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한 흑인 사망사건이 촉발한 항의 시위 속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교회와 가톨릭 성지를 잇달아 방문하며 종교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측면이 있지만 진심을 엿볼 수 없는 보여주기식 행보에 종교계에서마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시위를 계기로 기독교 지지층의 결집을 기대하고 종교시설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낮 백악관 인근 가톨릭 시설인 세인트 존 폴(성 요한 바오로) 2세 국립 성지를 방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별도의 연설 없이 화환이 걸린 교황 동상 앞에서 사진 촬영용 포즈를 취한 뒤 묵념하고 돌아갔다. 이곳은 미국 등 세계 각지를 방문해 평화를 강조하며 널리 영향을 끼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헌정된 시설이다. 

하루 전에는 '대통령의 교회'로 불리는 백악관 인근 세인트존스 교회를 찾았는데, 이곳에서도 그는 경을 들고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 특히 교회에 가기 직전 시위 사태에 군을 동원할 수 있다면서 초강경 대응을 천명하고 가는 도중에는 평화로운 시위대에 최루탄을 쏘아 논란이 됐다.

인종 차별과 인권 논란 속에 시위가 격화하고 미국의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기독교 지지층 결집을 노리는 이벤트성 행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방문 대상이 된 종교계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다.

워싱턴DC 대교구의 윌턴 그레고리 대주교는 이날 대통령의 성지 방문은 당황스러웠다면서, "가톨릭 시설이 우리의 종교적 원칙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엄청나게 오용되고 조작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성공회 워싱턴교구의 매리앤 버디 주교도 전날 "대통령은 예수의 가르침과 우리 교회가 대변하는 모든 것에 반대되는 메시지를 위해 유대교와 기독교의 가장 성스러운 텍스트인 성경과 내 교구의 한 교회를 허락 없이 배경으로 썼다"며 불편한 심경을 전했다.

잇따른 종교 행보 속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에 대해 강경 진압 방침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는 이날 트윗에서 "워싱턴DC는 어젯밤 아무 문제가 없었다. 체포가 많았다. 모두 훌륭한 일을 했다"며 "압도적인 병력. 지배. 마찬가지로 미니애폴리스도 훌륭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9분 동안 짓눌려 사망한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반대 시위는 미국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