정
강남 보수주의에 맞선 김성곤…"진짜 보수주의자"
지역주의에 희생된 新 3김(김부겸·김영춘·김성곤)
TK판 '바보 노무현' 김부겸…민주당 당권 도전장
평생 기득권 거부한 김영춘…국회 사무총장 내정
강남 보수주의에 맞선 김성곤…"진짜 보수주의자"
"신(新) 3김을 주목하라." 한국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 3김. 고(故)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다. YS와 DJ는 한국 민주화의 영웅이다. JP는 박정희 정권의 철권통치 시절 2인자였다. 같은 시대에 다른 길을 걸었지만, 이들이 87년 체제를 기점으로 남긴 정치적 유산은 동일했다. 영·호남과 충청을 기반으로 한 '지역주의'다. 2018년 6월 23일 JP를 끝으로 3김의 시대는 저물었지만, 이들이 남긴 부정적 유산은 여전히 한국 정치 한가운데를 관통한다.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 명은 대구·경북(TK)판 '바보 노무현'으로 불린다. 다른 한 명도 부산·울산·경남(PK)에서 보수 지역주의에 맞섰다. 마지막 한 명은 서울에서 가장 보수적인 강남에서 보수 기득권에 저항했다. 지난 4·15 총선에서 보수 지역주의에 무릎을 꿇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김부겸·김영춘·김성곤 전 의원 얘기다.
3김이 남긴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운명, 신 3김에 달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은 대한민국이 87년 체제와 97년 체제를 뛰어넘느냐의 변곡점에 섰다. '민주 대 반(反)민주',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 등의 이분법적인 구태 정치. 이 모든 것이 신 3김의 향후 정치적 운명에 따라 갈린다는 얘기다.
◆당권 도전 시동 건 '바보 김부겸'
"우리의 정치적 자산이다." 여권 관계자가 5일 신 3김에 대해 한 말이다. 맞다. 이들은 쉽게 저물지 않는다. '행동하는 양심'인 DJ도 16년여의 투옥과 망명, 그리고 3전 4기 끝에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영남 지역주의에 맞선 노 전 대통령의 도전도 한때 '바위에 계란 치기'로 치부됐다. 하지만 이들의 종착역은 달랐다. 성경 구절처럼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했다.' 신 3김의 끝도 그러하리라.
제2의 바보 노무현인 김부겸 전 의원은 민주당 차기 당권 도전 의사를 사실상 굳혔다. 김부겸 전 의원은 지난 1일 총리공관에서 열린 TK 낙선자 위로 만찬 회동에서 참석자들에게 "도와 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TK 낙선자 위로 만찬 회동은 정세균 국무총리가 주최한 자리였다.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정 총리가 김부겸 전 의원을 물밑에서 지원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낙선 후 "지역주의 극복을 향한 제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고 한 김부겸 전 의원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셈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김부겸이 뜨자, 전당대회 구도가 들썩인다"고 표현했다.
김부겸 전 의원의 도전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그는 당선보다 낙선을 많이 한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13대 총선(1988년)을 시작으로, 총 9번의 선거에서 절반(4승 5패)도 이기지 못했다. 16∼18대까지 내리 3선을 한 경기 군포를 버리고 TK로 내려간 김부겸 전 의원은 2012년 첫 도전 이후 8년간 딱 한 번(2016년 20대 총선)만 승리했다.
김부겸 전 의원은 지난달 23일 '노무현 서거 11주기' 때 "20년 전 낙선한 노 전 대통령의 심정"이라면서도 "포기하지 않겠다. 새로운 날들을 향해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여의도로 컴백하는 김영춘…일찌감치 버렸던 기득권
김영춘 전 의원도 여의도로 복귀한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선출된 박병석 신임 국회의장은 앞서 김영춘 전 의원을 21대 국회 사무총장(장관급)으로 내정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던 그는 내년 4월 재·보궐선거가 예정된 부산시장의 유력한 후보로도 꼽힌다.
고려대학교(1984년) 총학생회장 출신인 김영춘 전 의원은 1980년 중반 민주화추진협의회에 합류, YS계의 막내로 불렸다. 30대 초반에는 문민정부 시절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정무비서관을 지냈다. 1996년 34세의 나이로 15대 총선에 도전했다. 4년 뒤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야말로 앞길이 창창한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김영춘 전 의원은 기득권을 버렸다. 참여정부 때인 2003년 김부겸 전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영남 지역주의에 맞서는 '고난의 길'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김영춘 전 의원은 김부겸 전 의원과 함께 2012년부터 영남 지역주의에 도전, 1승 2패를 기록했다. '책임 정치'를 무거운 사명감으로 생각하는 김영춘 전 의원은 열린우리당 실패의 책임을 지고 2008년 18대 총선 때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외교활동 펼치는 김성곤…"여의도의 진짜 보수"
김성곤 전 의원도 '기득권 버리기'를 몸소 실천한 정치인이다. 그는 깃발만 꽂아도 당선되는 호남 지역을 버리고 강남에 둥지를 틀었다. 앞서 그는 15∼19대까지 전남 여수갑에서 내리 4선을 했다. 기득권에 안주했다면, 21대 전반기 국회의장 몫은 김성곤 전 의원에게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성곤 전 의원은 20∼21대 총선 때 강남갑에 도전장을 냈다. 결과는 낙선. 다만 20대 총선에선 45.2%의 득표율로 당선 가능성을 보여줬다. 4·15 총선에서도 40%가량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김성곤 전 의원의 형은 미국 우주항공국 컴퓨터분석관과 해군정보국 정보분석관 등을 지낸 '로버트 김'이다.
김성곤 전 의원의 강점은 '외교와 역사'다. 19대 국회 땐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낙선 후 그는 다시 사단법인 '평화'로 복귀, 한국 외교 등의 해법 찾기에 나섰다. 김성곤 전 의원은 여의도의 철학파로도 통한다.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철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와 인하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교수를 지냈고 한국산업정책연구소 이사장과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사무총장 등도 역임했다. 온화한 성품의 합리적 리더십 소유자인 그는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진짜 보수주의자'로 불린다.
신 3김에 대한 칼럼을 쓰면서 문득 조국 광복의 그날을 염원한 시, 심훈의 '그날이 오면'이 생각났다. 절절하게 들렸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중략)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신 3김이 부활하는 그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 명은 대구·경북(TK)판 '바보 노무현'으로 불린다. 다른 한 명도 부산·울산·경남(PK)에서 보수 지역주의에 맞섰다. 마지막 한 명은 서울에서 가장 보수적인 강남에서 보수 기득권에 저항했다. 지난 4·15 총선에서 보수 지역주의에 무릎을 꿇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김부겸·김영춘·김성곤 전 의원 얘기다.
3김이 남긴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운명, 신 3김에 달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은 대한민국이 87년 체제와 97년 체제를 뛰어넘느냐의 변곡점에 섰다. '민주 대 반(反)민주',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 등의 이분법적인 구태 정치. 이 모든 것이 신 3김의 향후 정치적 운명에 따라 갈린다는 얘기다.
◆당권 도전 시동 건 '바보 김부겸'
"우리의 정치적 자산이다." 여권 관계자가 5일 신 3김에 대해 한 말이다. 맞다. 이들은 쉽게 저물지 않는다. '행동하는 양심'인 DJ도 16년여의 투옥과 망명, 그리고 3전 4기 끝에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영남 지역주의에 맞선 노 전 대통령의 도전도 한때 '바위에 계란 치기'로 치부됐다. 하지만 이들의 종착역은 달랐다. 성경 구절처럼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했다.' 신 3김의 끝도 그러하리라.
제2의 바보 노무현인 김부겸 전 의원은 민주당 차기 당권 도전 의사를 사실상 굳혔다. 김부겸 전 의원은 지난 1일 총리공관에서 열린 TK 낙선자 위로 만찬 회동에서 참석자들에게 "도와 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TK 낙선자 위로 만찬 회동은 정세균 국무총리가 주최한 자리였다.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정 총리가 김부겸 전 의원을 물밑에서 지원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낙선 후 "지역주의 극복을 향한 제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고 한 김부겸 전 의원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셈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김부겸이 뜨자, 전당대회 구도가 들썩인다"고 표현했다.
김부겸 전 의원의 도전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그는 당선보다 낙선을 많이 한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13대 총선(1988년)을 시작으로, 총 9번의 선거에서 절반(4승 5패)도 이기지 못했다. 16∼18대까지 내리 3선을 한 경기 군포를 버리고 TK로 내려간 김부겸 전 의원은 2012년 첫 도전 이후 8년간 딱 한 번(2016년 20대 총선)만 승리했다.
김부겸 전 의원은 지난달 23일 '노무현 서거 11주기' 때 "20년 전 낙선한 노 전 대통령의 심정"이라면서도 "포기하지 않겠다. 새로운 날들을 향해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여의도로 컴백하는 김영춘…일찌감치 버렸던 기득권
김영춘 전 의원도 여의도로 복귀한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선출된 박병석 신임 국회의장은 앞서 김영춘 전 의원을 21대 국회 사무총장(장관급)으로 내정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던 그는 내년 4월 재·보궐선거가 예정된 부산시장의 유력한 후보로도 꼽힌다.
고려대학교(1984년) 총학생회장 출신인 김영춘 전 의원은 1980년 중반 민주화추진협의회에 합류, YS계의 막내로 불렸다. 30대 초반에는 문민정부 시절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정무비서관을 지냈다. 1996년 34세의 나이로 15대 총선에 도전했다. 4년 뒤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야말로 앞길이 창창한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김영춘 전 의원은 기득권을 버렸다. 참여정부 때인 2003년 김부겸 전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영남 지역주의에 맞서는 '고난의 길'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김영춘 전 의원은 김부겸 전 의원과 함께 2012년부터 영남 지역주의에 도전, 1승 2패를 기록했다. '책임 정치'를 무거운 사명감으로 생각하는 김영춘 전 의원은 열린우리당 실패의 책임을 지고 2008년 18대 총선 때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외교활동 펼치는 김성곤…"여의도의 진짜 보수"
김성곤 전 의원도 '기득권 버리기'를 몸소 실천한 정치인이다. 그는 깃발만 꽂아도 당선되는 호남 지역을 버리고 강남에 둥지를 틀었다. 앞서 그는 15∼19대까지 전남 여수갑에서 내리 4선을 했다. 기득권에 안주했다면, 21대 전반기 국회의장 몫은 김성곤 전 의원에게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성곤 전 의원은 20∼21대 총선 때 강남갑에 도전장을 냈다. 결과는 낙선. 다만 20대 총선에선 45.2%의 득표율로 당선 가능성을 보여줬다. 4·15 총선에서도 40%가량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김성곤 전 의원의 형은 미국 우주항공국 컴퓨터분석관과 해군정보국 정보분석관 등을 지낸 '로버트 김'이다.
김성곤 전 의원의 강점은 '외교와 역사'다. 19대 국회 땐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낙선 후 그는 다시 사단법인 '평화'로 복귀, 한국 외교 등의 해법 찾기에 나섰다. 김성곤 전 의원은 여의도의 철학파로도 통한다.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철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와 인하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교수를 지냈고 한국산업정책연구소 이사장과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사무총장 등도 역임했다. 온화한 성품의 합리적 리더십 소유자인 그는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진짜 보수주의자'로 불린다.
신 3김에 대한 칼럼을 쓰면서 문득 조국 광복의 그날을 염원한 시, 심훈의 '그날이 오면'이 생각났다. 절절하게 들렸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중략)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신 3김이 부활하는 그날이 오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