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배럴서 970만 배럴로' 일단 합의에도 불안한 국제 유가

2020-04-13 17:21
OPEC 일각 "실질 감축량 2000만 배럴"...미국과 멕시코가 최종 승리
급한 불 끈 국제유가...역부족 감산량에 유가 20달러 붕괴 전망 여전

국제유가 20달러 선을 위협했던 유가전쟁이 일단락되었다.

12일(현지시간) OPEC+(석유수출국기구 OPEC과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대체)는 긴급 화상회의를 열어 5월 1일부터 6월 말까지 두 달간 하루 970만 배럴의 원유를 감산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지난달 OPEC+ 감산협상 불발 후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유가전쟁에 돌입한 지 한달 만에 맺은 결실이다.

앞으로 OPEC+ 23개국은 5~6월 2개월간 △사우디와 러시아 각각 하루 250만 배럴 △이라크 100만 배럴 △아랍에미리트(UAE) 70만 배럴 △나이지리아 42만 배럴 △멕시코 10만 배럴 등 총 970만 배럴을 감산한다. 이후 7월부터 올해 말까지는 하루 770만 배럴, 내년 1월~2022년 4월까지는 하루 580만 배럴을 점진적으로 감산한다. 9일 잠정합의안보다 각각 30만 배럴, 20만 배럴 줄었다. 감산 기준 시점은 지난 2018년 10월이다.

◆"실질 감축량 2000만 배럴"...실리는 미국·멕시코가 챙겨

감산 합의 규모는 당초 하루 1000만 배럴에서 970만 배럴로 줄어들었지만, 그간 OPEC+가 결의한 감산량 중 가장 큰 규모다. 산유국들과 원유업계는 전 세계 공급량의 10%를 차지하는 규모를 감산함으로써 일단 유가 붕괴 위기를 피할수 있다는 분위기다.

OPEC+ 일각에서는 실질적인 원유 공급 감소량이 하루 2000만 배럴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우선, 사우디·UAE·쿠웨이트가 이달 들어 이미 증산했기 때문에 4월 글로벌 산유량 기준 감산량은 하루 1200만∼1300만 배럴 규모다. 또 이들 3개국은 감산 할당량 외에도 하루 200만 배럴을 자발적으로 감산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OPEC+는 미국·캐나다·브라질·인도네시아·노르웨이 등 비회원국들의 하루 400만∼500만 배럴 감산도 비공개적으로 추진 중이며,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오는 15일 두 달간 하루 300만 배럴 규모의 전략 비축유 구매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 등 외신들은 이번 감산합의의 승리자로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목했다.

멕시코는 자국의 할당량을 당초 하루 40만 배럴에서 10만 배럴까지 낮추면서, 빚더미 위에 앉아있는 국영 석유기업 페멕스를 구하는 동시에 정치적 부담감도 덜었다.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국제유가 폭락으로 진퇴양난에 처했던 트럼프 대통령도 급한 불을 껐다. 높은 생산비용 구조의 셰일업계가 저유가를 버티지 못하고 연쇄 파산한다면 미국 실업난과 경기침체를 앞당긴다는 우려가 높았기 때문이다. 

◆감산량 줄어도 일단 안심...여전한 '유가 붕괴' 가능성 

그간 '초약세장'을 벗어나지 못하던 국제유가는 이날 감산합의 소식에 일단 상승 흐름을 타는 모양새다.

합의 타결 직후 6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가격은 한때 8%까지 껑충 오르며 배럴 당 33달러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5월물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 역시 6% 가까이 급등해 25달러 선에 다가갔다. 이후 조금씩 상승분을 반납하며 브렌트유와 WTI유는 각각 31달러와 23달러 선에서 거래 중이다.

시장과 업계는 일단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고 안도하는 분위기다. 

사장조사업체인 IHS마킷의 다니엘 예르긴 부사장과 프랑스투자은행 BNP파리바는 이날 로이터에서 각각 "이번 합의가 없었으면 국제유가는 한없이 추락해 금융시장까지 타격을 줬을 것", "유가가 바닥에서 벗어났다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했다.

다만 감산량이 글로벌 공급과잉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실망감도 적지 않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이번 합의를 '역사적이지만 아직 불충분하다'면서 유가 하락 압박이 여전하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원유 수요가 하루 3000만 배럴 쪼그라든 상황에서 970만 배럴 감산으로는 수요 위축을 상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합의 후 모건스탠리는 올 2분기 WTI유와 브렌트유의 전망치를 각각 22.5달러~25달러와 30∼35달러로 소폭 상향 조정했지만, 골드만삭스와 UBS 등은 앞으로 몇 주 동안 유가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에너지 헤지펀드인 어게인캐피탈의 존 킬더프 이사는 CNBC에서 "글로벌 재고가 늘어남에 따라 향후 몇 주 안에 국제유가 20달러 선을 위협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며 비관적 전망을 거두지 않았다. 
 

9일(현지시간) 석유수출국기구+(OPEC+) 화상회의를 주재 중인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왕자 겸 석유장관.[사진=로이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