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보다 유동성 공급…한은, 특수은행채 사들인다

2020-04-10 05:00
이주열 총재 “올해 1%대 성장은 어려울 것”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금리 조정’보다 ‘유동성 공급’에 초점을 맞춘 시장 안정 대책을 내놨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물경제에 보다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선 ‘유동성 공급 확대’ 처방이 적절한 방향이라는 판단이다.

그 일환으로, 한은은 특수은행채 매입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은이 특수은행채를 다시 사들이는 건 12년 만에 처음이다. 향후에도 추가 유동성 공급에 초점을 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은 금통위는 9일 정례회의를 열고 공개시장운영 단순매매 대상 증권에 △산업금융채권 △중소기업금융채권 △수출입금융채권 △주택금융공사 주택저당증권(MBS)을 포함하는 내용의 '공개시장운영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앞서 한은은 2008년 단순매매 대상 증권에 특수은행채와 은행채를 포함시킨 바 있다. 이후 다시 국채와 정부 보증채로 축소했다가 12년 만에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공개시장운영은 한은이 금융기관을 상대로 증권을 사고 팔아 시중 유동성과 금리 수준에 영향을 주는 통화정책 수단이다. 이 중 단순매매의 경우, 증권을 매입하거나 매각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환수하는 효과를 낸다.

한은은 “이번 조치로 금융기관들의 자금조달이 더 쉬워지고, 조달 비용도 낮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은이 특수은행채를 사들여 금융기관에 자금을 공급하면, 특수은행들은 더욱 낮은 금리로 채권 발행이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회사채 매입에 활용하면 채권시장 안정화에 도움을 준다. 2008년과 같이 은행채를 사들이지는 않지만, MBS를 사들여 은행들의 부담도 덜어줄 전망이다.

한은은 현행 환매조건부채권(RP) 매매 대상 증권과 대출 적격담보증권에 예금보험공사 발행채권도 포함키로 했다. 이번 조치는 오는 14일부터 시행되며, 유효기간은 내년 3월 31일까지다.

동시에 증권사에 우량회사채를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한시적 방안도 마련 중이다. 현재 한은과 정부가 실무자 선에서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협의 결과에 따라 세부적인 내용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수목적법인 설립을 통한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매입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와 같이 특수목적법인을 정부 보증 아래 설립하는 것은 상당히 효과가 크다"며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특별대출은 한계와 제약이 있는 만큼, 정부와 협의해 시장안정에 대처하는 게 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한은의 ‘유동성 공급’ 확대 중심의 정책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로 기업들의 사정이 매우 나빠져 있고, 신용 불안의 요소들이 생겨나면서 유동성 공급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올해 경제성장 전망에 대해서는 “1%대 성장은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주열 총재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개 양상은 '코로나19‘ 회복 수준에 따라 크게 갈릴 것”이라며 “마이너스 성장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1%대 성장은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4월 기준금리는 0.75%로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16일 임시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인하한 만큼, 일단은 ‘관망세’에 나선 것이다. 이는 대체적으로 시장 관계자들의 기대치에 부합하는 결과다. 최근 금융시장 전문가 10여명은 이달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진=한국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