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마구잡이 양적완화가 능사는 아니다
2020-03-25 05:00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쇼크 및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 놀라 기준금리를 암묵적 실효하한선(0.75%)까지 내린 한국은행도 다음으로 양적완화에 착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시장안정이 목적이나 지난 19일과 20일 각각 환매조건부채권(RP)과 국고채 매입에 나선 것에서 양적완화의 첫발을 뗐다는 해석이 많다.
즉,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인 2008~2009년 시행됐던 양적완화 수단이 다시 한번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한은은 2008년도에만 RP·국고채 매입으로 시중에 19조5000억원이나 되는 돈(유동성)을 살포했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이 같은 양적완화는 금융위기의 특효약으로 인식돼 왔다. 시중에 막대한 돈이 풀리는 만큼 소비가 진작되고 투자도 늘어날 것이라는 시각에서다.
반면 국민가처분소득 중 저축액 비율을 의미하는 저축률이 상당히 개선된 점이 눈에 띈다. 2008년 4분기 저축률은 30.1%로 전분기 29.7%보다 높았으며, 2009년 4분기에는 30.7%까지 오를 만큼 상승세를 유지했다.
저축률의 기준인 저축액은 은행의 예금 등 금융자산 외에도 주택 같은 실물자산을 포함한다. 이를 감안하면 결국 한은이 공급한 수십조원의 돈은 소비나 투자에 활용되기보다는 부자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부동산 등의 자산을 불려주는 역할만 한 셈이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미국도 2008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시장에 막대한 달러를 풀었지만 경기 부양이라는 원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주식시장 등으로 흘러가 버렸다.
많은 전문가들은 경기부양의 답은 기업에 있다고 조언한다. 기업이 살아야 고용이 살아날 수 있고, 이것이 소비와 투자로 이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유동성이 단순히 공급되는 차원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측면에서다.
결국 마구잡이 돈 풀기로는 경기를 부양할 수 없다. 시장에 공급된 돈이 부자들의 주머니가 아니라 소비 진작이나 투자 확대에 쓰일 수 있도록 한은과 이에 발맞춰야 할 정책 당국의 현명한 지혜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