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환 칼럼] 거국비상내각 만들어 특단대책 서둘러라

2020-03-22 08:55
美, 유럽은 세계대전급 전시체제

[최성환 교수]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비상경제회의'를 가동하고 직접 주재하면서 50조원의 비상금융조치를 발표했다. 11조7000억원의 추경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판단 아래 비상경제기구를 신설해 특단의 대책과 조치들을 신속히 결정·집행하겠다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 스페인 등이 전례 없는 대책들을 내놓고 있는 것을 보면서 보다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맞는 방향이다.

그러나 비상경제기구 설치로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이 정부가 들어선 이후 경제실적을 보면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내놓는 진단과 분석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신들의 이념과 투표 성향에 맞는 정책과 조치들만 받아들였다.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근무제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래의 흐름을 서로 먼저 올라타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과거 청산이라는 구시대적 집안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뒷전이 된 경제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작년에 간신히 달성한 성장률 2.0%도 막판에 대규모 재정을 퍼부은 결과였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사태가 발생했다. 코로나사태의 전 세계적 불확실성과 공포의 정도는 주요국들이 내놓는 조치를 보면 잘 가늠할 수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두 번의 임시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1.5% 포인트나 낮추면서 제로 수준까지 인하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1인당 1000달러(약 120만원)의 현금을 지급하는 등 1조 달러의 통 큰 헬리콥터 머니 패키지를 내놓았다. 1000달러씩 2회 지급하겠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여기다 납세기한을 연장해주는 2000억 달러와 FRB의 양적완화 7000억 달러까지 합하면 총 2조 달러(미국 GDP의 9.3%)를 넘는다. 2조 달러는 세계 11위의 경제규모인 우리나라의 2019년 국내총생산(GDP) 1조6420억 달러를 크게 웃도는 천문학적인 수치이다.

이에 앞서 영국은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인하하면서 3300억 파운드의 재정을 투입하기로 했다. 3300억 파운드는 GDP의 14%를 넘는 규모로, 특히 소규모 영세기업 한 곳당 2만5000파운드(약 3750만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스페인 또한 GDP의 15%가 넘는 2000억 유로를 기업긴급대출 지원 등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일본 등도 감세와 면세, 공매도 금지 등과 같은 전통적∙교과서적 처방 외에 재난기본소득과 국유화 등 비전통적∙비교과서적 대책까지 전방위적으로 내놓고 있다.

이 같은 주요국 대책의 규모와 범위를 보면 3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는 듯하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말했다. 전쟁과 다른 점은 적국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 코로나 위기로 예상되는 실물경제의 침체를 최대한 방어하겠다는 것이다. 영국의 리시 수낙 재무부 장관은 “영국 정부는 경제를 지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윈스턴 처칠 총리가 생각나는 장면이었다.

우리나라는 뒤늦게나마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인하하고 정부는 11조7000억원의 추경을 편성했다. 이어서 문 대통령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을 위한 50조원의 비상금융 조치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턱도 없다. 늦었느니 재정여력이 없느니 등을 따질 때도, 총알을 아낄 때도 아니다. 가용가능한 모든 총알을 필요한 곳에 제때에 공급해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 거국비상내각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대통령이 주재한 비상경제회의, 즉 경제 중대본(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은 자칫 군대의 중대본부급으로 전락할 수 있다. 기존의 실패한 경제팀에다 맡길 수 없는 데다, 예산도 전략도 전문가도 없는데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전시에 준하는 거국비상내각이 성공하려면 그에 걸맞은 권한과 예산, 전략, 실행력을 갖춰야 한다. 국무총리급 이상의 거국비상내각의 수장은 전권을 위임받아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아울러 예산의 편성과 집행, 인력뿐 아니라 경제 관련 조치에서 초법적 권한도 주어져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최저임금 및 주 52시간 근무제의 일시적 해제, 한국은행의 양적완화 등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예산은 적어도 200조원(GDP의 10%) 이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1997년 IMF외환위기 당시 투입된 공적자금이 총 168조원이었다. 필자는 당시 칼럼을 통해 공적자금의 추가투입과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설치를 주장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우리 경제는 수출입의존도가 높을 뿐 아니라 자영업자 비중도 매우 높은 편이다. 따라서 글로벌 공급망의 혼란과 국내외 수요 감소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더 많은 자금의 투입이 필요하다. 거국비상내각은 여야, 민·관, 노조, 내외국인 등을 막론하고 전문가들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꾸려야 한다. 이번 코로나사태에서 진단시약 개발, 이동식 검사, 마스크 약국 판매 등 방역 및 의료체계를 민간 전문가들에게 믿고 맡기면서 전 세계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이 좋은 교훈이다.

정책의 성공 여부는 ‘규모(scale), 시기(timing), 목표(target)’에 달려 있다. 경제와 금융은 심리라고 하지 않는가? 기업과 국민들의 심리를 진정시키기 위한 과감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특단의 정책과 조치를 하루 빨리 내놓아야 한다. 국민들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금모으기에 못지않게 서로 위기를 극복하자면서 힘과 기를 모으고 있다. 이제 정부가 대답할 차례이다.

최성환 고려대 경제학과 객원교수