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바이러스가 묻고 있다, 당신 진짜 리더요?
2020-04-14 17:56
지금 세계적으로 정치와 경제는 한치 앞이 어두움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우리들은 바이러스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에 돌입했다”며 자신을 ‘전시 하의 대통령’이라고 칭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대의 도전"이라고 했다.
신형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면서 감염확대 방지에 실패한 많은 국가 지도자들이 비판받고 있다. 정치가는 전쟁에서 이기든가, 선정을 행하든가, 그 역사적인 평가는 단 한번의 위기관리 실패로 결정나 버리는 게 동서고금의 정치 법도다. 위기나 비상시에 국가 지도자는 그 수완과 역량을 국민에게 시험받는다. 어떤 이는 평가받고, 어떤 이는 퇴장당한다.
국가적 위기가 엄습했을 때 국민 사이에서는 “이럴 때는 리더를 바꿀 여유가 없다”는 심리가 발동해 당시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상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지도자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몇몇 사례가 있다. 미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랭클린 D 루스벨트(FDR) 대통령이 4선을 했고, 2001년 동시 테러 때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등했다. 반대로 1940년 독일과의 전쟁이 시작되자 열세에 몰린 영국에서는 총리가 네빌 체임벌린에서 윈스턴 처칠로 바뀌었다. 파란만장한 정치인생을 보낸 처칠은 총리 취임이 결정된 날 “내 인생은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결국 영국을 승리로 이끌었다.
세계의 대통령으로 여겨졌던 미국 대통령의 경우는 특히 많은 교훈거리를 제공한다. 2001년 9월 11일 동시테러가 발생한 지 3일째 되던 날,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의 붕괴현장을 찾은 부시 대통령은 소방·구조대원들과 어깨동무를 하고선 핸드 마이크로 “나는 여러분들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테러를 일으킨 그들도 곧 내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라고 외쳤다. 주변에선 “USA, USA”의 대합창이 일어났다. 이를 통해 테러 쇼크로 가라앉은 미국 국민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반전 공세로 나가게 하는 동력을 확보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그 인기의 여세를 몰아 2003년 이라크 전쟁을 개시했다.
동시테러 3년 후, 부시는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평가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대응의 실패로 급전직하했다. 이에 앞서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79년 이란 혁명 대응에 실패했고, 후버 대통령은 1929년 대공황에 낭패를 당했다. 평화주의자로 유명한 윌슨 대통령은 제1차 세계 대전에 몰입한 나머지 당시 1918년 스페인 독감을 방치해 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실패한 대통령의 오명을 썼다.
이와는 반대로 후버 대통령의 뒤를 이은 루스벨트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의 최고 반열에 진입한다. 그는 4기에 걸쳐 재임했다. 1929년 세계 대공황으로부터 재기하기 위해 공공사업으로 고용을 확보하는 뉴딜 정책을 전개했고, 진주만 공격의 굴욕을 겪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진면목은 ‘파이어사이드 채트(노변담화)’였다. 1933~44년 동안 이어진 대국민 라디오 토크다. 평이한 단어와 우아한 어법으로 반대 목소리를 누르고 난국에 처한 국민에게 용기를 주고 정책 협력을 요청했다. 그는 “거짓말을 아무리 반복해도 진실이 될 수 없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들 자신의 두려움이다”, “현재의 어두운 현실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어리석은 낙관주의자뿐이다” 등의 명언을 남겼다. 위기관리의 본질을 관통하는 언어들이다.
그렇다면 정치풍토가 격변한 지금의 미국, 더구나 코로나 위기정국에 임하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공화당의 지지자들은 기존의 고정 틀을 깨고 있는 리더로서의 트럼프를 신뢰하는 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경제대책, 중국으로부터의 입국거부 대책 등을 평가하며 ‘현대판 프랭클린 D 루스벨트’라 부르기도 한다. 반면 주요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발표를 ‘이단적인 리더에 의한 근거 없는 낙관과 자기주장’, ‘ 터무니없는 정적 비판’, ‘위기에 편승한 대통령 재선에 대한 집착’ 등으로 정리한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최고의 경제, 최저의 실업과 임금상승을 주장하며 계속 희망의 메시지를 내고 있지만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지지율은 코로나바이러스 지속과 실업률 상승으로 6개월 새 최저치인 44% 선으로 내려갔다. 11월 대선의 경쟁자인 민주당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의 지지율을 비교해도 53% 대 42%로 밀리고 있다(CNN 4월 10일 조사).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지금까지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웠던 멕시코 장벽 건설, 대중국 제재관세, 위기 전의 경제와 주가의 호조 등은 모두 원점으로 돌아갔다. 전염병 위기와 경제 위기라는 쌍둥이 국난에 빠진 트럼프 대통령과 루스벨트 대통령 사이에는 격차가 너무 큰 게 사실이다.
이번 코로나 위기와 맞물려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트럼프 대통령과 동병상련의 입장이다. 아베 정치의 모든 기점(起點)은 도쿄올림픽이다. 이것이 코로나사태로 1년 연기됐다. 일본의 정치 일정에는 올여름 올림픽, 내년 가을 자민당총재 임기만료(아베 임기 9월), 중의원 임기 등 3개의 빅 이벤트가 있었다. 아베 정권은 올림픽을 성공리에 마쳐 탄력을 얻은 다음에 가을에 의회 해산을 하고, 아베 체제를 한층 공고히 하려던 참이었다. 이 전체 판이 흐트러진 것이다. 아베 1강 체제 아래 ‘아베 후임은 아베’라는 구호가 무색해졌다. 일본 언론은 코로나 사태로 많은 취약점을 노출한 전시의 지도자와 후계자 없는 일본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7일 비상사태를 선포한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곤경에 처한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들을 염두에 두고 “여러분들의 소리는 우리들에게 들리고 있다”며 지원책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부와 지자체만의 노력으로는 긴급사태를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은 순전한 진실이다. 국가적 위기를 맞아 모든 사람의 힘을 빌리고 싶다”고 협력을 요청했다. 아베 총리의 루스벨트식 대국민 접근이었다. 그러나 민심은 멀어져가고 있다. 긴급사태가 너무 늦었고, 일회성 발표로는 국가 리더의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하면서 아베내각 지지율은 계속 떨어져 지난 13일 현재 39%로 40%를 밑돌기 시작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원지 중국은 일찌감치 위기사태를 해소하고 경제활동을 재개했다. 중국발 뉴스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했으나 2분기, 늦어도 3분기부터는 V자 회복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의 피해와 현재 사정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데다 국가 감시체제가 한층 강화되어 중국의 발표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중국 공산당은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의 무오류(無誤謬)를 지켜야 하는 고충이 있을 것이다. 당장은 소득 배증 계획 실현에다 앞으로 증폭될 미·중 무역전쟁, 미국과의 기술패권경쟁, 제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산업전쟁 등 수많은 난제들이 시 주석의 리더십을 시험할 것이다. 그 모습은 시차를 두고 드러날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중국 최고지도자의 리더십을 가늠하는 좋은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다.
미국의 코로나 감염확대 폭심지인 뉴욕의 의료체제가 거의 붕괴상태에 이르렀는데도 쿠오모 뉴욕주지사의 주가가 급상승하고 있다. 그는 “인공호흡기가 3만대 부족한데 연방정부로부터는 400대밖에 제공이 안 된다”고 명쾌하게 어려운 입장을 호소하면서 연방정부를 압박했다. 그는 또 “이 전쟁의 최전선은 의료진들이다. 환자들을 지키기 위해 제발 뉴욕에 와 달라”며 의사와 간호사 원군을 요청했다. 솔직한 감사와 명쾌함, 위기를 타고 넘으려는 강한 의지가 리더의 덕목이다.
위기 속에서 국가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전문가들의 조언을 귀담아 듣는 경청 능력, 이를 재빨리 공론화시켜 실행에 옮기는 순발력과 실행력, 그리고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설득력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국가 지도자의 덕목은 진정성이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오늘 총선 결과와 상관없이 코로나 사태와 경제 위기 속에서 국가 지도자로서 리더십을 계속 시험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