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칼럼] 이용자 중심 시대의 정보 주권
2020-04-21 10:27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라고 불리었던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아버지는 결핵으로 손택이 다섯 살이었던 1939년에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손택은 아버지가 결핵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당시에는 결핵으로 죽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고인과 그 가족의 명예가 실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손택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인을 딸에게 숨길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초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결핵과 암은 의학적 연구의 대상이었지만 그 질병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 때문에 환자들은 부당한 오해에 시달려야 했다.
수전 손택은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 『은유로서의 질병』(이재원 옮김, 서울: 이후)에서 다룬다. 손택은 질병은 은유가 아니며 질병들이 발생시키는 환상에 저항하고 질병을 질병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유로서의 질병』이 출간된 것이 1977년이니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었지만 질병과 관련된 잘못된 정보와 비유가 세상에 떠도는 것은 여전한 것 같다. 오히려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사실이 아닌 허위조작 정보의 유통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최근 몇 달간 코로나와 총선으로 인해 우리는 온갖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기존 매스미디어 뿐 아니라 SNS로 지인들에게 각종 정보를 받아 보는 환경에 놓인 이용자들은 정보의 진위여부를 시시각각 판단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매체가 한정되어 있던 시기에 이용자의 선택지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이용자들은 몇몇 매체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그를 토대로 의견을 개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재는 플랫폼 과잉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다양한 매체가 존재한다. 아날로그 시대부터 디지털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최근까지 이용자의 매체 이용행태를 연구해 온 제임스 웹스터(James Webster)가 『관심의 시장』(백영민 옮김,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이제는 매체가 아닌 이용자의 관심이 희소한 자원이 되었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그만큼 이용자의 선택권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선택권을 가진 이용자의 권리가 신장된 것은 분명하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의 정보주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올바른 정보는 무엇인지 가늠해야 하는 순간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여러 플랫폼에서 나의 취향이라고 추천해 주는 콘텐츠가 과연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콘텐츠인지 판단하는 일은 때로 피로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많은 콘텐츠 중 무엇을 볼지 결정하기 어려운 상태를 지칭하는 용어인 넷플릭스 증후군(Netflix Syndrome)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을 정도이다.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이 현재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부도 허위조작정보가 유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용자들의 선호도를 기반으로 콘텐츠와 서비스를 추천해 주는 플랫폼들도 추천시스템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는 편집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미디어가 갖는 본질적인 특성이다. 정보를 제공하는 주체가 선의를 가지고 전달한 정보도 의도와 다르게 왜곡될 수 있다. 무수히 많은 매체를 통해 수없이 많은 정보가 유통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매번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용자의 선호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플랫폼에서 자신이 제작했거나 자신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콘텐츠나 서비스를 추천해 주는 것은 피하기 어려운 선택일 수 있다.
내가 선택한 매체를 통해 제공되는 정보와 콘텐츠가 나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내가 남긴 흔적이 데이터로 쌓여 사업자들이 서비스의 동력으로 삼는 환경에서는 내가 나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용자 중심 시대 나의 정보주권을 최종적으로 지켜야 할 사람은 바로 자기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