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 중국 HNA그룹, 채권단과 '불협화음' 논란

2020-04-17 04:00
채권단 긴급소집…'채권연장안' 날치기 통과…채권단 '반발'
코로나19 속 자금난 가중…HNA그룹 채권값 폭락

'빚더미'에 올라앉은 중국 4대 항공사 하이난항공그룹(HNA)을 둘러싼 잡음이 연일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엔 사측에서 1년 만기 채권 연장안을 '날치기 통과'해 채권단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홍콩 명보 등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14일 저녁 HNA그룹은 채권단 회의를 긴급 소집, 표결을 통해 약 3억9000만 위안어치 '13HNA채권'의 원리금 상환 만기를 1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회의 표결 과정이 사실상 '날치기'로 이뤄져 논란이 일었다. 보도에 따르면 사측은 지난 14일 저녁 6시 30분 채권단에 이메일을 보내 당장 이날 저녁 8시 채권단 회의가 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러면서 회의 시작 1시간 전인 오후 7시까지 와서 채권단 회의 참가 등록을 하라고도 요구했다. 1시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다수 채권단 인사들의 참석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날 채권단 회의에서 채권 만기 연장에 찬성표를 던진 인사는 달랑 3명이었다. 이들은 해당 채권총액의 90%인 3억4500만 위안을 투자한 인사들로, 표결권 98%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무려 29명이 반대표를 던졌음에도 채권 만기일이 연장될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대다수 채권단 인사들은 갑작스러운 회의 소집이 절차상 문제가 없었는지, 또 표결 결과가 효력이 있는지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서 향후 채권 연장에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다. 실제로 당시 회의 분위기는 험악했으며, 대다수 인사들은 HNA그룹이 파산·기업회생(重整)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의 불만이 고조되자 HNA그룹 측은 15일 새벽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위챗 계정을 통해 사과문을 올렸다.

그룹 측은 "코로나19 영향으로 그룹의 항공·관광·호텔·비즈니스 등 관련 업무가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며 "전력을 다해 조업 재개를 추진하고 있지만 경영 상태가 이른 시일 내에 지난해 같은 수준으로 회복되긴 어렵다. 현급흐름 압박이 매우 크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채권단 인사들이 너무 많아 회의 통지나 준비 과정에서 부족한 점이 있었고, 회의 절차가 황급히 이뤄진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전했다. 

이번 채권 연장의 '날치기 통과'로 HNA그룹의 자금난 우려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현재 HNA그룹은 상환해야 할 채권이 이것 말고도 7개 더 있다. 합치면 모두 총 140억 위안어치다. 당장 오는 17일에도 7억5000만 위안어치 초단기 채권도 만기가 도래한다. 사측은 해당 채권 만기를 연장하는 데 채권자들이 동의했다고 밝혔지만 시장은 불안한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HNA그룹의 또 다른 채권인 '15HNA채권' 가격은 다음 날인 15일 시장이 열리자마자 수직낙하해 장중 한때 36% 폭락했다. 이날 거래가 두 차례 잠정 중단되기도 했다. 

HNA그룹은 한때 중국 '인수합병(M&A) 포식자'로 불렸다. 1993년 하이난성 지방 항공사로 출발해 2015년부터 공격적인 해외 M&A를 통해 사세를 불려나갔다. 힐튼호텔, 도이체방크 등 은행, 부동산, 호텔, 영화사 등 무려 400억 달러어치의 자산을 사들였다.

하지만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고위층 유착 논란, 과다부채 등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부채만 7000억 위안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게다가 올초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항공 수요가 크게 줄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에이전시파트너스의 닉 커닝햄 애널리스트는 “HNA는 중국 기준으로 봐도 빚더미 그룹이었다”며 “코로나19로 중국 항공사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HNA가 실질적으로 파산 위기에 몰렸다”고 분석했다.

앞서 2월에는 HNA그룹이 '공중분해'될 것이란 소문도 퍼졌다. 하이난성 지방 정부가 HNA그룹을 인수해 중국 3대 국영 항공사(에어차이나·동방항공·남방항공)에 각각 매각할 것이라고 블룸버그 등 외신이 보도하면서다. 당시 HNA그룹 측은 이같은 사실을 부인했었다. 
 

중국 HNA그룹. [사진=웨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