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마불사] 사상초유 경제위기... '글로벌 대마'만 생존

2020-04-06 06:04
삼성전자ㆍ현대차, 영업이익 개선 선방 기대
SK이노 등 '국내용 대마' 기업 한계 드러나
중견ㆍ중기 중심 정부지원에 대기업들 위태

코로나19발(發) 사상 초유의 경제 위기에 기업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선방하며 피해를 최소화한 반면, 국내에서만 업계의 대장 노릇을 했던 대기업은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모양새다.

여기에 과거와 달리 중견·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정부의 지원이 이뤄지면서 큰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too big to fail)’의 의미도 재정의되고 있다.

◆삼성전자·현대차 등 코로나19 위기에도 ‘선방’... 1분기 실적 ‘소폭 상승’
5일 업계에 따르면 오는 7일 삼성전자의 잠정실적 발표를 시작으로 국내 주요 기업이 1분기 성적표를 줄줄이 내놓는다. 지난 1월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의 실질적 피해를 가늠해볼 수 있는 첫 지표다.

예상치만 보면 큰 실적 감소가 있을 것이라는 당초 분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날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증권사 3곳 이상의 실적 추정치가 있는 상장사 141곳의 1분기 연결 영업이익 전망치(컨센서스)를 16조7942억원(지난 3일 기준)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같은 기간(20조2154억원)보다 16.92% 감소한 수치다.

이 와중에 영업이익 개선이 기대되는 기업들도 있다. 삼성전자(0.08%)와 현대자동차(4.14%)가 대표적이다. 국내 재계 1위와 2위, 각 분야 글로벌 ‘톱5’에 속하는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의 주력 계열사다. 이밖에도 조사 대상 중 영업이익 개선(적자축소 포함)이 기대되는 업체는 69곳이나 된다.

LG전자(TV·가전)와 현대모비스(자동차부품) 등 각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들도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LG전자와 현대모비스의 경우 지난 1분기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영업이익이 각각 5.35%와 2.29% 줄어드는 데 그칠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SK하이닉스, SK이노베이션 등 국내와 글로벌 시장에서 어중간한 위치를 점한 기업들은 큰 피해를 면치 못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지난 1분기 40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위기에도 미래준비... 상생 노력·투자 확대 지속
이로 인해 코로나19를 대하는 자세도 기업별로 확연히 차이가 나고 있다. 삼성과 현대 등 주요그룹은 투자를 확대하고, 협력사·지역사회에 금융을 비롯한 각종 지원을 하며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업계는 지난 3월 제조용 장비 수입을 크게 늘렸다. 관세청에 따르면 한국의 반도체 제조용 장비 수입액은 약 11억 달러(약 1조35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54% 증가했다. 지난 2월 약 7억 달러(약 86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7% 늘린 데 이어 2개월 연속 확대다.

현대차도 미뤄놨던 신규 채용에 최근 들어갔으며, 제네시스의 준대형 세단 ‘G80’와 준중형 세단 ‘아반떼’ 등 주요 신차 출시 일정을 예정대로 강행하고 있다. 그만큼 제품에 자신이 있다는 표현으로 해석된다.

◆일부 대기업들, 중견·중소기업 위주 지원 대책 ‘불만’
글로벌 경쟁력이 갖춰지지 않았거나, 산업적 특성상 자활이 불가능한 대기업들은 정부의 지원에 목을 매고 있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정부 지원이 지나치게 중견·중소기업에 치중이 됐다며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위기 시 국내 산업을 이끄는 대기업에 지원을 집중했으나, 최근에는 중견·중소기업에 몰리고 있다”며 “정부의 코로나19 기업 대책을 예로 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100조원 규모의 기업구호긴급자금 투입을 결정한 바 있다. 다만 ‘금융회사를 포함한 대기업은 내부 유보금이나 가용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고, 우선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등 자구 노력을 먼저 실천해야 한다’라는 단서조항을 달았다. 과거처럼 덩치만 크다고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업계별 특성을 고려해달라는 호소도 이어지고 있다. 항공업계가 대표적인 예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내외 항공업계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한국항공협회 관계자는 “미국과 싱가포르 등 항공 선진국에서는 기업의 규모와 관계없이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며 “하지만 국내에서는 업계가 아닌 일부 기업을 살리려는 지원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국내외 시장이 실력과 규모를 갖춘 기업 위주로 재편될 것”이라며 “다양성 붕괴로 인한 산업 생태계 훼손을 막기 위한 정부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경북 구미시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사업장에서 열린 구미산단 기업대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